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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 김현준, 날 것이라 더 진짜같은(인터뷰)


영화 '기화' 통해 타이틀롤로 분해

[권혜림기자] 배우 김현준의 얼굴에는 많은 색깔이 뒤섞여있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에선 남성미 가득한 반항적 이미지가 엿보이지만,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웃거나 작은 농담을 던질 때면 또래 청년다운 장난스러움이 흘러넘친다. 영화 '한공주'와 '내 연애의 기억', tvN 드라마 '닥치고 꽃미남 밴드' '아홉수 소년', KBS 2TV 드라마스페셜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 등 그의 전작들 속 모습은 실제 김현준이 풍기는 이미지의 극단, 혹은 그 중간쯤의 빛깔들이었다.

영화 '기화'(감독 문정윤/제작 아방가르드 필름)는 이제 막 연기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 김현준이 약 1년 반 전 촬영했던 작품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버지 역할을 해 본적 없는 아버지 희용(홍희용 분)과 그의 고향 선배 승철(백승철 분), 희용의 아들 기화(김현준 분)의 이야기다. 타이틀롤 기화 역을 연기한 김현준이 보다 앳된 얼굴로 보다 날 것의 연기를 펼친 영화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거칠게 자라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한 스무 살 청년 기화는 신선한 얼굴의 배우 김현준을 만나 완성된 캐릭터다. 말수도 적고 표정 변화도 많지 않은 기화의 감정선이 관객에게 더욱 애잔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에는 채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몰입을 도왔던 김현준의 풋풋한 표정이 제 몫을 했다.

그간 주로 개성 넘치는 조연 캐릭터들을 연기했던 그는 촬영 후 햇수로 2년 만에 관객을 만나게 된 '기화'를 통해 영화의 주연 배우로 나섰다. 그는 "그동안은 극을 끌고가기보다 신을 재밌게 만드는 역을 많이 연기했는데, 이번엔 부담도 컸다"며 "영화 연기 경험이 거의 없을 때, 제게 연기를 가르쳐주신 라경덕 선생님의 추천으로 감독님을 만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알렸다.

"연기 수업을 받다 '기화'라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됐어요. 문정윤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은 제게서 기화와 비슷한 면을 보시고는 캐스팅하셨다고 해요. 집에선 늦둥이로 자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두 분이 맞벌이를 하셔 외롭게 자란 기억도 있거든요. 그런 감정들을 이야기해드렸을 때 기화와 저의 닮은 표정을 보신 것 같아요."

마음 붙일 곳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영화 속 기화는 환각 물질을 흡입한 채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창살 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어둡기만 했던 기화의 삶에는 사기 전과로 수 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철 없는 어른으로 살다 아들을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희용에 대한 원망도 짙게 녹아있다.

"기화의 나쁜 행동들은 사실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아버지가 그래서 나도 그랬다'는 원망이 피해의식을 만들고 말죠. 기화는 출소 후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것조차 싫어할 만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데, 기화의 입장에선 그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출소 후 기화와 아버지, 승철 아저씨가 함께 우연한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여행이 희용의 입장에선 아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기화는 배신감도 들었을 것 같아요. 캐릭터의 전사에는 단순하게 접근했어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였죠. 단순하게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려 노력했어요."

연극 무대와 스크린을 누벼 온 두 베테랑 배우 홍희용과 백승철은 신인 김현준에게 살아있는 연기 교과서이기도 했다. 김현준은 "연기 뿐 아니라 그 외적인 요소들, 배우가 가져야 할 태도와 예의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선배들 덕분에 '기화'를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렇게 많은 신을 연기한 작품이 처음이었으니, '기화'는 제게 여러 모로 수련의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기도 해요. 그렇게 장기간 집을 떠나 현장에 파묻혀 연기를 했던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선배님들과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 다시 연기를 하러 가고, 스케줄이 끝나면 소주 한 잔을 함께 하던 그 기간이 정말 재밌었죠. 특히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그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요. 대선배들이시니 처음엔 어려웠지만, 두 분이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셨어요. (백)승철 선배님께는 지금도 연기와 그 외 사적인 고민으로도 자주 연락을 드리곤 해요."

'기화'를 본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을 장면이 있다. 기화가 아버지 희용이 숨겨온 비밀을 알고, 억눌러왔던 감정을 눈물로 쏟아내는 원테이크 신이다. 연기 초짜가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을 장면일 법한데, 김현준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쿵 내리찍을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강렬하게 장식했다.

분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 투박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남루한 니트 상의를 입은 기화는 꽉 막혔던 원망의 응어리를 오열로 풀어낸다. 그 순간, 범상치 않은 신인 배우의 등장에 놀란 것은 두 번째 감상이었다. 영화 속 어촌 마을 어느 모르는 청년의 눈물을 훔쳐보는 기분. 날것 그대로라 더욱 진짜 같은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장면이 바로 그 신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신이라 느껴졌죠. 연기에 대한 스킬도 지식도 전혀 없었으니, 단순하게 최대한 그 상황이 되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촬영 며칠 전부터 우울해져 있기도 했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촬영 내내 '아버지'라 불렀던 희용 선배님의 부재를 상상했어요. 연기를 하다보니 정말 슬퍼져셔 봇물 터지듯 눈물이 났는데, 감독님이 도통 '컷'을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어렵게 '컷'을 외치신 뒤에 감독님이 밖에서 눈물을 훔치고 계신 것을 봤죠. 제게 '촬영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 말이 제겐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기화'를 촬영하던 당시와 지금의 사이에, 김현준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신예의 팔딱이는 에너지를 뿜어내왔다. 흔치 않은 마스크와 개성있는 연기색을 지닌 루키로 도약했다. 김현준은 "당시는 모델 일과 연기,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는 시기였고 하루 하루를 모면하며 사는 삶이었다"며 "그런데 '기화'라는 작품을 통해 짜릿함을 느꼈고, 연기에 '올 인' 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은 참 행복한 해였어요. 소원이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었는데, 때 마침 드라마에 캐스팅되거나 전에 찍었던 영화가 개봉하는 등 마치 계획한 것처럼 쉬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죠. 물론 매니지먼트를 잘 해주신 덕도 있고요.(웃음) 작년의 목표에 더해, 올해는 '연기로 인정받는 것'을 새 목표로 삼았어요. 쉬지 않는 것보다 더 우선 순위에 둔 목표입니다."

영화 '기화'는 지난 2월26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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