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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3>노인이 살아온 삶 전체를 이해하자


박할머니는 늘 화난 얼굴이다.

작은 일에도 트집을 잡고 버럭하기 때문에 효도요양원에서 기피인물이다. 허리가 아픈 것도, 밤에 잠을 잘 못 잔 것도 모두 요양원 탓이다. 직원들도,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들도 모두 할머니만 보면 슬슬 피해버린다. 식사시간이 되면 직원들은 초긴장이다. 미간에 난 세로주름은 더욱 깊어지고 트집 잡을 궁리만 하는 것 같다. 깨작깨작 한 술 뜨더니 숟가락이 부서져라 밥상에 내려놓는다.

효도요양원 원장은 할머니의 아들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만 봄눈 녹듯이 다정해지기 때문이다. 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학교수이어서 평생 책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시어머니는 엄하고 법도에 발랐다. 18살에 시집온 어머니는 평생 차가운 남편과 엄격한 시어머니에 짓눌려 살아왔다.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이가 아들인데 아들마저 바빠서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을 하지 못한다는 집안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머니의 그런 성격을 못 견뎌하는 아내 때문에 어머니를 요양원에까지 모셔다 놓았으니, 어머니의 상실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까탈스럽고 이기적이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 할머니는 가족의 외면과 무관심에 받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사람을 정나미 떨어지게 하는 행동과 말들을 해 왔던 것이다.

"할머니, 오늘은 어떠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원장은 박할머니에게 다정한 말과 행동을 건네기 시작했다. 꼬옥 손을 잡아주면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표독스럽게 눈을 흘기며 대꾸도 하지 않던 할머니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 비로소 원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왜 나를 사랑한다고 해? 나 싫어하쟎아?"

원장은 할머니 손을 붙잡고 말한다. "아들이 부탁했어요. 자기 대신 어머니를 사랑해 달라고요." 할머니의 눈이 흔들리고 검버섯이 내려앉은 손이 덜덜 거린다.

"말숙아, 말숙아."얼마 전에 요양원에 들어온 김할머니는 아침에 눈만 뜨면 딸 이름을 소리소리 지르며 찾는다.

함께 살던 딸이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요양원에 모시고 온 것이다. 문제는 딸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김할머니는 허구 헌날 딸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데 딸이 가면서 일러준 말이 있다. "자꾸 저를 찾으시면 딸이 돈 벌러 갔다고 얘기하세요. 돈 많이 벌어서 온다고 하세요." 직원들이 할머니에게 "따님은 돈 벌러 갔어요."하면 할머니는 섭섭한 눈치면서도 일단 울음을 거둔다.

할머니에게 삶은 찢어지는 가난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억척같이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이란 그녀에게 목숨이고 신앙이다. 그러니 돈 벌러 간 딸을 더 이상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정할머니는 허리춤에 항상 옷을 둘둘 감고 다닌다. 세탁해서 깔끔하게 개켜놓은 옷가지를 둘둘 말아서 허리춤에 감고 다니는 건 보통이고 밥이나 빵을 보자기에 싸서 허리춤에 감고 다니기도 한다.

식구가 많아 늘 먹을 것에 굶주렸던 어린 시절, 남편을 일찍 잃고 행상으로 생활을 꾸려가야 했던 과거가 이런 행동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아침이면 할머니가 허리에 찰 짐을 준비해 드리고 할머니에게 종이돈을 드린다.

치매노인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갑자기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성적인 행동도 한다. 가족을 도둑으로 몰기도 하고 목욕이나 옷 갈아입기를 거부한다. 집에 돌아가야 한다며 떼를 쓰기도 한다.

치매노인을 모시는 일은 그래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지치고 짜증이 나게 된다. 중고도 치매단계가 되면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으니, 짐작으로 시중을 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치매노인은 더욱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 된다.

치매노인들의 행동은 도저히 맥락이 맞지 않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행동 역시 근거가 있다. TV 요리프로그램을 보다가 퍼뜩 '빨리 저녁 준비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집에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수발하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는 "여기가 집인데 어디를 가시겠다고 그러지냐?"며 말리기보다는 "왜 집에 가시려고 하느냐"고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외출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혀드리려는 걸 거부할 때 거부하는 이유가 '혹시 이 스타일이 본인의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고, 다른 옷을 권해보는 시도도 필요하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치매환자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기른 사람이라면 아이의 떼쓰는 행동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떼쓰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치매노인의 이상심리행동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것이 노인의 역사, 생활습관, 기호 등이다.

노인이 살아낸 세월을 알고 이에 토대를 둔 케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요양보호사는 까다롭고 화만 내는 치매노인을 모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이 분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얘기를 했다.

한 분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 머리맡에 어머니의 습관이나 기호를 메모해서 붙여놓았다. 어머니는 더운 것을 못 참으며, 몸을 만지는 것을 싫어 한다 등등. 매번 요양보호사가 바뀌니 이런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 맞는 케어방법을 궁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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