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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도] '북미 갈등' 대화와 타협이 해답이다


[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 미국의 동의하에 한미군사훈련이 연기된 후 남북의 만남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은 평화롭게 치러지고 있지만 올림픽 이후에 전개될 사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있다.

미국의 대북 메시지도 혼란스러워 보인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13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가능성과 관련 “북한이 2016년 이후 가속한 미사일 시험에 이어 2018년에는 더 많은 시험을 강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DNI는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16개 정보·보안 기관의 협력을 조율하는 기구다.

코츠 국장은 이날 상원 정보위원회의 ‘전 세계 위협’에 대한 연례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이것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에도 실재적 위협”이라며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결정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자리에 같이 참석한 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우리 모두는 김여정이 선전선동부의 수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외교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핵능력을 보유하려는 김정은의 야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강경 입장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러나 같은 날 백악관은 대화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앞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관람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인 11일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펜스 부통령은 “대북 압박 작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기꺼이 북한 정권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할 것이다”(The Trump administration is now willing to sit down and talk with the regime while that pressure campaign is ongoing)라고 명백히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태도 변화를 ‘극단적 압력과 동시에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at the same time)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engagement’라는 말은 ‘관여’ 보다 문맥상 ‘대화’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된다. 극단적 대치에서 온건한 대화로 전환하는데 따른 외교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사로 보인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했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되고 원칙적인 한반도 정책이 북한의 올림픽 참가 등 평화 올림픽 분위기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의 심중이 일부 드러난다. ‘5분 후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말이 요즘 미국 정가의 유행어다. 말을 막하는 사람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교하게 계산된 ‘막말’들이다.

미국의 인터넷 팩트 체크 사이트인 스놉스는 2016년 12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큐가 156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높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그래서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얽히고설킨 것처럼 들리는 막말들이 나름 계산된 것이고, 그래서 시민들이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 대화를 자신의 공으로 치부한 사실에서 실제 원하는 것이 북미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이라는 속내를 내 비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북미 사태가 복잡하게 꼬인 것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사실 둘로 나누면 명확해진다. ‘압박과 대화’이다. 미국 행정부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서 대북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대화’쪽에 서있고, 정보기관 및 국방부는 ‘압박’쪽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펜스 부통령이 말한 ‘극단적 압박과 동시에 대화’ 전략이다. 북한의 태도도 똑같다. ‘강경 대치와 대화’다. 우선 남한을 통해서 대화를 시작했고, 미국에 대해서는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다. 결국 더 갈 데는 없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군사적 대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대화와 타협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이 벼랑 끝까지 몰린 데에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정권 유지를 위해 속마음을 숨긴 채 외견적으로 '평화 협정과 불가침 조약'을 주장해 온 것도 사실이다.

19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정 기본안에 합의했다. 이 기본안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은 적대 행위를 축소하는 것이다. 이 기본안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2000년까지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프레임으로 경제 봉쇄를 단행했다. 격분한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했다. 그러나 2005년 다시 북미간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가로 ‘불가침 조약’의 체결을 요구했다. 그리고 미국은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경제 봉쇄를 철회하는 한편, 북한에 의료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저농도 우라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곧 이어 북한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해 마카오를 통한 해외 금융 거래를 차단했다. 이에 북한은 다시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기간 동안에도 북한은 중국과 공동으로 핵무기 프로그램 중단 제안을 미국에 제시한 바 있다. 이 제안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고, 미국은 남북한 국경에서 벌이는 위협적 군사 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도 이 제안을 거절했다.

북한 정권이 미국과 한국정부의 요구를 묵살한 채 핵 개발이라는 벼랑 끝 전술을 택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독재자로 불렸던 무아마르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의 비참한 종말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1년 10월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지원하는 반군들에 의해 트리폴리가 함락된 후 경호원들과 몇 안 남은 자신의 도피 마을에서 주거를 옮기면서 반군들의 추격을 따돌렸다. 카다피는 반군들의 과도 정부에 정권을 기꺼이 넘기겠다는 제안도 해봤으나, 반군이 거절했다.

카다피는 NATO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경호원들이 대거 사망하면서 결국 혼자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카다피는 반군들에 의해 체포될 때 하수구에 숨어 있었다. 그는 수류탄 공격으로 머리에 상처를 입었고 옆에 있던 국방장관 아부 바크르 유니스 자브르는 즉사했다.

카다피의 최후를 기록한 모바일 비디오는 그가 항문에 죽창 같은 것으로 찔린 채 자동차 보네트 위에 엎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나의 모습으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진 채였다. 부시 행정부는 카다피의 리비아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었다. 미국은 카다피가 외국의 호전적인 반군을 지원하는 행동을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또 국제 테러를 적극 지원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사실 카다피는 죽기 몇 년 전부터는 서방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권을 연장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국제적 활동도 했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이 표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자국 방위를 위한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해 놓지 않았다. 결국 국제질서 유지라는 미국 및 서방 국가의 필요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또 한 사람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결국 미국에 배반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후세인의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의 8년 전쟁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상당한 군사력을 확보했었다. 1990년에 있었던 1차 걸프전 과정에서 이라크는 수많은 스커드 미사일을 멀게는 예루살렘까지 쏘았다. 그리고 당시 화학 무기도 상당량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많은 증거 자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미군은 1차 걸프전 당시 바그다드까지 진군하지 않았다. 미군의 대량 피해를 우려해서였다. 1991년 1차 걸프전은 끝이 났고 이후 유엔 사찰단이 이라크를 드나들면서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후세인은 유엔에 협조하면 정권을 유지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배반당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가 9.11 테러와 직접 관계가 없는데도 침공했다. 당시엔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침공에 앞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바그다드는 침공 수 일 만에 점령됐고 1차 걸프전에서 맹위를 떨쳤던 스커드 미사일은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모두 폐기됐던 것이다. 후에 CIA는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자신들의 정보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후세인은 2003년 12월 미군이 전개한 ‘붉은 새벽’ 작전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2004년 인권 유린 등의 혐의로 교수형이 선고됐고 2006년 말 형이 집행됐다. 미국이 그동안 국제질서 유지라는 명분 아래 다른 나라를 상대로 군사력을 행사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 근거다. 그 나라가 우호적이든, 아니든. 이후 미국에 맞서는 나라는 없었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려면 스스로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게 됐다.

북한도 이들 사례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다. 북한의 정확한 진의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핵개발을 중단하는 제안을 하면서 미국의 군사력 행사를 저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모두 미국에 의해 거절됐다. 리버럴한 오바마 대통령마저도 북한의 제안을 거절하고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해 ‘핵국가 완성’을 선언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이제 벼랑 끝에서 마주하게 됐다. 군사력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대화와 타협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두 나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와 타협은 이미 시작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은 우선 남한과 대화하며 미국과의 접촉을 시도할 것이고, 미국도 대화의 창을 열어 놓은 상태다.

김상도기자 kimsangd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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