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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완 작가의 못다한 '해품달' 이야기 "결말은 처음부터…"(인터뷰①)


[이미영기자]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최종회 42.2%라는 경이로운 시청률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해품달'은 첫회부터 마지막까지 뜨거운 신드롬이었다. 많은 이들은 탄탄한 원작, 캐릭터에 완벽 빙의된 배우들과 명품 연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숨은 공신은 진수완 작가다.

탄탄한 원작 스토리가 뼈대였다면 진수완 작가는 각색을 통해 살을 붙였다. 드라마의 극적 요소가 더해졌고,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2010년부터 붙들었던 '해를 품은 달'을 이제서야 손에서 놓은 진수완 작가는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지난 16일 '해품달'의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진수완 작가는 "이제 책임감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때로는 잠 못들게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줬고, 작가로서는 평생 한 번 이루기 힘든 시청률 40%의 영광을 줬다는 '해품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인기 소설을 각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모든 대본 작업이 어렵지만 각색 작업은 고통이 따른다. 원작과의 비교와 캐스팅 논란에 시달리고 그 강도는 원작의 인기에 비례한다. 이미 팬덤이 형성되어 있을 때는 조금만 잘못해도 원작 훼손이라는 비교를 받기 마련이다.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는다. 원작은 자기 고집이 강한 작품이다. 촘촘하고 치밀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각색을 해도 욕을 먹겠구나. 욕을 먹는다면 화끈하게 먹자', 또는 '원작을 최대한 살릴까' 고민을 했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작가 입장에서 분석한다면.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올지는 몰랐다. 원작의 소스가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우리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첫사랑의 순수함과 이야기의 힘, 두 개였던 것 같다. 요즘 드라마는 빠르게, 독특하게, 쿨하게가 미덕이 되어왔는데 '해품달'이 아날로그의 정서를 건드려준 것 같다. '뿌리 깊은 나무'나 '공주의 남자'처럼 세련되거나 정치적인 담론을 나누며 촌철살인이 오가지는 않지만 마치 할머니가 아랫목에서 손자에게 이야기를 해주듯 약간 투박한 이야기의 힘이지 않나. 첫사랑의 순수함과 이야기의 투박함이 다른 드라마와의 변별점이 됐다."

-드라마의 결말이 원작과 같았다. 처음부터 큰 틀을 정해놓고 시작했나.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는 각색자가 아니라 순수 독자로 읽었기 때문에 잔영이 오래 갔다. 이를테면 액받이 무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고 심금을 울린 건 설과 양명의 죽음이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라 양명의 거사라든지 죽음을 포기 못하겠더라. 그래서 1부부터 '2개의 태양'을 이야기 했던 거다. (결말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양명의 죽음은 청사진에 있었고 뒤에 후일담은 드라마 온에어중에 대본 작업을 하면서 했다."

-연우(한가인 분)가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로맨스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는데.

"로맨스 부분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잘 때 가위 눌릴 정도로. 기억상실증을 길게 늘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사랑이 우리 이야기의 베이스가 된다. 어린 시절이 너무 길다는 이야기부터, 20대 초반의 배우들이 아역과 성인을 같이 하라는 제안도 받았다. 그들이 앞부분을 했다면 로맨스가 적다는 이야기를 안 들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이야기와 맞물리고 속도를 맞춰나가면서 적었던 부분이 있다. 연장을 염두에 둔 거 아니냐, 김수현과 한가인의 케미가 안 살아서 그런거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됐는데 그건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연우와 훤이 만난 적 없이 서찰만으로 연정을 나눴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릴 적 만나는 등 달라진 설정이 많다. 어떤 생각으로 그런 장치를 설정한 건가.

"연우의 기억상실증과 더불어 '왜 둘이 만나게 했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원작이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소설의 문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찰로 오고가는 것이 드라마로 옮겨놓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순수 독자로 봤을 때 만나지 않은 여인에 대해서 저렇게 목숨을 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양명의 죽음이라든지, 피바람을 불게 하고 거사를 치르려면 감정 이입이 확 돼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저한테는 어린 시절이 가장 중요했다. 훤과 양명의 캐릭터, 그 누구의 캐릭터를 위해서도 베이스는 중요했다. 관계의 개연성과 화면의 액티브함이 살기 위해서는 이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기억상실증 역시 기억을 찾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있으니 그 전에 적어도 서로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기억상실증이 눈에 거슬렸나' '좀 더 빨리 터트릴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대본 집필하면서 산고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6부와 7부 쓸 때.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6부는 대본만 4~5번 고쳐썼고, 7부는 본격적인 성인판이었다. 기억상실증 설정을 했는데 빛을 발하는 순간이 7부였으며, 원작과 다르다는 변별점이 보이는 것이 7부였다. 그런데 감정선이 어려웠다. 원작이 굉장히 세고 촘촘함이나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원작에 계속 말리더라. 감정신이 오래 걸렸고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를 했다(웃음)."

-드라마 명대사들이 있다. 작가가 뽑는 명대사는.

"'잊어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라느냐. 미안하구나'를 명대사로 많이 꼽는데 작정하고 멋있으라고 쓴 신이다. 저는 훤이 형선이한테 하는 '돌아서 있어라'라고 생각한다. 현 실생활에서 응용될 수 있어서 좋아하더라. 명대사라는 것은 써야지 해서 써지는게 아니라 결국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사가 아닌가 싶다. 나례진연 신에서의 대사와 '미혹되었다고 하였느냐', 두 가지도 떨칠 수 없다."

-흡족하고 만족스러웠던 신이 있나.

"연출과 대본이 미묘하게 다른데 내 그림과 똑같았던 적이 있다. 4부에서 형선(정은필)이가 지붕 위에서 꽃을 날려주는 장면이다. 또 8부에서 훤이 형선이에게 오랜만에 '돌아서 있어라' 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 때는 굉장히 차갑게 변해있는 훤이었다. (여)진구훤은 슬픔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정리를 했고 김수현이 받은 훤은 차가웠다. 마치 2막 같다. 그 장면은 수현훤과 진구훤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연출과 대본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했는데 혹시 PD와 안 맞았던 장면도 있었나.

"말하면 아마 PD가 자객들을 보낼텐데(웃음). 감정선 면에서 저렇게 해석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부분이 몇 신 있었다. 저는 절제해줬으면 하는 신에서 너무 울거나, 음악도 너무 슬펐다. 그런 면에서 감독님이 대중적이다 싶었다."

-작가 입장에서 드라마 연장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원래 24부로 기획됐고 디테일하게는 아니지만 24개의 깃발을 꽂아놓고 시작을 했다. 20부로 줄면서 다시 20개의 깃발로 꽂고 갔다. 연장에 대해 정식으로 들은 게 없어서 제가 준비한 대로 갔다. 일단 결정이 되면 대본 작업 빼고는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방송사 파업으로 인해 스페셜 방송을 했다. 드라마 집중력이든, 시청률이든 아쉬운 점은 없나.

"파업을 안 했으면 시청자들이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이것보다 조금 더 몰아쳐가는 힘이 있고 긴장감도 한 템포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촬영 현장에서는 한 템포 누르고 갈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전열을 재정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해품달'을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감사하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그냥 이제는 다 끝났다. 소설은 쭉 가는데 비해 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가 생기면 잊혀지는 소모성이 있다. 세월이 지나서 이 드라마를 돌려볼 때 혹은 다시 보다가 본방에서 놓쳤던 것들에 대해 '열심히 보여질려고 했구나' 정성을 발견해주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작품은 오래 기억이 됐으면 좋겠지만 내가 '해품달'을 했다는 사실은 빨리 잊혀지고 싶다(웃음)."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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