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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0주년' 역사를 파는 수원, 완판으로 응답한 팬들


창단 당시 용비늘 유니폼 1995벌 한정 제작, 구매 경쟁 후끈

[이성필기자] 최근 한국 사회는 역사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역사를 다양한 분야에 결합, 콘텐츠로 만들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데 눈을 떴다. TV 드라마는 물론, 게임, 출판 등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역사는 곧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며 쌓이는 이야기들을 잘 가공한다면 얼마든지 대중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해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역사라는 콘텐츠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축구 K리그는 항상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왔다. 출범 초창기인 1980년대의 방송 중계 자료 찾기도 힘든 실정이다. 특정 경기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어도 추억하기가 어렵다. 당시만 해도 스포츠 기록의 중요성을 몰랐으니 남아 있는 자료가 부실하다. 과거 프로축구 관중 기록이 대표적이다. 1천명, 2천명 등 칼로 무 자르듯 집계돼 있는 관중수는 믿기가 곤란하다.

과거와 연대하지 못한 K리그는 여러모로 아쉽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일부 구단들이 과거 기록물들을 찾아 나서는 등 정리 작업을 하면서 역사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올해로 팀 창단 20주년이 되는 수원 삼성은 구단 역사를 아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매 경기 팬 선정 레전드 11명 중 한 명씩 초대해 행사를 벌이고 있다. 구단의 역사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박건하 축구대표팀 코치, 곽희주 플레잉 코치 등이 레전드 자격으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팬들에게 인사했다.

16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11라운드에는 팀 초대 지휘봉을 잡았던 김호(71) 감독이 창단 초창기 유니폼 디자인을 복원한 레트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김 감독은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았고 팬들은 기립박수로 예우했다.

김 감독이 입은 유니폼은 이날 최고의 화제였다. 창단 연도인 1995년에 착안, 1천995벌(홈 1천500벌, 원정 495벌)의 레트로 유니폼을 한정 제작했다. 창단 당시 수원의 유니폼 디자인은 어깨에서 가슴으로 사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용비늘 무늬였다. '블루윙스(푸른 날개)'라는 팀명에 맞게 날개 문양처럼 디자인했다. 용비늘 유니폼을 입고 신흥 명문구단으로 성장했던 시절이 그대로 담겨있다.

수원은 레트로 유니폼 홍보를 위해 서정원 감독, 고종수 코치, 박건하 코치, 곽희주 플레잉코치, 권창훈 등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김호 전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해 팬들의 구매욕을 높였다.

지난 8일 온라인 1차 판매에서는 개시 3분 만에 500벌이 완판됐다. 놀란 수원은 예비로 준비했던 543벌을 곧바로 풀었고 이 역시 10분 안에 주인을 찾아갔다. 유니폼 상의 한 벌에 배번과 이름을 새기는 비용을 포함해 10만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이었지만 팬들은 신경 쓰지 않고 구매 경쟁을 벌였다.

온라인에서 구매하지 못한 팬들 덕분에 유니폼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수원 구단은 한정 제작한 유니폼을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이 만날 수 있게 했다. 16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11라운드에서 418벌을 수원월드컵경기장 앞 팬 용품 판매점인 블루포인트에서 판매했다.

놀랍게도 이 유니폼을 사기 위해 팬들은 15일 밤부터 몰려들었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텐트까지 동원했다. 밤 9시 30분에 첫 번째 팬이 도착해 텐트를 쳤고 이후 긴 줄이 형성됐다. 놀란 구단에서는 수원 용품 제작사와 함께 나섰고 차와 라면 등을 제공하며 기다림에 지친 팬들을 달랬다. 16일 오전 6시께 기다리는 팬들이 200명으로 늘어나면서 7시에 번호표를 나눠줬고 1인 1벌 구매 원칙을 재확인했다. 최신 스마트폰이나 특정 신발같은 인기 아이템도 아닌데 유니폼을 구매하기 위한 밤샘 행렬이 등장한 것은 K리그에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 10시에 판매에 들어가려고 했던 수원 구단은 한 시간 앞당겨 판매를 시작했고 유니폼은 금세 동났다. 구단은 각 사이즈별 판매 현황을 보드판에 수기로 표기해 팬들의 편의를 최대한 도모했다. 수원 팬 외에도 유니폼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이들까지 몰려 더욱 성황을 이뤘다.

유니폼 수집가라는 안민석 씨는 "수원팬인 친구에게 부탁하려다가 직접 구매하러 왔다. K리그 유니폼은 구하기 쉬워서 편하게 생각하고 왔다가 놀랐다. 원하는 사이즈 두 벌이 남은 상황에서 구했다. 친구는 구하지 못해서 다음을 기다려야 한다고 울상이다. 놓쳤다면 다시 수고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수원 관계자도 "한정판으로 제작했는데 이렇게 경쟁이 치열할 줄은 몰랐다. 일부 팬들로부터 너무 소량으로 제작한 것 아니냐는 항의까지 받았다. 어쨌든 구단의 역사를 잘 활용해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기쁘다"라고 전했다.

아직 레트로 유니폼은 남아 있다. 추가 제작 상황과 경기 날짜 등을 고려해 6월 중 주말 경기에 약 450벌이 풀릴 예정이다. 팬층이 두꺼운 수원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 역시 완판이 예상된다. 남은 80여벌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5월 홈 3연전 연속 관전 후 출석 체크 도장을 받아 응모하는 이벤트와 경기 시작 전 및 하프타임 행사에서 팬들을 찾아간다. 역사를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활용하는 수원의 노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이뉴스24 수원=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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