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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김호 감독이 6월에 '검은 옷'을 입는 이유


[K리그]고독의 대명사로 불리는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

대전 시티즌이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경기도 청평 에덴스포츠타운에 지난 11~12일 취재를 다녀왔다.

훈련을 마치고 선수단과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에서 나온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김호(64) 감독의 상의는 검은색 T-셔츠였다. 잠시 전 운동장에서는 하얀 운동복이었다. 땀에 절어 갈아입었겠거니 하고 넘기려는데 다가온 김호 감독이 말을 걸었다.

"저는 6월만 되면 검은 옷을 입습니다. 저에게는 큰 짐이 있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는 짐 말입니다."

문득 지난달 7일 불의의 사고로 잃은 김 감독의 손자와 며느리가 생각났다.

게다가 49제가 아직 끝나지 않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러냐고 질문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 김 감독이 말을 잇는다.

"제 이름이 김경호였어요. 형제들이 '경'자 돌림을 사용합니다. 기자 양반 이건 몰랐죠?"

웃으며 말을 건네는 김 감독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이름이 김경호였다고? 처음 듣는 소리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의아했다.

김호 감독에게는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큰 형님이 있었다고 한다. 고인이 된 형님의 존함은 김경수. 어린 시절 큰 형님의 올곧은 품성이 김 감독을 변화시켰고 축구라는 스포츠에 헌신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19살 때인가요. 갈 팀이 없어서 걱정하다 어렵사리 실업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러다 청소년 대표 떨어지고 허무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창 밖에는 눈이 오고 괜히 눈물은 흐르고…. 바닥을 치는 기분이더군요.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벅찬 일이었지요. 지금 대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딱 그때의 기분과 똑같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그를 잡아 준 사람이 바로 큰 형님이었다.

형님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군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형님도 축구를 잘해 육사 축구부에서 주장까지 했다고 한다. 형님이 육사를 졸업해 장교로 임관한 사이 김호 감독은 해병대를 거쳐 제일모직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1967년 1월 중앙정보부에서 창단· 운영한 국가대표팀 양지에 선발됐다.

"시골 바닥에서 있던 제가 이름이 알려지면서 실업팀에 들어간 것도 큰 영광인데 국가대표까지 하라니 큰 영광이었지요. 형님도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인생에 짐이 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십자성부대 정보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한 형님이 베트콩의 총을 맞고 전사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중이던 김호 감독은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고 한다.

"형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 그렇게 보내야하다니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눈물이 와르르 쏟아지더군요."

결국, 김 감독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형님의 흔적을 붙잡고 울음을 삼키며 함께 귀국했다. 남은 인생을 형님의 몫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결심, 고독과의 사투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호국보훈의 달인 6월만 되면 김 감독은 큰 형님을 위해 검은 양복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조이뉴스24 청평=이성필 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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