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20년 가까이 꾸준히 작품을 했다. "한 계단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그대로인지 모를 정도"로 크게 주목을 받지도, 그렇다고 아예 잊히지도 않았다. 그저 "내 몫은 하자"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규한만의 자리가 생겼다.
이규한은 연기를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연기를 시작했고, 늘 더 배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어디까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달려 왔다. 잠시라도 현장이 편해지면, 오히려 더 긴장하고 더 준비를 많이 한다.
"더 여유가 생기면 즐거워질 수도 있겠지만 전 항상 긴장되고 혹시 못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커요. 아직도 현장이 어려워요. 스태프들도 계시고 모두 자기 몫을 하시잖아요. 배우들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끝내기도 해요. 전 최소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거창하게는 모르겠지만 이건 일이고 전 일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자기 몫을 해야죠."
이규한의 이런 마음가짐은 '잘 하지는 못할지언정 폐는 끼치지 말자'라는 본인의 좌우명에서 비롯됐다. 그렇다 보니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진 못 하더라도 충분히 한 축은 책임질 수 있고, 이는 매년 한 작품 이상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안정감인 것 같아요. 얘는 뭘 맡겨도 기본은 한다 그런 거요. 그리고 전 일단 내 앞에서 모니터해주는 감독님 스태프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혼자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해 왔고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지 않을까 싶어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하다 보면 때론 주목을 받기도 한다. 최근 종영한 SBS '애인있어요'도 그랬다. 이규한은 "작품이 이슈가 되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호평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규한은 크게 들뜨거나 하지 않는다.
"'애인있어요'에서 진희 형, 현주 누나와 함께 연기를 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예전엔 주로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제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엔 현주 누나 진희 형이랑 하다 보니 이끌려지게 됐고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나도 모르는새 매니러즘에 빠져있다고 느꼈어요. 이 정도면 됐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많이 깨졌고 다시 분발하게 됐어요."
이규한은 비슷한 시기에 연기를 시작한 동료들 중 누군가는 톱스타가 되고 누군가는 사라지는 모습들을 수없이 봤다. 그는 톱스타를 꿈꾸지 않는다. "아직까지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러면 겸연쩍다"는 이규한이지만, 그도 듣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꾸준하게 오래 연기를 해서 몇 십 년 뒤엔 후배 연기자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고 싶다고 했다.
"스타라는 수식어는 물론 들으면 좋겠지만 연연하진 않아요. 대신 선생님 수식어는 연연해보고 싶어요. 지금보다는 그때 더 인정을 받고 싶어요. 실천가능한 부분에서 제 나름대로는 그게 성공이에요. 어릴 때 기대치가 있었지만 절망도 했고 패배감을 느낀 적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내 장점은 뭔가 생각해보니 그냥 꾸준함이에요. 묵묵히 버티고 있고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요."
이규한은 선생님 소리를 들을 때까지 지금처럼 꾸준히 연기를 한다면 자신이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규한은 늘 현실의 자신을 체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었다. 가장 유념하고 있는 건 '나이 답게 연기하는 것'이다.
"사실 이쪽 일을 하면 철이 잘 안들기도 하고 세상을 잘 몰라요. 연기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친구들도 그래서 더 자주 만나려고 해요. 정치 경제 사회에도 관심을 갖고요. 인생을 모르면서 어떻게 연기로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나 싶고, 그러면 어떻게 시청자 분들의 공감과 이해를 얻는 연기자가 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이규한은 자신의 나이를 찾아가고 있었고, 언제 어떤 역할이 들어와도 제 몫을 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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