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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조우진, 잊을 수 없는 얼굴(인터뷰)


"이병헌 아우라 엄청나…긴장 안 했다면 거짓말"

[권혜림기자] 열차는 당산철교를 지나고 있었다. 차창 밖 한강은 황량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의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낯선 번호가 휴대폰을 울렸다. "조우진 씨, 출연 확정됐습니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객실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걸었다. "네?"라고 되묻는 목소리과 휴대폰을 잡은 손이 벌벌 떨렸다. 영화 '내부자들'의 조상무 역은 그렇게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제작 (유)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의 캐스팅 소식을 듣던 그 순간을, 배우 조우진은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이 영화에서 그는 오회장(김홍파 분)의 오른팔 조상무 역을 맡았다. 연극 무대에서 기반을 닦고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작은 배역으로 대중을 만났던 그는 '내부자들'을 통해 날개를 폈다.

험악한 인상을 쓰지 않고도 서늘함을 완성해낸 눈빛, 마치 정적인 사무 업무를 마무리하는듯한 평정(平靜)의 표정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조상무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등 쟁쟁한 배우들 못지 않은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날았던 조우진의 모습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쉽사리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의 개봉 후 조이뉴스24와 만난 배우 조우진은 "아직도 큰 스크린 속 나의 연기를 보는 것이 살 떨린다"며 "민망하고, 익숙치 않은 일"이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니 그제야 전체의 그림이 보이더라는 것이 조우진의 이야기다.

"VIP 시사로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배우들과 함께 보니 시나리오로만 보다 현장에서 보지 못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궁금했기 때문에 제 모습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이후 두 번 정도 더 보니 역시 제 부족한 부분만 보이더라고요. '조금 더 유연하게 했어도 되는데' '조금 더 잘 했으면 좋았을텐데' 싶은 마음이요. '그냥 감독님이 오케이 했으니 맞나보다' 하고 넘어간 장면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잖아요. 공연은 오늘 아쉬웠던 부분을 내일 잘 하면 되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으니, 무조건 현장에서 감독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죠."

조우진이 관객의 시선을 통째로 빼앗는 첫 번째 순간은 단연 안상구 역 배우 이병헌과 함께 한 장면이다. 오회장을 궁지로 내몰 증거를 감춘 안상구, 그 계략을 알아챈 조상무가 콘테이너에서 마주하는 신이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수트, 도통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퍼런 눈매는 잔인무도한 조상무의 행각과 소름 돋는 어울림을 빚어냈다. 이병헌과 함께 한 첫 번째 신을 돌이키며, 조우진은 "긴장하지 않았다고, 부담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답했다.

"워낙 몰입도가, 아우라가 엄청난 분이니까요. 관객에게 연기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분이기도 했고요. 저 또한 그런 마음이었기에 그 분이 하는대로 따라갔어요. 그러다보니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현장에서 여러 테이크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가 지났을 땐 스스로도 만족스러웠어요. '누는 되지 말자'는 각오였는데, 불안감을 가졌던 것에 비해선 괜찮지 않았나 싶었어요.(웃음)"

평범한 회사원이라 해도 믿을 법한 외양, 사투리가 살짝 섞인 대사톤은 전형적인 악역과는 거리가 먼 조상무만의 개성을 완성했다. 작업을 앞두고 우민호 감독이 특별한 디렉션을 주지는 않았는지 묻자 "연기에 대한 복잡한 분석을 요구하진 않았다"며 "단순, 명료, 간결, 정확한 캐릭터 액팅을 원했고 그것도 일상적으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 답했다.

"이런 내용을 한 번에 이야기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제가 느낀 바로는 그랬어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나 현장에서, 후시 녹음을 할 때까지 마찬가지였죠. 캐릭터는 평범하지만 기성 배우에 속하지 않은 낯선 배우가 서늘하고 차갑게, 천편일률적인 업무를 행하듯이 악행을 하면 섬뜩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연기했고, '잘 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무조건 감사한 일이죠."

현재 조우진은 배우 고수와 이원근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유본컴퍼니에 소속돼 있지만 '내부자들' 작업 당시만 해도 매니저 없이 홀로 일정을 챙겼다. 프로필을 가지고 있던 캐스팅 에이전시로부터 '내부자들' 오디션 정보를 들었고, 1차 오디션 때만 해도 조상무 역이 아닌 그의 수하 역 물망에 오른 상태였다. 조우진은 "(오디션을 보는) 조감독이 똑같은 지정 대사 연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본 상태여서인지 첫 미팅 때는 무표정해보이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금와 생각하니 그것도 이해가 가요. 조금 지쳐보이시길래 '힘들어보이시네요'라고 했더니 '괜찮습니다. 하시죠'라고 해서 지정 대사 연기를 했어요. 끝냈더니 조감독이 조금 웃더라고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다른 경상도 사투리 대사를 읽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우장훈 검사 아버지(남일우 분)의 대사였어요. 조감독은 '혹시 저희 작품을 함께 하게 되면 사투리 감수를 부탁해도 되겠냐'고 묻더라고요. '아유, 그럼요. 괜찮죠. 좋은 역할도 있으면 더 좋고요'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졸랐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 당시만 해도 '내부자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조우진의 설명이다. '이병헌이 참여 예정인,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기반으로 한 범죄 드라마'라는 것이 영화에 대해 그가 아는 전부였다.

"당시 서너 작품의 오디션을 봤는데, 그 오디션을 가장 못 본 것 같았어요. 짧은 시간 안에 오디션을 보고 나오면 허탈감이 있기도 하죠. 그런데 며칠 뒤 최종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차수를 달리해서 '최종 오디션'이라는 걸 본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역할이 조금 올라갔다고 하더라고요. 조상무 역을 보게 됐다고요. 정말 뜻밖이었죠.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수트를 입고, 예의있게 인사를 하고 오디션을 보는데 1차 때보다 더 못 한 것 같고, 기분이 안좋더라고요."

최대한 디렉션을 따르며 다섯 테이크의 오디션을 본 뒤, 조우진은 헛헛한 마음으로 2차 오디션 장소를 빠져나왔다. 정갈하게 차려입었던 수트를 벗고, 다음 약속을 위해 건물 화장실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맑았던 하늘에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수트케이스를 들고 싱숭생숭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그를 눈여겨봤는지, 니이 지긋한 경비원은 '누가 버리고 간' 장우산을 손에 들려줬다.

기대하지 않았던 낭보는 며칠 뒤 날아왔다. 영화아카데미 오디션을 보러 가던 지하철 안이었다. 확신이 서지 않아 저장조차 하지 않았던 조감독의 번호로 합격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조우진은 '내부자들'의 조상무가 됐다. 생생히 들려준 그의 '내부자들' 오디션기는 꼭 한 편의 단막극 같았다.

조우진은 "많은 관심이나 주목을 받으려 연기를 한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업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만큼 행복한게 어디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배우의 삶을 터널처럼 지나며, 그는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는 순간을 맛보고 싶다"고 꿈꾼다.

"그런 생각이 연기를 하는 데 원동력이 됐어요. 갑작스럽게 관심과 주목을 받다보니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감사하고 고맙죠.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제가 언제 데뷔했는지, 그동안 뭘 했는지, 한 마디로 '너는 누구니?' 하고 물어봐주잖아요. 질문들에 답을 하다 느꼈는데, 거의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는 기분이었어요. 저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서 굉장히 감사해요. 데뷔 후 한 번도 없던 순간이거든요."

한편 영화 '내부자들'은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흥행 기록을 모두 새로 쓰는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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