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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류승완이라는 보편성(인터뷰)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 보편성 획득하는 길"

[권혜림기자] 대진운은 사나웠다. 충무로 대표 흥행 감독 최동훈의 180억 대작 '암살'과 할리우드 인기 프랜차이즈물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이 여름 극장가를 접수한 상태였다. 두 영화가 한 주 차로 개봉하며 인기몰이를 이어가던 가운데, '베테랑'이 나섰다.

이 쪽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액션 장르에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아 온 류승완의 신작이었다. '국제시장'으로 관객에게 한 발 더 친숙하게 다가간 톱배우 황정민에 더해 빼어난 연기력의 청춘 스타 유아인도 가세했다. 앞선 두 대작과 비교할 때 가장 통쾌하고 속도감 있는 오락 영화라는 점도 이점이었다.

지난 5일 개봉한 '베테랑'(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은 무서운 흥행세로 올 여름 영화 시장 최고의 다크호스였음을 입증했다. 개봉 13일 만에 누적 관객수 700만 명 이상을 끌어모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이야기가 현실 속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속 시원히 긁어주며 쾌감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의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와 만났던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새 영화가 새로운 관객과 성공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고, 불안해했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당대 청춘의 가려진 얼굴들을 비췄던 그다. 15년이 지나고, 어느덧 충무로의 중견 감독이 된 류승완은 이제 더이상 '신세대'일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과 청년 관객들 사이의 간극을 이야기했다. 꾸준히 관객을 만나는 감독으로서, 영화를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일은 늘 그의 고민이다.

"세대가 바뀐 걸 느껴요. '전엔 내가 새로운 세대였는데 이제 영화로 새로운 세대를 만나는구나' 싶은 거죠. 난 여전히 젊지만, 내가 경험 못한 세대를 만난다는 기대와 공존이 커요. 새로운 세대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눈치도 많이 보고요. 식품을 예로 든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통계내 그에 맞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잖아요.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과 태도가 뚜렷하게 존재하니까요. 저도 어릴 때부터 기존 세대와 새 세대가 충돌하는걸 보며 성장했어요. 그게 뒤집히기도 하고 화해하며 공존하기도 하는 걸 봤죠. 지금의 나는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어디 서 있어야 하나 고민이 됐어요."

그 고민이 괜한 겸손이었는지, 고민 덕에 양질의 결과물이 완성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베테랑'은 폭넓은 관객층의 지지를 얻으며 빠른 흥행 기록을 썼다. 감독은 영화의 흥행 여부, 관객의 호오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 다음의 과제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관객이 단순이 어디서 웃는지, 어디서 놀라는지를 파악하기보다 그들이 왜 웃는지, 왜 이 영화를 통쾌하게 받아들이는지 그 반응의 지점을 쌓아가고 싶다"는 것이 류승완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대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호하고 군더더기 없는 어투에선 확신이 읽혔다.

매 작품 보여준 에너지 넘치는 액션과 막힘 없는 서사는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한 장르의 핵심 인물로 각인시켰다. 날카로운 현실 인식에서 뿜어져나오는 재기 넘치는 현실 풍자도 그의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이제 류승완은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몇 안 되는 충무로 감독들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베테랑'은 가장 '류승완다운'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류 감독은 관객 각자가 보는 '류승완 영화'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다른듯하다"는 그는 "저의 욕망과 저를 바라보는 욕망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베테랑'을 본 관객들이 '(류승완이) 제일 잘 한 영화'라고 하면 기분은 좋죠. 그런데 그 말에는 안주하지 않으려 해요. 솔직히 말하면 제게 별 의미가 없거든요. 나를 안주시킬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흘려버리거나 떠나버리고 싶은 말인 셈이죠. 제 영화를 다시 볼 땐 늘 부끄러운데, 다시 봐도 좋은 건 '주먹이 운다'예요. 유머가 거의 없는 작품이죠. 제 안엔 여러 취향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류승완이라는 연출가에게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지, 제가 그 기대를 채울 수 있는지는 매번 다르겠죠."

류 감독은 "평생 함께 하는 사람도 어떨 때 보면 전혀 다른 사람 같지 않나. 저는 '류승완은 이걸 잘 해'라는 선입견과 늘 싸워왔다"며 말을 이어갔다.

"데뷔 이후 내내 재기발랄한 것, 리얼한 것, 통통 튀는 것을 잘 한다는 선입견을 만났어요. 누구나 선입견은 가지고 있어요. 그 편견을 걷어낸다는 것이 사실 대단한 상태에 이르는 거죠. 다른 사람이 내게 갖는 편견이나 선입견은 어쩔수 없다는 것을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충실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누군가가 좋았다고, 나빴다고 말하는 것에 다 맞출 수 없잖아요. 보다 나에게 심플해지고 솔직해지는 것,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베테랑'에는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오대환 등이 출연한다. 지난 5일 개봉해 흥행 중이다.

이하 류승완 감독과 일문일답

-'가장 류승완다운 영화'라는 평에 겸손한 답을 내놨다.

"내가 한 일이 없다. 배우들이 다 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영화다. 황정민, 유아인, 오달수, 장윤주 등의 영화다. 내가 한 건 진짜 별 것 없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판을 깐 거지.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썼으니 그들이 영감을 준 거다. 캐스팅과 연출 과정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너무 잘해줘서 내가 고른 것밖에 없다. (그런 칭찬을 받아들인다면) 이 영광을 내가 차지한 것밖엔 안 된다.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관객들이 좋게 반응한 거니까, 류승완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오버'인 것 같다."

-첫 악역에 도전한 유아인(조태오 역)에게도 호평이 쏟아졌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선한 미소를 가지고 악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말 유아인 머리 좋구나' 싶더라. 이 친구, 정말 잘한다. 잘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유아인이 갖는 장점이 있다. 그만의 용기다. 청춘 스타가 악역을 하려면 고려할 것들이 많다. 유아인은 '광고, 한류? 모르겠고, 난 배우로서 이걸 하고 싶어'라는 식이다. 약간 '꼴통' 기질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웃음) 기본적으로 '청춘은 반항'이라는 말을 잘 실천한다. 유아인만의 개성이다. 악역을 이런 식으로 나른하게, 매력적으로 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재벌가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슈들이 많은 시대에 '베테랑'의 서사가 통쾌함을 안겨준다는 평이 많다. 특정 기업의 사건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추측도 있는데.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섞여 있다. 누군가를 연상한다면 각자 안에서 보시는, 그 사람이 맞다.(웃음) 보다 나아가 조태오가 지금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일터에도 있을 수 있고 학교에도 있을 수 있다. 집에서도 누군가는 조태오일 수 있다. 조태오와 함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서도철(황정민 분)이 될 수 있다. 거기 '쫄지' 않고 저항했을 때 아주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다.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해봐야 안되니까' 하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것 같다. '쟤들은 우리와 상관없다'고들 하지만, 상관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용기를 말하고 싶었다. '너희들도 힘을 써'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다. '나도 가오 있어! 안 쫄아! 너도 나도 사람인데 왜 사람에게 그렇게 해?'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영화를 보는 분들이 그런 용기를 얻으면 좋을 것 같다."

-선하고 능력도 있고 불의에 적극 맞서는 형사 서도철은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 아닌가.

"실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저는 이 세상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돌아가는 것 같다.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전작들을 준비하며 만난 '서도철에 가까운' 형사들 중) 아주 친한 사람도 있다. 각자 위치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게 너무 중요한 것 같다. 그걸 잘 못했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우리는 몇 년 째 보고 있지 않나. 어떤 큰 사고가 터지고 사건이 발생하고 위기와 재난 상황이 도래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손을 내밀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는 '고담'이 됐을 것이다. 우리가 응원할 수 있는 대상이 여러분 스스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응원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영화를 통해 보고 싶었다.

우리의 서도철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은 아니지만 누군가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일으켜줄 수 있는 사람이긴 한 것 같다. 저는 이 영화가 세상을 바꿀 영화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한 사람을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너무 지쳤던 심신이 회복될 수도 있다. 어떤 어린 친구는 '아, 저런 정의로누 사람이 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이 영화가 갖는 가치가 그런 지점에 있길 바란다."

-'기자가 '영빨'로 기사 쓰냐'는 대사에는 기자 시사관에서 많은 웃음이 터졌다. 그 외에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대사 등 '베테랑'에는 유독 회자되는 대사들이 많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서도철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다. '베를린'에서 표종성의 대사 '난 우리가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의 변주다. 강수연 선배가 영화인들과 술자리를 할 때 '영화인들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말을 듣고 적어놨었다. 예전에 한국 영화계가 다들 어려웠던 시절, 뭘 먹으면서 눈치를 보던 시절에 전 그게 너무 멋있었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했었다. 조태오의 대사 '어이가 없네'에서 '어처구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장면도 좋아한다. 원래는 '어이'가 아니라 '어처구니'의 유래인데, 조태오에게는 그게 '어처구니'건 '어이'건 상관 없는 거다. 대사를 아무리 잘 써도 배우들이 확 날리면 소용 없다. 그런데 이 대사들을 배우들이 다 말로 만들어줬다."

-군더더기 없는 엔딩도 '요즘 한국영화 같지 않다'는 평으로 이어졌다. 보통 강단으로는 그렇게 설명을 생략한 과감한 엔딩을 시도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원래는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주부도박단을 잡는 설정이 있었지만 바뀌었다. 우리 영화의 엔딩에 뭔가 희망이 있었으면 했다. 어쨌든 서민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연대의 힘을 말하려 했다. 한 사람이 불합리에 저항하면 작은 것일 수 있지만, 마지막에 명동에서 조태오와 대결하는 건 서도철 혼자가 아니지 않나. 시민들이 큰 역할을 하는건 아니지만 쓰러진 도철을 일으키고, 모인 사람들이 침묵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 굉장히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가 영화를 통해 희망을 얻고 싶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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