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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박정범 감독 "내 영화 속 현실, 왜 고통스럽냐고?"(인터뷰)


'무산일기' 이어 '산다'로 BIFF 방문, 선재상 심사도

[권혜림기자] 박정범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무려 세 가지 포지션을 가지고 방문했다.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산다'가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돼 감독 겸 배우로 초청됐고 영화제의 선재상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돼 바쁜 열흘을 보냈다. 영화제 기간 중 조이뉴스24가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박정범 감독을 만났다.

영화 '산다'는 산골마을에서 누나와 누나의 딸과 함께 사는 정철(박정범 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철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모은 돈을 동료가 들고 도망을 가자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누나가 일하던 된장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정철은 사장에게 젊은이들을 고용하라고 설득, 웃돈을 받고 동료들을 공장에 들이려 한다.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은 일방적 해고 통보를 받으며 정철과 갈등을 빚는다. 생계의 막바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돌파구는 없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이 박정범 감독 특유의 문제의식을 거쳐 영화로 완성됐다.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한 전작 '무산일기'에 이어 감독은 고단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그렸다. 건조하고, 막막하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감독은 "왜 그렇게 늘 삶을 고통스럽게 보여주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감독의 답은 명료했다.

"늘 스스로에게도 가져 온 질문이에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이미 그 자체로 불평등해요. 주어지는 고통의 세기가 다르죠.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가 폭력의 세기를 결정한다고 생각해보면, 이 세계의 폭력성은 상대적이죠. 영화가 고통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그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보지 않고 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세계에서 어떤 노동자들은 그렇게 잘려나가기도 하고요. 착취되는 대상과 지배 계급의 갈등 구조는 늘 있지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일상을 살기 위해 자신도 달리고 있으니 옆을 보기 힘들거든요."

박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일상에 호기심과 의문, 관심을 갖길 바라고 있다. 그 관심이 현실 속 체계의 갈등과 부조리한 시스템을 향한 문제제기로 나아간다면 감독에겐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는 "세세한 행동이라 해도 이상한 행동에 '왜?'라는 질문을 달면 그 때부터는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드디어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가 그런 과정을 도왔으면 좋겠다"며 "영화가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이라면 진짜 현실에 있는 사람과 비현실이 서로 소통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다'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청년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박정범 감독과 배우 이승연·박명훈·신햇빛 등이 출연했다.

이하 박정범 감독과 일문일답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과 주연을 겸했다. 피로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일이니 힘들어도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물리적으로는 솔직히 다섯 배는 힘들다. 이번 영화는 작업 기간도 길었는데, 서울에서 찍는 것과 한겨울 강원도에서 작업하는 건 다르다.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다들 힘들었을 것이다. 부모님 댁에 직접 세트를 지었다. 극 중 된장 공장 사장으로 출연한 아버지, 연출부와 함께 부뚜막을 만들어 촬영했다. 다치신 분들도 있었고 다들 고생이 정말 많았다."

-영화가 힘들다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코미디나 멜로, 아름답고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은 건 저도 그렇다. 힘들어서다. 힘들다는 것은 의문, 퀘스천마크를 갖게 되는 감정이다. 저는 약자들, 아픈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찍는 것이고 그걸 스스로 생각하는 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보여주다보니 폭력성이 있는 장면들도 많이 보인다. 저 역시 시야가 좁아 폭력성을 통해서만 현실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더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고 달라진다면, 더 관용과 포용을 안고 관객에게 부조리를 보여줄 수 있다면 제 영화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계급 간 갈등, 노동자와 자본가의 태생적 불화, 그로 인해 벌어지는 약자들 사이의 생존 경쟁을 그렸다.

"KT나 쌍용차 등 우리가 아는 모든 노동 쟁의들은 계급 간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아주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 생기는 일이다. 우리는 기업의 생산물들을 소비하지만 그 과정은 보지 못한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익을 서로 나누지 않는다. 불이익의 리스크는 노동자에게, 이익은 자본가에게 가는 구조다. 비합리성과 부도덕함이 만연돼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살다 보면 자기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그럴 때 이상주의자들은 바보처럼 보이게 된다. 극 중 명훈과 수연이 그런 인물들이다. 명훈과 수연만이 어미 없어진 달걀을 키우려 한다. 그게 제가 생각한 기본 구조인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상주의자들은 실패한다. 자기 삶의 당위성들이 충돌하며 그런 일이 벌어지니 아이러니하다. 우리 안의 선이 있고 그게 악으로 변할 때 서로가 상처를 받고 전쟁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다시 우리가 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영화다. 극 중 정철은 하나라는 조카를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돼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결말을 통해 관객이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는 것인가?

"당연하다. 인물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모든 긍정적 가치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철은 조카를 통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얻었고, 기회가 있어 자신이 살 수 있게 됐다. 스스로 반성하고 극복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구원이라 믿는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늘 나의 화두다. 우리는 이상주의자임을 포기할 수 없다. 대부분이 실패하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세계가 유지되고 영위되는 방법이라고 본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는 갈등이 배태돼 있고, 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건전하고 투명한 구조의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길 바란다. 세계가 이 영화에 나오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멸망했을 것이다. 노동법, 인권이 있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 둘의 줄다리기가 있고 세계는 계속 가고 있다."

-올해 부산에 감독이자 배우, 심사위원으로 방문했다.

"부산은 영화 '무산일기'를 처음 상영한, 제겐 영화의 시작 같은 곳이다. 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간다. 보지 못한 세계의 새로운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를 보며 동시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지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선재상 심사위원으로 올해 출품작들을 심사하는 소감은?

"늘 하는 말이지만, 본선까지 올라온 영화들은 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상을 받는 작품들은 조금 더 격려해주고 박수쳐줄 만한 작품들인 것이다. 훨씬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거나 더 좋은 영화라고 선언하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특정 영화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축제니까 박수쳐 주는 것이다.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심사라는 것이 사실 어불성설이다. 누가 누굴 판단한다기보다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일이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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