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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왕' 우문기 감독, 청춘에 말 걸다(인터뷰)


개봉 일주일 만에 1만 관객 돌파

[권혜림기자] 영화 '족구왕'(감독 우문기·제작 광화문시네마)이 개봉 일주일 만에 1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돌파하며 독립 영화 흥행 고지를 넘어섰다. 지난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돼 '독립영화계 블록버스터'라는 극찬을 얻었던 만큼 흥행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족구왕'은 최근 독립영화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색채의 영화다. 그늘진 사회상을 비추거나 날것의 욕망에 주목한 영화들과는 다른 궤의 작품이다. 누군가는 '워터보이즈' 류의 일본 청춘물을, 누군가는 '소림축구'로 대표될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를 떠올렸지만, '족구왕'은 언급된 영화들의 미덕을 갖추고도 저만의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패기와 센스가 엿보이는 연출에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였다.

영화는 학점도, 토익도, 연애 능력도, 패션 센스도 평균 이하인 복학생 만섭(안재홍 분)의 이야기다. 그가 돌아온 학교는 이미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제1의 할 일이 돼버린 공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선배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만섭의 화두는 오로지 첫 눈에 반한 캠퍼스 퀸 안나(황승언 분), 그리고 족구다. 군 복무 시절 족구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만섭은 2년 새 사라져버린 학교 족구장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학교 동기 창호(강봉석 분),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려는 미래(황미영 분)와 팀을 이뤄 경기에도 나선다.

영화를 연출한 우문기 감독은 조이뉴스24와 만나 영화의 제작 과정을 돌이키며 개봉을 맞은 소회를 풀어놨다. 서울 용산 미군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그는 정작 족구와는 친하지 않은 20대를 보냈지만, '족구'와 '복학생'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상징 관계에 흥미를 느꼈다. 감독이 복학생 만섭의 외양을 그려낸 과정도 비슷했다. 만섭의 패션과 화법을 비롯해 족구 경기에 몸을 내던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 머릿속에 콕 박힌 복학생의 이미지 그 자체다. 실존 여부는 더이상 중요치 않은, 아이콘의 재현이다.

감독은 "저 역시 대학 시절 족구를 하는 복학생을 본 적은 없다"며 "제가 학교에 다닐 땐 이미 많은 이들이 족구를 안하기 시작한 시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이미지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복학생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며 "'복학생이 족구나 하고 앉아있지'라는 생각과 달리 누구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그런 복학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족구와 사랑은 '족구왕'을 가로지르는 소재인 동시에 주제이기도 하다. 학문의 상아탑도, 청춘의 거리도 아니게 된 캠퍼스에서 영화 속 족구는, 그리고 사랑은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창구다. '마음껏 족구하라'고, '마음껏 사랑하라'고 외치는 이 영화에 젊은이들이 감흥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홍익대학교에서 영상영화를 전공한 감독은 여느 대학생들처럼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그는 "이 쪽에선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다녔고, 한편으론 토익 공부를 했다"며 "주변엔 등록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집안이 부유해 유학이 결정된 친구도 있었다. 미대에 왔지만 요리 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기타를 치는 친구도 있었으니 여러가지를 볼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우문기 감독은 "청춘 영화라 하면 어렵고 우울한 모습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친구들이 단순히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냐"며 "어제 나에게 윙크한 아이 때문에 설레고, 꽃 피는데 소개팅이 없어 속상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라고 설명했다.

'족구왕'에는 안재홍·황승언·정우식·강봉성·황미영 등이 출연했다. 지난 21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이하 일문일답

-주인공 만섭은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착한 청년이다. 판타지에 가까워보인다.

"만섭을 제외한 창호와 안나 등 다른 등장 인물들은 지금 있을 법한 인물로 생각했다. 내가 겪었고 어디선가 들었던 인물들을 희화화해 만든 캐릭터다. 오히려 만섭은 전혀 듣도 보지도 못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인물로 만들었다. 긍정적이고 올바르고 너무 착한 친구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 친구가 어느날 캠퍼스에 나타나서, 현재 실존할 것 같은 이런 친구들에게 변화를 선물하고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눠주는 이야기다. 만섭은 홀연 없었던 사람이 될 것도 같은,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할 만한 인물이다. 좋은 쪽으로,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영화의 엔딩 이후 만섭의 삶은 어땠을까?

"잘 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만섭은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어떤 것을 하더라도 즐겁게 만족하며 살아갈 사람이다. 스펙이 안 되니 좋은 곳에 취직은 못했겠지만, 작은 회사 말단으로 들어가 매일 밤샘을 하면서도 '선배, 이거 너무 재밌지 않아요? 밤을 새니 체력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하며 열심히 다닐 거다. 짬날 때마다 운동도 하고, 거기서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스스로 만족하며 살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즐겁게 살지 않을까."

-밴드 페퍼톤스가 OST에 참여했고 카메오로도 등장한다. 이들 외에도 곳곳에 출연한 카메오가 많더라.

"'1999, 면회'의 배우 심희섭이 첫 장면에 잠깐 나왔고 나 역시 군인으로 등장했다. 같은 영화의 김창환도 만섭의 룸메이트로 나왔다. '우리 영화에 연예인도 나온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카메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지 못했다.(웃음) 우리 부모님도 출연하셨다. 총장과의 대화 장면에서 대사는 없는 만학도로 등장했다. 동생도 학생으로 출연했고, 족구 시합의 수학과 선수들은 고향 친구들이다. ('1999, 면회'의 감독이자 '족구왕'의 각본과 제작을 맡은) 김태곤 감독은 거의 모든 신에 다 나왔다. '여기 원래 족구장 아니었냐'고 묻는 만섭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김태곤 감독이다. 광화문 시네마 사람들은 거의 다 몇 번 씩은 나온다. 우리끼리 보면 아는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웃음)"

-'족구왕'과 '1999, 면회'를 제작한 광화문 시네마를 대안적인 영화 공동체로 여겨도 되나.

"의도하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영화사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휴학하고 월세를 같이 낼 사람들이 필요해서 만들었다.(웃음) 대안으로 만들어서 대한민국 독립영화나 상업 영화계의 새로운 지표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다. '족구왕' 이후 해체될 수도 있다. 차기작 투자가 안된다면 사비로까지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장르나 이야기 면에서 독립영화나 상업영화 중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은 작업들을 하고 싶었다.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하고 싶은데 그걸 재밌게 하기엔 돈을 주는 사람이 없지 않나. 하고싶은 이야기를 재밌게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 못만들게 되어도 괜찮다. 수익 회사라기보다 학교 동아리 같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큰 계획을 가진 집단은 아니다. 서로 영화를 만들 때 빈 곳을 메꿔 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남겨지고 싶다."

-독립영화가 상영관을 잡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여름 대작들이 많아 개봉을 하면서도 부담이 느껴질 것 같다.

"첫 반응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봤다. 영화제는 적극적인 관객들이 찾는 곳 아닌가. 그 때의 반응이 개봉 후에도 비슷하게 나올지 궁금했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니 약간 떨리기도 한다. 영화제 상영 때처럼 코드가 맞아 함께 재밌게 이야기해줄 사람들이 또 있을까 궁금하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선 주성치를 따라한 삼류 영화 아니냐고 하더라. 편견과 싸우는 일이 제일 힘들 것 같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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