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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퍼거슨, 과감한 결정 두려워하지 않았던 명장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27년 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끌어

[이성필기자] 27년 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장기 집권했던 알렉스 퍼거슨(72) 감독. 은퇴를 선언하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그는 혁신과 도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명장이었다. 선택의 순간에는 늘 과감했다.

퍼거슨 감독은 이번 시즌 맨유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맨유의 통산 20번째 우승이었다. 그 중 13번은 퍼거슨이 일궈낸 것이었다. 1986년 맨유에 부임한 그는 맨유 제국 완성의 주재자였다.

부임 첫 해 퍼거슨은 리그 11위를 기록했다. 1987~1988 시즌 2위로 올려놓으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후 중하위권을 오가며 팬들로부터 사퇴 압력에 시달렸다. 결국, 성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고 1989~1990 시즌 FA컵 우승을 제조했다. 맨유 최초의 FA컵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퍼거슨은 1990~1991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컵 위너스컵 우승컵도 수집했다. FC바르셀로나(스페인)를 꺾은 우승이라 극적 효과는 더했다.

당시 퍼거슨 감독은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브라이언 맥클레어를 영입했다. 맥클레어는 위너스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탁월했고 특히 희생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퍼거슨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총애를 받던 맥클레어였지만 퍼거슨의 전략에 맞지 않으면 중용되지 않았다. 기량이 하향세를 그리자 벤치로 밀렸고 결국 1993~1994 시즌 종료 뒤 고향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그래도 그는 후일 퍼거슨 감독 옆에서 코치로 보좌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도 스승의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퍼거슨의 지도력이 절대적이었고, 그의 결정을 믿었다는 것이다.

흡사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바로 '산소탱크'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대했던 퍼거슨 감독의 태도가 이와 유사했다. 퍼거슨은 2005~2006 시즌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에서 활약하던 박지성을 맨유로 영입했다. 동양인 선수에 대한 편견을 깬 하나의 전환점이 된 영입이었다. 아시아 시장 '마케팅 용'이라는 일각의 시선을 퍼거슨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퍼거슨은 중요한 빅매치마다 박지성을 중용하며 빼어난 선수기용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2011~2012 시즌 박지성의 출전 기회는 줄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팀 전술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냉정한 판단을 통해 박지성의 활용 가치가 떨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벤치 멤버로만 기용했다. 박지성이나 한국 팬들은 서운할 법 했지만 퍼거슨은 오직 팀 성적을 위해 냉철한 결단을 내렸다. 대신 박지성이 팀을 떠날 때는 진한 아쉬움으로 제자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지난해 7월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한 후 퍼거슨은 "내 손자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그를 다른 팀으로 보내자 아직도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냥 말이 아닌 친필 편지로 진정성을 더했다. 올 시즌 QPR 원정 경기에서는 해리 레드냅 감독이 보는 앞에서 박지성과 악수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박지성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맨유에서 활약했던 주요 선수들도 모두 팀을 떠날 때 퍼거슨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떠났다. 베컴은 퍼거슨이 던진 축구화에 맞았고, 호날두는 퍼거슨 특유의 독설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퍼거슨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퍼거슨은 데일리 메일 등 영국 언론으로부터 늘 "이기는 방법을 잘 아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즉 이기기 위해서라면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선수의 명성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아무리 이름값이 있는 선수라도 경기 당일의 컨디션이 나쁘거나 연습시 행실이 좋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배제한다. 그의 결정에 선수들이 군말없이 따르는 것도 퍼거슨의 이런 지도 방식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로테이션 선수 기용은 퍼거슨식 전략과 경쟁 유도가 모두 녹아들어 있는 상징과도 같았다. 주전 멤버라고 해도 로테이션 시스템을 피해가지 못했다. 주전급 자원이 부상을 당해도 누군가 공백을 메우며 팀 전력에 문제가 없게 만드는 것은 퍼거슨 만의 힘이었다. 유소년 시스템 강화로 뿌리부터 튼튼히 하며 로테이션의 젖줄을 만들어온 것은 퍼거슨의 계획적인 전략의 결정판이었다. 퍼거슨의 강한 리더십이 맨유를 세계 최고의 클럽 반열에 올려놓았고, 그가 명장으로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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