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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의의 그 땐 그랬지]박현준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


[정명의기자] "나쁜 짓을 했으면 나쁜 기사가 나가야죠."

박현준이 한 말이다. 프로야구에서의 경기조작 파문이 일기 전의 일이다.

기자가 박현준과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것은 LG 트윈스의 스프링캠프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월13일 오키나와 이시카와구장에서였다. 그 무렵 프로배구의 경기조작 사건이 스포츠계를 강타하고 있었지만 프로야구까지 그 불길이 미치지는 않았다.

다음날인 14일부터 프로야구에도 경기조작 관련 의혹이 제기됐다. 수도권 구단의 에이스급 투수가 관련됐다는 의혹은 LG의 박현준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퍼져나갔다. 박현준은 직접 오키나와 캠프를 찾은 LG 백순길 단장과의 면담에서도,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고 귀국하면서 인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박현준은 최근 검찰의 소환 조사에서 혐의 사실 일부를 인정했다. 이에 KBO(한국야구위원회)는 박현준에 대한 야구 활동을 정지시켰고, 소속구단이던 LG는 그의 퇴단을 결정했다. '나쁜 기사'도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 스스로의 말처럼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경기조작이 나쁜 짓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박현준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전까지도 뉴스를 몰고 다녔다. 캠프 전 실시한 구단 자체 체력테스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기준치의 체력을 넘지 못한 박현준은 열심히 몸을 만들었고, 2차 테스트에 합격해 우여곡절 끝에 스프링캠프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 때부터 박현준은 "쪽팔리다(창피하다)"며 언론과의 접촉을 꺼렸다. 체력테스트에서 떨어졌던 것이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때문에 기자도 박현준에게 접근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LG의 스타플레이어인 박현준의 근황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자는 "나쁜 기사가 나갈까봐 그러냐"며 박현준에게 말을 붙였다. 그 때 박현준이 한 대답이 앞서 언급한 "나쁜 짓을 했으면 나쁜 기사가 나가야죠"였다. 당시 박현준에게 받은 느낌은 '당당함'이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투의 말로 심지가 곧은 청년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의 미래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볼넷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경기조작이 나쁜 짓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박현준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에 대한 대가는 가혹하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 마운드 위에 설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경기조작 사건을 두고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성 교육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승부에만 집착하다보니 바른 인성을 키울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박현준도 고의 볼넷 하나가 얼마나 큰 범죄에 해당하는지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대화를 돌이켜 보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구단 관계자가 동석한 자리에서 박현준과 "야구 선수를 하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가지 직업이 언급됐지만 박현준은 "야구밖에 없네"라고 결론 내리며 웃음을 지었다.

이어 박현준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는 것. 그러나 "중3 때부터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며 "그 때부터 (공부를) 포기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부터 박현준은 전형적인 한국 운동부 학생들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터다.

지식과 함께 교양과 인성을 쌓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 운동선수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같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고교야구 주말리그제'가 시작됐지만 정착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효과가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박현준은 지난해 프로야구 무대에서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무명이었던 그는 첫 선발 등판에서 두산을 상대로 6.1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전반기에만 10승을 달성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LG 팬들은 새로운 '에이스'의 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후반기에 힘이 좀 떨어지며 13승에 머물렀지만, 팀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섰다.

하지만 더 이상 LG 유니폼을 입은 박현준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지난해 4천300만원에서 1억3천만원으로 치솟은 연봉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경기조작은 박현준 스스로는 물론, 팬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상처를 넘어 깊은 배신감과 절망감을 안겼다.

아직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여전히 믿고 싶지 않기에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기자 역시 그런 팬들과 같은 심정이다. 당당한, 때론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나눴던 그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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