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리뷰]'어느 가족',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을 넘어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오는 26일 국내 개봉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기사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돌아왔다. 이젠 그의 인장이 돼버린 가족 이야기를 또 그리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역시나 고레에다 감독의 진화를 또 한번 증명한다. '어느 가족'(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수입·배급 티캐스트)은 가족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먹먹하고 묵직하게 담긴 작품이다.

원제처럼, 만비키(万引き, '좀도둑'이라는 뜻) 가족에게 훔치는 행위는 완벽한 팀플레이로 이뤄진다. 한 명이 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옷에 달린 큰 주머니나 티셔츠에 물건을 잽싸게 넣는다. 아이의 옷이 필요할 때는 탈의실에서 갈아입히고는 자연스럽게 출입구를 빠져나온다. 이들 중 누군가 훔친 물건을 한아름 안고 집에 가면 "제대로 된 걸 주워와"라는 타박을 주고 받기도 하는, 훔치기 전문 가족이다. 이들에게 훔치는 건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닌 걸 가져오는 행위'라는, 나름의 철학도 있다.

만비키 가족,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와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가 우연히 길에서 떨어진 유리를 집으로 데려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을 찾아주려 했지만 5살 유리의 자그만한 몸에 남아 있는 구타의 흔적들과 유리의 집안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이 가족은 여자아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다섯 식구는 유리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주고 새로운 옷을 입히는 등 있는 힘껏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비키 가족은 5살 여자아이를 '훔친다'.

유리가 목조 기와집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하는 순간부터 이 가족의 비밀은 하나씩 밝혀진다. 모두 시바타 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츠에(키키 키린 분), 오사무와 노부요, 아키(마츠오카 마유 분), 쇼타(죠 카이리 분)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는 것. 더구나 할머니 하츠에의 연금에 기대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것. 예상치 못한 사실과 관계들이 하나 둘씩 드러날 때마다 이들은 사회통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족'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한데 모이게 했을까. 극중 오사무와 아키의 말처럼, 단지 돈으로만 얽힌 가족일까.

만비키 가족은 고레에다 감독이 바라본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누구 하나 돌봐줄 사람이 없는 하츠에, 산재보험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 오사무, 워크셰어라는 명목으로 월급이 줄어버린 노부요와 현실에서 증발해버린 청년 아키, 유기된 쇼타, 부모에게 손찌검 당한 유리는 노인, 불안한 고용시장, 청년문제, 아동학대 등 현재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는 인물들. 이들 모두는 과거와 현재, 국가제도에서든 가정에서든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지니고 있다.

버림 받았지만,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홀로 버티고 서있는 낡은 기와집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섯 식구의 모습은 빛난다. 매일 저녁 아키의 차가운 발을 만지며 기분을 알아채주는 하츠에, 2차 성징을 겪는 쇼타의 고민을 나누는 오사무, 유리의 처음 빠진 치아를 함께 지붕 위에 던져주는 이들은 더이상 흔하지 않은, 그래서 더 소중한 가족의 모습이다. 어느 한 관계는 돈으로 얽혀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속물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이는 금세 잊힐 만큼 이 가족에겐 어느 곳보다 따뜻함이 가득하다.

영화는 쇼타가 '상식'을 마주하면서 변곡점을 맞는다. 그는 훔치는 것을 두고 "이건 남의 거잖아"라고 되묻고 이 순간부터 만비키 가족의 일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당연시되는 상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덕, 제도에 비출 때 이들 가족이 누군가가 낳은 남의 것, 쇼타와 유리를 훔친 건 범죄이기 때문. 쇼타의 물음과 뜻밖의 전개 속에서 영화는 당연히 여겨지는 기존 가족의 개념에 반문한다. 동시에 선택할 수 없었던, 그리고 여기에서 '버림 받은'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2016)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등에서 가족애를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세번째 살인'(2017) '공기인형'(2009) '아무도 모른다'(2004) 등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현실 비판에 무게중심을 둔 작품들. '어느 가족'에서 그는 자신이 잘하는 가족이야기를 감성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어두운 사회 현실을 세게 꼬집는다. '어느 가족'이 가족영화로만 한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이 영화에서 고레에다의 진가는 또 한번 확인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버림 받은 곳을 떠나는 게 완전한 답이라고 내놓지 않는다. 물론 여운을 주는 마지막 장면으로 비판의식을 끝까지 견지하지만, 또 다른 대안의 불완전함을 내·외적으로 인정한다. '엄마'로 불리고 싶지만 쇼타에게 강요하지 않고, 이들 관계를 정의해달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우리는 이 아이에게 역부족이야"라고 말하는 노부요의 모습은 상식에 부딪힌 좌절감과 기존의 가족, 사회 자체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

"스스로 선택하는 게 더 강하지 않겠어? 피가 안 이어져서 좋잖아"라는 극중 노부요의 대사처럼 만비키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다. 하지만 버림 받았기 때문에, 서로를 선택한다. 영화는 만비키 가족을 통해 기존 가족과 국가 이데올로기에 반(反)하는 비현실적인 이상을 그리지 않는다. 만비키 가족을 통해 이제는 현실의 가정과 사회에서 볼 수 없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지만 동시에 이 가족은 현실을 반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래서 '어느 가족'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실 문제에 대한 답을 날카롭게 묻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빈틈이 없다. 고레에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릴 수 있는 배우 릴리 프랭키·키키 키린 등은 이번에도 역시나 전작들이 잊힐 만큼, 같지만 다른 얼굴로 캐릭터를 그려낸다. 특히 배우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강렬하다. 극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표현되는 감정 연기엔 눈을 뗄 수 없다. 여섯 식구가 함께 나눴던 것들이 기존 '가족'의 표상에서 자꾸 미끄러질 때, 상실·슬픔·좌절 등을 표현하는 그의 원테이크 연기는 압권이다.

한편 '어느 가족'은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국내 개봉은 오는 26일이다. 러닝타임 121분, 15세 관람 등급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리뷰]'어느 가족',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을 넘어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