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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누나' 손예진 "미투와 상처, 감히 짐작조차 어렵죠"(인터뷰)


"3년의 시간 견딘 진아, 연기하며 너무 슬펐다"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통해 손예진이 그려낸 것은 가슴 뛰는 사랑을 만나 설레는 주인공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30대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했던 인물 윤진아를 통해 그는 직장 내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 직원들이 어떤 고통과 고립감을 겪는지 역시 표현해냈다. 드라마의 방영 시기가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 Too)'의 흐름과도 맞아 떨어지며 이는 내내 큰 화제가 됐다.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손예진의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 극본 김은, 연출 안판석, 제작 드라마하우스, 콘텐츠케이) 종영 기념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3월30일 첫 방송을 시작해 지난 19일 종영한 예쁜 누나'는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만들어가는 ’진짜 연애'를 그리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손예진은 30대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의 슈퍼바이저 윤진아 역을 맡아 인물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냈다. 친구 서경선(장소연 분)의 동생 서준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뒤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진아는 회사의 성폭력적 문화 아래 피해를 겪고, 그 저항의 중심에 서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극의 마지막회에서 진아는 사표를 제출하기 위해 본사에 방문했다 대표로부터 '승자답게 웃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일련의 과정들이 혐의 남성들의 가해를 입증했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던 상황. 승진인듯 승진아닌 인사이동 후의 기간까지, 3년의 시간을 버틴 진아에게 그것이 진짜 승리로 받아들여졌을지 손예진에게 물었다.

"그들이 회사에 남아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실제 '미투'를 하고 법정 싸움을 아주 오래 했을 때 피해자들이 정말 많이들 무너진다고 하더라고요. 회사 대 개인, 개인 대 개인의 상황도 있겠죠.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이 정말 힘들다고 해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진아도 그 시간을 보낸 것이니까요. 3년 간을, 아무도 없는, 있어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 기간을 끝내고 결국 사표를 낸 거예요. 승자답게 웃어넘기라 해서 웃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겠죠. 이미 모든 상처를 다 받았고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모두 겪은 후였을 거예요. 제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야기죠,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부딪히고 깨져도 결국 현실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구나' 생각했어요."

극 중의 윤진아가 아니라 현실의 손예진이었다면, 이런 상황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는 "어려운 일 같다"며 "진아 역시 엄청난 사명감을 가졌거나 '이뤄야만 해'라는 다짐으로 선택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진아도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 왜 아닌 것을 말 못하지?'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해 시작됐는데 진아는 점점 앞으로 밀려나게 되죠. 진아가 (싸움의) 앞으로 나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들 뒤로 가니 진아가 앞으로 오게 된 거예요. 사측 변호사를 만나는 장면은 실제 있던 일이라더라고요. (메신저 대화 내용을) 조작해서 퍼뜨리겠다고 하는 장면이죠. 그 연기를 하는 순간에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좌절, 실망, 수치, 모든 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실제론 어떻겠어요. '남이사(박혁권 분)가 고소를 생각한다'고 하는 순간 진아는 너무 억울하고 비참해서 '끝까지 가 볼게요'가 된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진아의 상황이었자면, 그렇게 이상하게 몰고간다면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오기와 분노가 생기니까요.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데 왜 맞다고 해' 같은 마음이 들었겠죠."

극 중 이 싸움들을 조직하고 준비한 인물로는 진아를 누구보다 믿고 존중하는 상사 정영인(서정연 분)이 있다. 진아의 고통을 모두 덜어주진 못하지만, 이 인물은 '좋은 상사'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인지 한번쯤 고민하게 만들어 준 캐릭터이기도 했다. 진아 역을 연기한 손예진에게 '어떤 상사'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안판석 감독님에게 너무 많은 존중을 받았어요. 제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그 땐 몰랐는데 '(과거)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구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상대 배우인 정해인은 어리고 경력도 적은 편이었으니, 제가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었죠. 주변 여성 직원들에게도 그렇고요. 늘 제가 막내였는데 눈 깜짝하니 이렇게 됐더라고요. 아직은 그런 것이 어색하고, 여전히 막내가 익숙한데. 이번엔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좋은 언니, 누나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막내 같은 마음"이라 말하는 그지만, 이제 '예쁜 누나'의 윤진아는 손예진이라는 배우 없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 캐릭터로 남게 됐다. 이에 대해 손예진은 "감독님이 내게 조금은 무거운 짐을 주셨다"며 "우리가 (시청자들의 다른 반응들을) 알면서도 이렇게 가야 했고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이었다. (진아는) 끝까지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아픔이 있던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도 좋겠지만,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혹시 모르는 분들은 (그 마음을) 모를 수 있는 캐릭터라서 진아라는 인물에 더욱 몰입했던 것 같아요. 진아가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그 미성숙함이 주는 '짠함'이 있던 것 같고요. 애써 그것을 포장해 '진아는 원래 안 그래' '진아는 알고 보니 이랬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끊임없이 어떤 대사를 하기 전, 보여지기 전 상황을 생각했죠. 끝까지 진아를 진아로 보이게 하고 싶었고, 어떤 식으로든 공감과 감동을 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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