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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이준익, 시대의 사랑을 논하다(인터뷰)


박열과 후미코, 그리고 이 시대 연인들에 대하여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완결적인 문장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가 이상적인 인터뷰의 조건이라면, 감독 이준익을 좋은 인터뷰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대화 소재의 확장, 특수한 이야기로부터 보편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일을 인터뷰의 미덕으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터뷰에 임하는 이준익 감독은 테이블을 네트로 삼은 핑퐁 선수같다. 하나의 주제를 둘러싸고, 조각난 화제들이 통통 튀는 공처럼 테이블 위를 오간다.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 제작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을 두고 그와 나눈 이야기들도 그랬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6월28일 개봉해 188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중이다.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는 아나키스트인 두 주인공의 시선으로 일제강점기를 바라본 '박열'에서 출발해, 당대 연인들이 나눈 사랑의 형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시대정신,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과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번졌다. 그와 나눈 흥미로운 대화를 옮긴다.

이하 이준익 감독과 일문일답

-영화가 첫 공개된 뒤 평이 다소 엇갈렸다. 시대, 신념, 사랑의 이야기가 한데 엮여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틀이 있었다면 '박열'은 그 틀을 넓힌 느낌이 있다. 그것이 좋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생경해서 즉자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반응에 편차가 있더라.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영화가 비난받고 욕먹을 만큼이 아니니까. 기대보다 아쉬울 수 있지, 뭐. 어떻게 다 바라겠나. 기대가 크니까 실망이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 평전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들었다. 그간 작업한 사극, 시대극과 비교해 더욱 빈틈없이 고증을 하려 한 이유가 있나?

"그건 후미코 때문이다. 후미코는 일본 여성 아닌가. 자서전과 평전도 나와 있는 실존 일본 여성을 한국영화에 가져다 쓴 셈이다. 그런데 그 내용에 왜곡과 날조가 과하다면 일본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만큼은 꼭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고, 인물들도 대부분 일본인 아닌가. 남의 나라 영화를 찍을 때는 그 나라의 기록에 최대한 충실해 고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부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일본인이 쓴 책을 바탕으로 했다. '동주'가 7월에 일본에서 개봉하는데, 이 영화도 그럴 수 있지 않겠나.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산 조선인이 주인공인데, 이 주인공의 정체성은 독립투사이기에 앞서 아나키스트다.

"아나키즘에 기반해, 탈국가 탈민족주의를 저변에 깔고 있는 인물이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나키즘이고, 그래서 일본 정부에 저항하는 이야기다. 박열이 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관동대지진 후 자행한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고 사건을 왜곡한 결과인데, 그 일본 정부의 의도를 역이용한 박열의 행동이기도 했다."

-박열은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고, 또 노동운동가이기도 했다.

"극 중 박열을 변호하는 후세 다쓰지가 노동 인권 변호사다. 극 후반 박열을 면회 온 사람들 중에는 광산 노동자 투쟁 때 그와 함께 했다고 이야기하는 인물도 있지 않나. 다쓰지 변호사는 후일 대한민국으로부터 건국훈장을 받기도 한다. 그는 박열 뿐 아니라 2.8 독립선언과 관련해서도 무료 변호를 한 사람이다. 신문사 주필을 폭행한 이들을 무료 변호하기도 한, 대단한 사람이다."

-일본인인 후미코와 다쓰지 외에 간수 후지시타와 예비판사 다테마스 등 일본인 인물들을 통해 '조선인 대 일본인'의 갈등 구도를 피한 점도 인상적이다.

"(실존 인물인) 후지시타 간수의 경우, 박열이 22년 2개월 형을 살고 나왔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조선 이름을 지어준 인물이다. 그의 박씨 성을 따서 '박정진'이라고 조선 이름을 지어줬다. '(박열을 향해) 당신에게 이 아들을 바친다'라고 까지 한 간수다. 다테마스는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박열을 대역죄로 대법원에 기소한 사람이었다. 일본 국가에 충성한 예비 판사다. 일본 사법체계에 합리적 정당성을 가지고, 박열을 대역죄로 기소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고, 그것을 달성했다는 의미로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테마스는 역사 속에서보다 영화에서 훨씬 입체적 인물로 그려진 것 같다. 마치 박열과 후미코를 심문하며 인간적, 신념적 갈등을 겪는듯 보이지 않나.

"엄밀히 말하면 다테마스가 박열에게 이용 당한 것이다. 다테마스가 인간적 갈등을 느꼈다면 그것은 상대가 그런 감정을 내보이도록 박열이 치밀한 '쇼'를 했기 때문이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내 아내를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면, 다테마스 입장에서는 '대역죄를 받으면 무조건 사형인데 죽을 놈 소원, 그거 하나 못 들어줘?'라고 인간으로서 동정심이 당연히 들지 않겠나. 그것까지 이용하는 것이 박열의 치밀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박열은 단식을 두 번 했고 신문에도 실리는데, 이는 정확하게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심지어 자신이 재판을 거부할 수 있다는 카드를 내밀고 조건까지 내걸지 않나. '내가 재판을 받아주는 것이다' '사형을 언도받는 것이 아니라 사형을 쟁취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박열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과정이 박열의 '쇼'였던 거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영화를 보면 매 장면이 박열의 계획으로 보일 것이다. 다테마스와의 대화에서도, 박열은 자신이 허황된 이상주의자로 보이도록 후미코와 콤비플레이를 펼친다."

-박열과 다테마스가 각자의 언어로 심문에 임하는 장면은 과감했고 신선했다.

"영화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 긴 신을 계속 클로즈업으로 왔다 갔다 하지 않나. 옛날 같으면 '관객을 잠재우려 하는 무리한 설정'이라고 했을 거다.(웃음) 하지만 승부를 걸었다. 박열과 후미코, 다테마스, 셋의 심리극을 그려야 했고 그것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다면 승부를 걸만한 시퀀스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가지고 찍은 장면이다."

-실화의 서사가 충분히 영화적인데, 박열은 왜 이제서야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묻혀있는 이야기라 발견되지 못한 면이 있다. 나의 경우 20년 전 영화 '아나키스트'를 준비하며 관련 콘텍스트들을 뒤진 적이 있으니 가능했다. 이런 이야기를 알았다고 바로 찍을 여건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언젠가 이걸 찍어야 하는데' 생각했지만 준비가 될 때까지 함부로 찍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일제시대를 항일 투쟁의 활극으로만 소비하던 패턴을 '동주'를 통해 환기할 수 있었다. 윤동주라는 시인의 삶과 죽음을 보여줌으로서 '박열'이라는 영화의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닐까 판단했다. 만약에 '동주'가 없이 '박열'이 '툭' 튀어나왔다면 반응이 또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주'가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맥락이 훨씬 수월하게 읽힐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박열이라는 인물은 당대를 두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웠던 페미니스트다.

"박열, 그리고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는 페미니즘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둘이서 끝까지 지켜낸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행동들이 있지 않나. 박열에게는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성이 전혀 없다. 다테마스가 심문할 때 '후미코에 대해 말하는 것은 후미코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 예다.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의 독특한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둘의 기질적 특성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후미코의 의지이기도 했다. 동거서약을 쓴 사람은 후미코고, 박열이 그걸 준수했다. 재판정에서 후미코가 '나는 아직도 서약을 준수하고 있다'고 하지 않나. 후미코와 박열과 하는 행동들은 너무나 일관돼 있다."

-들을수록, 연애 대상으로서의 박열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판타지적 캐릭터다. 특히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그렇다.

"후미코가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그의 결점과 과실을 알고 있고, 그것마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나. 모든 과실을 함께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그의 결점과 과실까지 포함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나.(웃음)"

-연인이 아나키즘을 신념으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함께 맞서 싸울 거대한 권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을 더 가열차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들의 나이가 부당한 세계와 불화하기 시작한 20대 초반이라는 점도 그 이유일 수 있겠다.

"그걸 발견했나?(웃음) 두 사람이 20대에 만났다는 것이 이들 관계를 보는 정확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연인이 격리수용된 것 아닌가. 그 사랑의 에너지가 어디로 갔을까? 결핍의 에너지가 투쟁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느낌이 있지 않나? 강제적 조건에서 분리된 연인이니 서로 끌어당기는 장력의 에너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 볼 수 없고, 심지어 무기징역이다. 어떻게 되겠나? 물론 두 사람의 신념이 뚜렷했지만, 이들의 사랑이 가지고 있는 힘은 20대 초반의 박열과 후미코가 감정적으로 분출한 에너지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지금 2017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연인들의 세상과 사랑은 박열과 후미코가 겪은 그것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나의 관계맺기를 거쳐 신념이 체화되고, 그 세상에서 나보다 먼저 그런 행로를 걸었던 사람들과 내 이론이 만나게 될 때 그 신념은 더 단단해진다. 나는 박열과 후미코가 아나키즘이 사조에 경도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면서 세상과의 불화를 이겨내며 체화한 감정이 사랑과 같이 맞물려서 간 것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혁명의 시대는 아니지 않나. 투쟁의 대상을 상실한 젊은이들이라면 서로 마주보고 하나가 되려 해봤자 서로의 다름만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박열과 후미코가 사람으로서 온전히 자신의 사상을 관철하는 길을 간다는 점이 (지금의 연인들과의) 차이일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투쟁의 대상은 있을 수 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 않나. 꼭 정치적, 사회적 투쟁이 아니라 해도 예술이든 창작의 길이든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를 바탕으로 대등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계관의 차이일 뿐, 시대에 따라 구분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아닌 연애 상담으로 마무되는 느낌이다.

"이건 연애 상담이 아니라 인생 상담이다. 연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생의 가치관이다. 연애가 목표는 아니지 않나. 어떻게 연애가 목표가 되겠나. 그건 과정일 뿐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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