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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결산②]보이콧, 그럼에도 불구하고…영화인들의 목소리


고민 끝에 영화제 방문한 이들이 BIFF를 응원하는 방식

[권혜림기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은 외압의 위기는 영화계 내부에도 혼란을 낳았다.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 가치를 수호하는 방법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일부 영화인들은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영화인 비대위)를 통해 올해 영화제의 보이콧을 의결했다. 애초 요구 사항이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과 부산시의 공식 사과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영화제에 참석할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영화인 비대위가 강조한 또 하나의 주요 사안이었던 정관 개정은 김동호 이사장이 영화제의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부임한 뒤 빠르게 이뤄졌다. 하지만 앞선 두 가지 조건이 미결로 남은 배경 아래 각 단체의 주장이 합일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개최 시기까지 보이콧은 철회되지 않았다.

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을 주관하던 한국영화감독조합이 보이콧을 의결함에 따라 올해 이 부문은 영화제가 주관하게 됐다. 대부분의 유명 감독들은 작품이 초청된 것과 별개로 올해 영화제에 불참했다. 초청작의 배우들 역시 참여를 조심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예산 삭감 등 물리적 환경을 제외하면, 이는 올해 부산을 찾은 유명 게스트들이 대폭 감소한 가장 큰 이유였다.

배경과 의도를 아는 한, 이들의 결정을 비난하긴 어렵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 가장 큰 규모의 영화 축제인 동시에, 신진 영화인들과 기성 인사들이 어우러져 비전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감독조합을 비롯해 보이콧을 선언했던 단체의 구성원들은 때로 부산에서 발견됐고, 성장했다. 올해 영화제의 참석 여부를 떠나 이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장기적 미래를 고민하는 방법으로 단체 행동을 택했다면, 영화제 참석을 통해 지지의 뜻을 전한 이들도 있다. 올해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는 평을 얻었던 '한국영화의 오늘-비전'과 '뉴커런츠' 부문 등에 초청된 신진 영화인들은 갈등 끝에 영화제 참석을 결정했다. 개막작 '춘몽'의 장률 감독과 배우 양익준, '올해의 배우상' 심사를 맡은 배우 김의성 등도 보이콧이 아닌 참여를 통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화제는 '아이 서포트 비프 나이트(I Support BIFF Night)' 파티를 열고 국내외 영화인들의 끈끈한 지지를 확인했다.

영화제 참석을 앞두고 SNS에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던 양익준은 지난 6일 '춘몽'의 기자회견장에서 "그 글을 올렸던 것은 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는) 저에게는 영화 세계의 시초를 만들어 준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 전에는 영화가 좋다는 마음, 분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느 순간 영화를 한 편 씩 연출하다 보니 나도 큰 상황 안에 엮여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또한 "여러 아픈 사건들이 많지 않았나. 먼 발치에서 봐도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이번 일들 안에서 나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소리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 엄청난 고민이 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열린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김의성은 '인디펜던트 필름페스티벌 포 부산'이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들고 등장해 관객을 만났다. 외압 논란에 시달렸던 부산국제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의미의 메시지였다.

'춘몽'을 들고 부산을 찾은 장률 감독은 지난 13일 라운드 인터뷰 자리에서 올해 영화제를 둘러싼 외압 사태를 언급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초부터 이끌고, 올해 명예집행위원장이 아닌 이사장의 이름으로 다시 부산을 지키고 있는 김동호 이사장을 향한 신의도 드러냈다.

그는 "감독이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고 상영하는 일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켜져야 한다"며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이 있기 마련이니 전체 영화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김동호 이사장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고령에도 혼자 기차를 타고 현장을 방문해 준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영화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영화제의 독립성에도 그런 약속이 지켜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예년과 달리 화려한 스타들이 적었다는 평가와 관련해서는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라며 "신인 감독들을 잘 발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비전' 부문 초청작 '컴, 투게더'로 부산을 찾은 신동일 감독은 조이뉴스24와 만나 올해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비전'과 '뉴커런츠' 감독들이 대부분 30대의 신인들인 것과 달리, 신 감독은 이미 수 편의 영화를 선보였던 기성 감독이다. 더욱 갈등이 깊었을 법했다.

그는 "보이콧을 한 감독이나 참여한 감독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가 계속 사랑받고, 한국의 영화 문화를 발전시키고, 좋은 신인 감독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다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내가 참여한 이유는 참여 속에서 부산영화제를 더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영화를 출품할 때까지도 정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영화제에 더 참여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이럴 때일수록 더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는 신조를 내비쳤다.

'뉴커런츠' 부문 초청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첫 장편 영화를 선보인 임대형 감독 역시 출품을 두고 고민이 컸다고 알렸다. 그는 조이뉴스24와 만나 "아무래도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에 대해, 나와 친구 감독들 모두 고민이 있었다"며 "함께 고생을 하며 찍은 소중한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지만 어쨌든 신인 감독으로서는 영화를 트는 것이 영화제를 지키는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의 '두 남자'로 부산을 방문한 이성태 감독은 조이뉴스24에 "배우들도 나도 이 영화제에 와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아직 감독조합에 가입돼있진 않지만, 감독조합에선 보이콧을 했다고 알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꿈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페스티벌의 본질이 아닌 환경의 문제로 인해 이런 사태가 생겼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제를 둘러싼 상황들이 조속히 정상화돼 내년부턴 다시 다이내믹한 영화제로, 세계인의 영화 축제로 발돋움하길 바란다"며 "정치적 이유로 영화제가 시끄러워진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이 영화제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영화가 무사히 관객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알렸다.

유명 스타와 감독들의 방문은 예년보다 줄었지만,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열정은 올해 역시 뜨거웠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극장 상영 후 영화인과 관객이 직접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관객과의 대화(GV) 프로그램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큰 자랑이다. 타 영화제와 비교해 GV 개최 횟수도, 관객들의 적극성도 압도적이다.

'비전' 부문 '꿈의 제인'으로 올해 영화제에 처음 방문한 조현훈 감독은 조이뉴스24와 만나 "감독의 입장에선 관객을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며 "부산에서 느낀 것은 관객들의 에너지가 워낙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꿈의 제인'은 거의 다 매진이었다. 올해 영화제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내년엔 더 좋아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희망하게 됐다"고 내다봤다.

이어 "GV가 있는 상영관 복도에 앉아서, 혹은 일어서서 참여해주는 것을 보니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경험한 다른 영화제들에서 느끼지 못한, 차원이 다른 태도와 에너지였다.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의 마음이 놀라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참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6일 개막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늘(15일) 저녁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폐막식을 열고 10일 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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