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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춘몽' 이주영의 꿈결같은 시간(인터뷰①)


"장률 감독의 조언, 큰 힘 됐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화려한 빌딩숲이 우거진 서울 상암동의 건너편에는 마치 다른 시대의 공간인 양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네 수색동이 있다. 영화 '춘몽'은 실존하는 수색동을 배경으로, 이 곳에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은 술집을 운영하며 몸이 아픈 아버지를 부양하는 예리, 그리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세 남자와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배우 한예리를 비롯해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등 충무로를 누빈 배우 겸 감독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딴 배역을 연기했다. 네 명의 배우가 이름만 듣고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유명 영화인들이라면, 극 중 예리를 향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여성 주영 역 배우 이주영은 여러 관객들에게 낯선 얼굴일 법하다.

신예 이주영은 다수의 장·단편 독립영화에서 활약해 온 배우다. '춘몽'(감독 장률, 제작 ㈜률필름)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예정이다. 영화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되며 레드카펫과 기자회견, 야외 무대인사 등 공식 행사에도 참석한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축제의 설렘을 즐기고 있었다. 영화제 개막 이튿날인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모처에서 이주영을 만나 '춘몽'의 작업기를 직접 들었다.

"영화를 어제 처음 봤는데, 보기 전 새벽부터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내 영화로 부산에 왔다는 사실, 이렇게 큰 자리에 서게 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레드카펫을 밟고 개막작 트레일러를 볼 때쯤에야 실감한 것 같아요. '내가 찍은 영화가 저기 걸리고 있구나' 하고요. 그 순간 뭉클했어요."

극 중 영화의 중심 인물인 예리가 운영하는 술집은 익준, 정범, 종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는 아지트인 동시에 주영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주영은 이 곳에 느닷없이 찾아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눈길로 예리를 바라보는가 하면, 예리를 위해 시를 써 주겠다는 달콤한 고백을 하기도 한다.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아련한 꿈결의 정서는 주영의 캐릭터에도 녹아있다.

"다른 네 인물들이 영화 내내 등장하며 결을 잘 만들어가는 것에 비해, 주영은 갑자기 나타났다 뜬금없이 사라지기도 해요. 그러면서 한 번씩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너무 튀지도, 묻히지도 않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이 공간 속 한 명의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시나리오엔 주영의 마음이 묻혀져 있는 면이 많아 힘이 들었어요."

그가 고민을 해결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를 연출한 장률 감독의 도움이 컸다. 지난 2014년 부산평화영화제 당시 심사위원과 배우로 인연을 맺었던 장률 감독과 이주영은 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특별한 애정을 쌓아왔다.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영화나 연기에 대한 고민도 풀어놓을 수 있는 동료 사이다.

"감독님은 '이렇게 해야 돼'라고 결론을 내 주는 대신, '편하게 해. 너는 그 자체로 주영을 표현하면 돼'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런 말로 고민이 해결될 수 있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 한 마디가 굉장히 힘이 됐던 것 같아요. 편하게 마음 먹고 현장에 갈 수 있었죠. 장률 감독님은 감독으로서도 대단한 분이시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요."

영화의 초반, 이주영은 윤종빈, 박정범, 양익준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으로 관객과 첫 대면을 한다. 짧게 나눈 호흡만으로도 배우로서 현장에 온 세 감독의 연기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들과 만나는 장면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장면들을 촬영하며 느낀 점이 있었어요. 감독님들이 정말 감독이 아닌 배우로 이 현장에 와 계신다는 느낌이었어요. 저와 예리 선배는 연기만 하는 사람들이니, 저희를 더 배려해 주신 점도 많았죠. 어찌 생각하면 각자가 감독이기도 하니 생각하는 그림들이 있으셨을텐데, 함께 연기를 할 때도 저에게 많은 것을 맡기고 배려해주셨어요."

'춘몽'을 통해 이주영은 평소 오랜 팬이었던 선배 배우 한예리와 가까이서 호흡을 나누는 행운도 누렸다. 현장에서 캐릭터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한예리를 지켜보며 '덕심'을 감추려 애를 썼다는 이주영의 눈에선 수줍은 미소가 새어나왔다. '춘몽'을 작업하던 나날은 여러 모로 이주영에게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현장은 조용한 편이었어요. 양익준 감독님이 가끔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해 주셨고, 그 외엔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큰 잡담도 하지 않았죠. 저는 한예리 선배를 너무 좋아해요. 제 마음은 늘 거기 있는데, 연기에 집중하고 계실 것 같아 그걸 깨뜨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덕심'을 감추고, 또 감췄죠.(웃음) '너무 좋아요'라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돼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많이 말하고 다녔어요. 그래서 제 마음을 예리 선배님도 알고 계세요."

답을 듣다 보니, 영화 속 주영의 모습과 실제 이주영의 성격은 꽤나 대척점에 있었다. 극 중 주영은 예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 남자보다도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인물. 거침없고 당돌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자, 겁내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하는 대범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주영은 예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거침없이 다가가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하지만 주영도 마음 한 편으론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이 사랑을 할 때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돼. 나만 사랑할 수 있으면 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마음을 먹긴 힘들 것 같거든요. 주영은 일방적으로 예리를 사랑하지만, 아마 상대의 사랑을 원했을 거예요. 나를 바라봐주길 원했겠죠.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주영은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춘몽'을 본 관객이 오래도록 기억할 순간들을 꼽는다면, 작은 거울 안에 이주영과 한예리의 모습이 함께 담기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갑작스레 가게를 찾아온 주영이 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는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는 장면이다. 이 순간, 두 인물의 엇갈리는 감정은 짧고도 강렬하게 포착된다.

"그 신의 길이가 굉장히 짧았는데, 제 감정의 템포는 그만큼 빠르지 않았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거기서 제 감정의 속도를 더 줄여야 한다고 하셨죠. 주영이 예리의 말을 듣고 바로 일어나 나가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힘들었어요. (대사를 듣고도) 도저히 바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억지로 일어나 나갔던 기억이 나요."

한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인 '춘몽'은 오는 13일 개봉해 더 많은 관객을 만난다.

(2편에서 계속)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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