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김무열은 욕심이 많은 배우다. 뮤지컬계 아이돌로 불리며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어느덧 스크린을 누비며 존재감을 떨치고 있다. 정지우 감독의 신작 '은교'에서 스승을 향해 애증을 품고 소녀 은교를 탐하는 소설가로 분한 그를 지난 19일 만났다. 벚꽃이 만발한 삼청동에서였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글서글한 눈매로 인사를 건넨 김무열은 종일 이어진 인터뷰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다가도 호평 앞에서는 민망한 듯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그에게서 '은교'의 개봉을 앞둔 설렘이 그대로 느껴졌다.

"일찍 캐스팅됐다면 쌍꺼풀 수술 했을지도"
김무열은 이번 영화에서 70대 노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의 제자 서지우를 연기했다. 소설가 박범신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은교'는 소설의 주제를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일부분 각색을 택했다. 원작 속 서지우는 진한 쌍꺼풀이 특징인 인물. 그러나 김무열은 쌍꺼풀 없이 길고 큰 눈을 가졌다.
"정지우 감독은 별 말이 없었는데 박범신 작가가 저를 보더니 '서지우가 너무 훤칠하고 예쁜 것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정지우 감독의 외모가 원작 속 서지우와 더 닮았다고요. 드라마 '일지매'에서 함께 한 이문식 선배가 캐릭터를 위해 생니를 뽑았었는데 저도 일찍 캐스팅됐다면 수술을 했을지도 몰라요.(웃음)"
극중 서지우는 시종일관 안경을 쓰고 앞머리를 내린 채 수더분한 외모를 유지한다. 전형적인 문인의 이미지다. 특히 공장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점퍼는 촬영 중 '서지우 교복'으로 불렸을 정도로 자주 입었다. 김무열은 "그 한 벌의 옷 자체가 서지우를 완성한 듯하다"고 말했다.
"처음 의상을 보고는 '이 옷을 진짜 입냐'고 물었어요. 작가 캐릭터를 위해 김경주 시인이나 김영하 작가의 인터뷰를 수 차례 참고했는데 그들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거든요. 그런데 정지우 감독은 박수를 치며 좋아하시더라고요. 계절감이 튈 정도로 계속 입으라고 하셨어요."
"정사신도 러브샷도 슬펐다"
'공장 점퍼'를 선호한 감독에게 가장 아쉬움을 드러낸 것은 의상 스태프들. 모델 뺨치는 김무열의 옷태가 헐렁한 의상에 가려지니 그랬을 만도 하다. 그러나 촬영 중 김무열이 가장 안타까웠던 지점은 후줄근한 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이야기의 비극적 끝을 알면서도 극 초반의 즐거운 장면들을 연기할 때 가장 안타까웠다"고 고백했다.
영화의 초입, 이적요와 서지우가 러브샷으로 술을 들이키는 장면은 그가 꼽은 가슴 짠한 장면 중 하나였다. 김무열은 "원작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촬영을 할수록 슬픈 감정이 커지며 몰입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그래서 김무열에게 '은교'의 정사신은 파격이 아니라 슬픔이다. 원작과 다르게 재현된 서지우의 마지막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속 서지우는 스승에 대한 배신감과 슬픔을 눈물로 쏟아낸다. 그러나 김무열이 연기한 서지우는 눈물보다 거센 분노로 감정을 표출한다.
그는 "서지우가 아예 울었다면 관객도 같이 울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면서도 "각색을 통해 마지막까지 울지 못하는 존재의 외로움이 그려졌다"고 말했다. 김무열이 서지우를 연기하며 들었던 음악은 조용필의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지우 감독이 '이 노래를 듣고 연기해달라'며 추천한 곡인데 처음엔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죠."

"뮤지컬서 정점 찍은 적 없다…무대는 내 고향"
김무열은 '쓰릴 미' '아가씨와 건달들' 등 유명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했다. 지난 2009년에는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영화로 비중이 기운 최근의 활동을 언급하며 뮤지컬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것인지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에 영역을 넓힌 것은 아니냐고 덧붙이자 크게 웃으며 "절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정점을 찍다니요. 조승우·류정한·엄기준·민영기·조정석 등 최고의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이돌에서 뮤지컬 배우로 거듭난 김준수도 있고요. 무대는 제 친정집, 고향 같아요. 연습실에서는 떠는데 첫 공연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뮤지컬 무대에는 더 설 거에요.(웃음)"
김무열은 오는 7월 뮤지컬 '쓰릴 미'로 일본을 찾는다. 그는 이번 원정을 "국가대표 마크를 단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한국에서 웰메이드로 재탄생해 역수출을 이룬 데서 느끼는 뿌듯함이었다. 자신이 '쓰릴 미'를 통해 배우로 비춰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5회 공연을 위해 한 달 넘게 연습을 해야 하지만 흔쾌히 공연을 수락했다"며 "배우로서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울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죽어도 보고 싶다"

올 봄은 김무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가 시차를 두고 출연한 세 편의 영화가 나란히 개봉하는 것. 6년 전 촬영한 데뷔작 '멋진 신세계'는 SF 프로젝트 '인류멸망보고서'로 지난 11일 개봉했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첫 주연작 '개들의 전쟁'도 첫 선을 보인다. 부지런히 무대와 스크린을 오간 결과물이 차례로 빛을 보게 됐다.
"어떤 역할이든 욕심이 나요. 울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병에 걸려 죽어도 보고 싶어요. '본 시리즈' 같은 남자다운 액션도, '테이큰'같은 영화도, 절절한 멜로도 해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역할도, 살고 싶은 인생도 많은 젊은 배우의 앞으로 행보가 더욱 궁금해졌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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