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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70대 노인의 삶에 매혹, 빠져나오지 못했다"(인터뷰)


'은교'의 70대 시인 이적요로 분한 박해일

[정명화기자] "노인의 삶을 몇달간이라도 살아보니, 그 느림과 여유의 삶이 의외로 저와 잘 맞더군요."

반백의 머리에 얼굴에는 거뭇한 반점, 두터운 안경을 쓴 일흔살의 노인. 배우 박해일이 도전한 새 캐릭터는 실제 그보다 두배의 나이 차를 가진 일흔살의 노인,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적요'다.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박해일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힘든 이적요 캐릭터에 대해 예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매혹과 관능, 질투와 젊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17살의 소녀 '은교'에게 매혹당한 늙은 시인의 감정을 빌어 소설은 이같은 주제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 많은 우려와 기대 속에 정지우 감독의 손을 빌어 소설 '은교'는 영화로 탄생했다.

영화 '은교'에서 일흔살의 시인 '이적요' 역은 서른 여섯살의 배우 박해일이 맡았다. 대표적인 동안 배우이자 선과 악의 공존 지점을 가진 얼굴의 소유자라는 평을 들어온 그는 첫 사극 '최종병기 활'에 이어 이번에도 쉽지 않은 도전을 했다.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특수분장을 하고, 사회적 위치와 관습, 명예를 모두 내던진 채 어린 소녀에게 매혹당한 저명인사를 연기한 그는 2배의 시간을 미리 살아버렸다. 몇달 동안 이적요로 살면서 '느린 노인의 삶'이 의외로 자신에게 잘 맞았다는 박해일은 "아직 이적요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박해일과 이적요의 중간쯤 되는 상태"라고 한다.

노역 분장과 지탄받을 수도 있는 매혹의 감정 연기, 베드 신 등 '은교'의 출연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었고, 배우로서 중요한 호흡과 경험을 배울 수 있었다고 박해일은 의미를 밝혔다.

아직 영화가 공개되기 전, 궁금증과 호기심만을 가지고 만난 박해일은 "영화 시사를 앞두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배우 박해일의 모습이 아닌 특수분장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 과연 어떻게 다가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인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많은 것을 예민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나답게 하자, 나라는 사람이 늙었을 때 할법한 행동과 양식으로 접근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노인들 흉내도 많이 내보고 의논도 많이 했지만, 결국 솔직하게 하는 것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스스로 자문하고 감독과 치열하게 논의하고 궁금해하며 만들어갔던 이적요 캐릭터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박해일은 설레여하고 있다.

이하 일문일답

-첫 노역 분장을 하고 자신의 모습을 본 느낌이 어땠나?

"특부순장을 처음 했을때 너무 궁금했다. 특수분장을 하는데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결과물을 종잡을 수 없더라. 이적요의 모습을 만들어내기까지 여러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나 조차도 그 결과물이 너무 궁금했다."

-노인의 삶을 살아본 느낌이 어땠나?

"생활이 느려졌다. 말과 행동, 몸이 자연스럽게 느려지더라. 점점 몸도 편해지고 그래서 살도 붙었다. 몇개월 동안 노인이 돼서 노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느끼려고 해보니 자연인 박해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빨리 털어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오락가락 하며 박해일과 이적요의 중간쯤에 있다. 의외로 내게는 노인의 삶이 잘 맞더라. 여유있고 느릿한, 정신없이 빠르게 살아가는 요즘 시간들과는 반대되는 경험을 해봤다."

-원작의 문학적이고 관념적인 면들이 어떻게 영화로 표현될 지 궁금하다.

"원작은 디테일하고 방대하면서 직관과 객관을 다 이용하는 방식이지만 영화에서는 세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최대한 직접적이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원작에는 없는 이적요의 젊은 모습이 잠깐 등장하는데?

"맞다. 이적요의 상상 속에 젊은 시절로 잠깐 등장하는데, 아마 깜짝 놀랄거다. 짧게 등장하지만 굉장히 임팩트가 강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노출연기가 있었던 걸로 안다.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베드 신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느낌과는 다른 좀 더 문학적인 부분이 있는 그런 베드 신이다."

-노출연기는 여배우만큼 남자배우에게도 힘든 작업 아닌가?

"그렇다. 쉽지 않은 예민한 신이지만 그냥 짧고 굵게 촬영을 마쳤다는 기억이다. 김고은과 친숙해진 중반쯤에 촬영을 했다.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신인임에도 굉장히 당차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 그런 면에서 예민할 수 있는 촬영이만 수월하게 했다."

-'은교' 캐스팅 제의를 받고 고민은 없었나?

"당연한 일이지만 고민은 많았다. 아마 어느 배우라도 고민은 많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히 생각해보고 도전해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적요가 가진 감정을 관객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배우로서 외적으로 노인스러운 디테일을 예민하게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완성됐다고 해서 캐릭터에 녹아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거고 두번째가 외적인 모습이라는 거다. 이적요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던 중요한 경험이 돼 줄 것 같다. 이적요의 감정은 뭔가 많은 것을 표현하기 보다 최대한 절제를 하면서 보여주려고 했다. 그 나머지는 감독님의 터치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과 작업 후 생각은?

"여배우가 캐스팅되기까지 감독님이 과연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때 기대하면서 기다렸던 것 같다. 김고은 처음 봤을 때 은교스러운 부분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봤다. 첫인상은 은교스러운 여고생 이미지가 바로 저거구나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촬영할때 어떻게 해가야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신인인 것은 걱정 안했다. 그건 감독님이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고은은 나이에 비해 대담하고 과감하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다. 그런 부분이 앞으로의 작품을 해나가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 돼 줄거라고 생각한다. 김고은 그런 장점 때문에 빨리 적응했던 것 같다. 배우에게 데뷔작은 첫사랑과 같은건데, 김고은에게 '은교'가 좋은 데뷔작이 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은교'는 나이듦과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에게 나이듦이라는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늙고, 청춘의 한때가 있지 않나. 이건 누구나 공통적인 소재여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공감할만한 지점이 돼 줄거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이는 부분은 다양하겠지만 각자 나이대에 느껴볼만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한다.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낼 것 같다."

-배우와 시인의 삶에 공통점은 없나?

"있다. 배우와 시인은 결과적으로 솔직함에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 영화나 문학이나 모두 솔직함에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솔직함이야 말로 모든 해답인 것 같다."

-지금 박해일을 매혹시키는 관능은 어떤 것인가?

"내게 있어 관능이라는 것은 조금씩 바뀐다. 나 역시 예전과는 다른 관능에 집중하게 된다. 요즘은 솔직함이 가장 아름답다. 낯설고 궁색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솔직함이 가장 세련된거라는 생각이다. 배우도 그렇고 사람의 관계도 일도 그렇다. 솔직함이야 말로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은교'라는 작품이 배우 박해일에게 가지는 의미는?

"'은교'에서의 이적요 캐릭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바람직한 연기의 톤을 느꼈다는거다. 매번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이나마 가져가는 것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조이뉴스24 정명화기자 some@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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