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박화영' 김가희 "'꿈의 제인' 恨 풀었어요"(인터뷰)


20kg 체중 증량 열연…"'박화영' 출연, 영광이었죠"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장편영화에서 처음 타이틀 롤을 맡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 '박화영'(감독 이환, 제작 명필름랩) 속 김가희의 연기는 강렬하다. 러닝타임 내내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극의 중심에서 작품 자체의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박화영을 연기한 실제 김가희는 어떨까. 여느 신예 배우와 다를 게 없었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설레했고 혹여 비난이 쏟아질까 마음 졸였다. 체중을 많이 감량한 외모뿐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에선 박화영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김가희라는 이름은 아직 관객에게 낯설다. 필모그래피에 나타난 데뷔작은 지난 2012년 단편영화 '점프샷'이지만 다수의 연극 무대에 섰고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단역으로 여러 작품에 얼굴을 비쳤다. 하지만 "많이 얻어가기 위해" 연기를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작품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영화 '집' '꿈의 제인' '처녀비행' 그리고 '박화영'까지, 차근차근 작품수를 늘려가며 연기의 깊이를 더해왔다.

출연한 작품들이 크고 작은 국내외 영화제에 진출한 것을 두고 김가희는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그의 연기력도 큰 몫과 보탬이 됐을 터. 특히 "박화영엔 김가희밖에 없었다"라는 이환 감독의 말처럼 김가희는 '박화영'에서 박화영 그자체다. 영화는 지금 이 땅, 10대들의 생존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엄마로 불린 소녀 박화영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내용. 최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조이뉴스24가 김가희를 만나 영화 밖의 이야기를 나눴다.

담배, 폭력, 섹스 등 다소 수위 높은 장면들 사이에서 박화영은 외모부터 눈길을 끈다. 사내아이 같은 짧은 머리에 후덕한 몸. 김가희는 캐릭터를 위해 20kg 이상의 체중을 늘리는 등 외양부터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박화영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박화영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힌 김가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렵더라. 지금도 아쉬운 게 많다"라며 스타일 변화보다는 연기의 고충이 더 심했다고 토로했다.

"부담감이 많았죠. 열심히 찍었지만 관객 분들이 크게 놀랄 만큼 센 표현들이 있고요. 또 제가 박화영처럼 강인한 깡이 없어서 그런지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감독님과 5차 오디션까지 보는 과정에서 이 영화는 세기만 한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캐릭터 작품이라는 생각이 더 깊게 들었어요. 물론 배우로서 선택 받는 입장이지만 '언제 이걸 표현해볼 수 있겠나' 싶어서 연기하고픈 욕심이 컸죠."

박화영은 자신을 버린 엄마의 집앞에서 칼을 휘두르고 고성을 지르는 등 패악을 부린다. 경찰들에게 위축되지도 않고 교무실에선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운다. 4 대 1 몸싸움도 할 만큼 '세다'. 그러나 그 표면 뒤에는 상처, 외로움 등 연약함이 층층이 쌓여있다.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터.

"감독님이 레퍼런스로 보내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봤는데 제가 싫어했던 과거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공포감과 우울함이 밀려오더라고요. 케빈이나 박화영과 똑같은 삶은 산 건 아니었지만 이들의 감정을 비슷하게 겪었던 과거를 가져왔어요. 연기에 대한 결핍도 있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순간들도 있었거든요. 또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때론 박화영, 또 다른 때에는 미정이가 될 수 있다고 여겼죠."

그려내기 쉽지 않은 인물이지만 김가희는 딱 한 단어, '환상'만을 머릿속에 넣으며 연기했다고. "박화영은 스스로 엄마라고 여기면서 갖게 되는 책임감이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럼에도 책임감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나중엔 미정이가 '무슨 엄마?'라고 말하는 순간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깨지기 시작하는, 그 환상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가희는 올해 스물일곱살. 동안 외모를 지녔지만 9살이나 어린 18살 박화영을 표현하는 데 걸림돌은 없었냐고 물었다. 김가희는 "청소년 감성이 많다"라고 웃으며 먼저 농담조로 자평했다. 이어 "평소에 학생처럼 입는 걸 좋아한다. 또 SNS를 하다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는다'는 뜻)처럼 모르는 신조어가 나오면 얼른 의미를 검색해본다. 또 스스로 '넌 동안 외모가 메리트야'라는 자기암시를 했다(웃음)"고 답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을 맡을 것 같은 외모이지만 박화영은 그들에게 최하위 피식자이고 먹잇감이다. 그래서 구타를 당하고 모욕감을 겪는 장면들이 많다. 김가희는 이를 함께 연기한 극중 우두머리 영재 역 배우 이재균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신을 만들어갔다.

"재균 오빠가 연극배우 활동을 해서 그런지 아파보이게 잘 때려줬어요. 어떻게 연기로 담아낼지도 재균오빠와 많이 이야기 나누며 연습했죠. 특히 폭력 신은 어차피 많으니까 '제일 가장 큰 공포감은 뭘까'를 계속 생각했더니 나중에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이더라고요. 일어나라고 하면서 계속 발로 차는 것처럼요."

어디까지나 연기이지만 철저히 실제 감정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에 '욱' 하고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고 그럴 땐 화장실을 찾았다. "서로 합의한 장면이었는데도 너무 참을 수 없더라. 오케이 사인을 받고 화장실에 가서 소리를 질렀다. 나와서 현장에 가면 웃으면서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이런 감정을 겪었지만 무너지면 안 되니까 너무 위로하지도 냉정하게 대하지도 았았다. 그랬더니 나중엔 더 끈끈해지더라."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연기하는 대상, 미정 역의 배우 강민아와는 천천히 어색함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감독님이 하루에 한번씩 전화통화를 하라고 해서 처음엔 '매니큐어를 발랐다' 같은 이상한 말도 꺼냈다"고 웃으며 이후 친분을 쌓아간 게 호흡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여성 배우들 중엔 나이 차이가 가장 많이 난다. 언니로서 모성애 연기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또 실제로 되게 귀엽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은조 역으로 짧게 출연했지만, 김가희는 '박화영'을 통해 '꿈의 제인' 때의 한을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환 감독님은 제 연기 중에 가장 좋았다고 했지만 스스로 평가해보면 '꿈의 제인' 때 연기는 별로였어요. 너무 못해서 죄송하더라고요. 더 해도 모자랄 판에 준비가 부족했죠. '꿈의 제인'의 한을 '박화영'에서 풀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빽빽 소리만 지를까봐 노심초사했는데 많은 장면들에서 저를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박화영은 배우가 하기에 너무 좋은 캐릭터였죠."

또한 가위 눌린 경험이 나름 뿌듯했다고 말했다. "작은 부상도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였다. 그래서인지 잘 겪지 않는 가위에 계속 눌렸다. '아, 그래도 내가 이럴 정도로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밝게 웃었다.

악플은 여전히 무섭지만 정신력을 어느 정도 담금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처음엔 '나 같으면 이런 선택을 안 하겠다'라고 생각한 부분이 많았어요. '왜 이런 비정상적이 선택을 하는 거지? 모르겠다'라고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박화영이 저보다 낫더라고요. 저는 누군가와 맞서 싸우지 못하는 사람인데 박화영은 그래도 일단 지르잖아요. 박화영을 연기하면서 소리도 마음껏 질러보고 안에 있던 서러움도 폭발시켰죠. 또 되게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인데 멘탈이 조금 강해진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은 한번에 바뀌진 않겠죠?(웃음)"

김가희는 이환 감독의 단편영화 '집'(2013)에서 주연 상희 역을 맡은 바 있다. 이환 감독과 또 한번 인연을 맺은 김가희는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저는 모난 돌멩이처럼 잘 다듬어지지 못했어요. 감독님은 그런 점을 좋아해서 계속 다듬어줬지만 '내가 나중에 감독님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기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박화영을 연기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어요. 열심히 찍었으니 관객에게 욕만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한편 '박화영'은 '눈발' '환절기'에 이은 명필름랩의 세번째 작품. 지난 19일 개봉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화영' 김가희 "'꿈의 제인' 恨 풀었어요"(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