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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한번볼래?]'박화영'★★★★


높은 수위와 허세 뒤에 감춰진 인간·여성 박화영의 이야기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방안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욕실은 두 청소년 남녀가 내는 거친 신음소리로 가득하다. 방 옆에 작게 딸린 부엌에선 언뜻 사내아이에 가까워 보이는 짧은 머리에 후덕한 몸을 지닌 18살 박화영(김가희 분)이 라면을 끓인다. 그는 방안에 널브러진 소주병처럼 늘어져 있는 또래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밥을 먹이고는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했냐"라고 거들먹거리며 환하게 웃는다. 영화 '박화영'은 이런 허세 가득함 뒤에 감춰진, 인간 그리고 여성 박화영의 이야기다.

'박화영'(감독 이환, 제작 명필름랩)은 리얼하다. 그만큼 세다. 첫 장면부터 걸걸한 욕설은 기본이고 담배, 술, 섹스 등 소위 청소년의 탈선을 상징하는 물건과 행위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어리다'라는 단어에 쉽게 연상되는 '순수함' 따윈 없다. 겉모습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이용하고 누군가의 모멸감을 보며 히히덕거린다. 옳고 그름, 도덕과 비도덕을 구분 짓는 기준 자체가 사라진 곳. 금기가 실종된 10대 청소년의 세계가 영화의 배경이다.

또래 아이들이 잠시 거쳐가는 집의 주인, 박화영은 거침이 없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가 악을 쓰며 서슴없이 칼을 휘드르고 경찰 앞에서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고 억센 힘으로 4 대 1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마치 정글 속 동물들의 약육강식을 연상케 하는 또래 집단에선 최하위 피식자로 전락한다. 타의와 자의가 섞여, 박화영은 언제나 이들에게 무시와 폭력을 당하는 아주 쉬운 먹잇감이다.

'박화영'은 다소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현실을 묘사한다. 허세 가득하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는 박화영, 관계에서 잇속을 챙기는 미정(강민아 분), 최상위 포식자 영재(이재균 분), 권력자에 기생하려는 또 다른 인물 세진(이유미 분) 등 10대를 넘어 어느 관계에나 내포된 권력관계의 먹이사슬 구조를 재현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미덕은 박화영의 허세, 그에게 가해지는 무시·차별·폭력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또 다른 이야기다. 사실재현이라는 외피는 사라지고 지독한 외로움과 여성의 또 다른 얼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다.

박화영은 절박하다. 엄마 노릇이라도 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자신의 집으로 뿔뿔이 돌아가버리면 박화영은 홀로 남겨진다. 극중 과거인듯 현재인듯 헷갈리는 모든 장면마다, 혼자 덩그러니 있는 박화영의 모습에선 쓸쓸하고 진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그의 깊은 불안감은 어떤 관계로든 비집고 들어가려는 처절함으로 이어진다. 특히 미정은 그 결핍을 해소해줄 것 같은 동아줄. 그래서 박화영은 미정과의 관계에 애처로울 정도로 집착한다. 이는 영화가 현실의 민낯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전하는 이유이고 10대를 넘어 누구나 겪을 법한 근원적 감정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또한 '박화영'의 독특한 표현방식은 모성애의 희생, 그리고 그 가치가 이용당하고 내팽개쳐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과거의 결핍, 상품화될 수 없는 외모 등의 원인이 얽혀 박화영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기형적인 관계에 속박된다. 이때 엄마 박화영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인물 영재, 미정은 각각 아빠와 딸을 대유(代喩)한다. 그것도 끔찍한 가부장적인 가족 형태로 영재는 폭력적인 남성, 미정은 가족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자녀다. 이들에게 여성인 '엄마' 박화영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무엇이든 요구해도 되는, 또 한편으론 귀찮은 존재다.

박화영의 표정과 뒷모습은 짧고 강하게 박힌다. 그래서 그가 버림 받을 때,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긴다. '박화영'에서 가장 리얼한 건 현실재현이 아니라 버려진 비참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다. 특히 이와 관련,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박화영을 그려낸 배우 김가희는 캐릭터 그 자체다. 관계가 변함에 따라, 주파수를 맞추듯 그에 맞는 감정을 빈틈없이 표현한다. 배우 강민아는 때론 사랑스럽게, 때론 얄밉고 야멸차게 극과 극의 미정을 연기한다. 박화영을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영재 역의 배우 이재균 또한 실제 어느 곳에서나 있을 것 같은 10대 우두머리를 사실적으로 옮긴다. 영화 '박화영'은 배우들의 연기를 포함해 어느 한군데 리얼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편 '박화영'은 지난 19일 개봉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러닝타임 99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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