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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26, 가와사키 프론탈레).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와 등번호 12번을 단 북한 축구대표팀 부동의 원톱.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린 현실에서 북한의 스포츠스타가 한국 국민들로부터 이렇게 사랑받은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는 한때 정대세 열풍이 불었을 정도였다. 정대세는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북한 축구대표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정대세 열풍의 시작은 지난 2008년 2월20일 중국에서 열렸던 2008 동아시아연맹 선수권대회 2차전 한국-북한전이었다. 염기훈의 프리킥으로 1-0으로 앞서던 한국은 북한 스트라이커에게 환상적인 일격을 맞고 무승부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 환상적 골의 주인공이 바로 정대세였다. 후반 27분 정대세는 한 번의 패스를 받아 드리블로 치고 들어가며 오른발 슈팅을 때려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이 오늘의 정대세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한국에는 정대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빠른 스피드, 강력한 몸싸움, 매끄러운 볼터치, 화려한 개인기, 날카로운 슈팅력, 높은 제공권, 정확한 패스 등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것을 두루 갖춘 선수라며 한국 팬들은 정대세에게 '인민루니'라는 별칭까지 붙여줬다.
인민루니 정대세는 북한이 지니고 있던 '44년의 한'을 풀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지 못한 북한. 정대세가 선봉에 선 북한은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에 이은 B조 2위로 북한은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44년 만의 본선행을 결정지었지만 북한은 또다시 암흑에 휩싸이고 말았다. 북한은 월드컵 조편성에서 G조에 들어갔다. 북한이 조별예선에서 만나야할 상대는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 호나우두가 이끄는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 그리고 디디에 드로그바가 이끄는 아프리카의 자존심 코트디부아르다. 북한이 이른바 '죽음의 조'에 묶인 것이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 국가 중 북한은 최약체로 꼽히고 있다.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나 세계 언론은 북한의 예선 탈락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브라질에 카카, 포르투갈에 호나우두, 코트디부아르에 드로그바가 있다면 북한에는 정대세가 있다. 정대세가 열정을 가지고 희망을 이어가는 한 북한은 다음단계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정대세가 북한 공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적인 수비축구를 구사하는 북한은 정대세가 해결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정대세의 한 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대세의 골이 터져야만 북한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44년 만의 기적이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정대세는 "죽음의 조에서 월드컵 조별예선 통과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승리를 믿지 않으면 승리가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믿는다. 조 1위나 2위로 반드시 조별예선을 통과하겠다"며 꺼지지 않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또 정대세는 "월드컵에서 한 경기에 한 골을 넣는 공격수가 되고 싶다. 상대가 강하다. 그런 상대로 골을 넣으면 세계적인 공격수라는 평판을 들을 수 있다"며 월드컵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목표를 전했다.
44년만에 세계축구의 중심에 나선 북한의 운명이 정대세의 발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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