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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 윤경신 감독, 애국심 앞세워 리우행 도전


[창간 11년 인터뷰]男 핸드볼대표팀 윤경신 감독, 현실과 리더십을 말하다

[이성필기자] 한국인들에게 독일 분데스리가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프로축구를 생각하고 전설을 썼던 차범근(62) 전 수원 삼성 감독을 떠올린다. 그러나 또 다른 전설을 쓴 자랑스런 한국인이 있다. 장신(203cm)의 윤경신(42) 남자 핸드볼대표팀 감독이다. 독일 남자핸드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5∼2006년 Vfl 굼머스바흐, 2006∼2008년 함부르크SV에서 뛰었다. 그는 1이라는 숫자와 친근하다. 개인 통산 2천905골로 1위, 6시즌 연속 득점왕, 통산 8회 득점왕, 2000~2001 시즌 최다인 324득점(경기당 8.5골) 등 각 부문 1위 타이틀을 많이 얻었다. 창간 11주년을 맞이한 조이뉴스24가 윤경신 감독을 만난 이유다.

"박중규, 엄효원. 너희 뭘 잘못한 것 같냐. 다시 들어와!"

남자 핸드볼대표팀은 이번 달 15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2016 리우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치른다. 지난달부터 훈련에 힘을 쏟았다. 대표팀은 11일 도하로 출국해 현지 적응에 들어갔다.

올림픽 예선을 준비하는 태릉선수촌 필승관은 핸드볼 대표팀의 요람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태극기가 보인다. 윤경신 감독은 매 훈련 때마다 필승관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습관화하도록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만큼 국가대표의 책임감을 인식하라는 의미다. 선수들이 깜빡 잊고 들어오면 다시 하도록 지시한다. 기자가 윤 감독을 만난 날 하필 박중규와 엄효원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잠시 잊은 것이다.

태극마크 책임감 강조, 정신 무장으로 올림픽 티켓 얻는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대표팀은 소집 초기 새벽, 오전, 오후로 하루 세 차례 연습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새벽 훈련을 빼는 대신 오전, 오후, 야간으로 바꿨다. 강훈련으로 체력이 바닥을 치다 다시 오르는 시점이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깜빡 잊는 정도는 있을 수 있다.

한국 남자핸드볼이 리우 올림픽을 가려면 개최국 카타르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 카타르는 대부분이 귀화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과 결승전에서 만나 금메달을 획득했고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돈의 힘을 과시했다. 홈 텃세까지 생각하면 한국이 절대 불리하다. 같은 조의 바레인이나 카타르 조에 있는 이란도 쉽게 보기 어려운 팀들이다.

윤 감독은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여서 긍정적이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다. 부담감도 있고 적지에 가서 싸워야 하니 그렇다. 카타르의 자국 리그가 활성화돼 주변 국가도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실력을 키운다. 축구 같은 경우는 돈으로 성적을 내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핸드볼에서는 그렇게 되더라. 현실이라 안타깝다"라며 중동 팀들과 쉬운 승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안게임 때 카타르에 한 번 꺾이면서 선수들의 자신감이 상실됐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윤 감독은 "자신감이 떨어져 있더라. 리그가 끝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대표팀에 와서 더 그럴 것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결승전도 그렇고 (해체 위기까지 갔었던) 코로사 문제도 여전하다. 선수들이 표현은 하지 않지만 몸으로 보일 때가 있다"라며 대표팀을 조율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 감독의 화려한 경력을 떠올리면, 지도자로서 그가 보여줄 것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는 1990, 1994, 1998, 2002,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했고 1995, 1997년 세계선수권 득점왕, 2001 국제핸드볼연맹(IHF) 선정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됐다. 올림픽도 1992, 2000, 2004, 2008, 2012년 등 5차례나 출전했다. 올림픽 본선으로 가는 방법을 잘 아는 윤 감독의 엄살이라고 할까.

하지만 보기와 달리 윤 감독의 머리는 복잡했다. 선수 때는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감독은 다르다. 선수들 개인개인을 두루 살펴야 하고, 전력 분석 등 온갖 것들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야 한다. 더욱 머리가 아픈 것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해낸 '우생순' 여자 대표팀과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렸던 윤 감독이기에 올림픽 티켓을 따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여자 핸드볼도 하니 남자 핸드볼도 어느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시선이 윤 감독을 괴롭힌다.

"저로서도 여자대표팀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니 부담스러워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여자는 아시아에서 상대가 없어요. 일본이 있지만 실력 차는 있죠. 그런 것이 안타까워요. 선수들의 목표 의식도 떨어져 있는데 이걸 끌어 올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윤 감독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또 선수들에게 틈만 나면 강조하는 것이 애국심이다.

"국가대표팀이면 태극기가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체육관을 사용하는데 고마움을 느껴야 합니다. 애국심은 당연합니다. 옛날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외국식을 따라가는 것은 안타깝죠. 핸드볼은 골을 넣어야 하는 종목입니다. 점점 팀워크가 사라지고 변해가는데 안타깝습니다. 아프면 (대표팀에 오지 않고) 쉬려고 하고 의지도 많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나는 분데스리가 시절에도 대표팀만 소집되면 휴가를 받고 왔어요. 그래서 팀에서 혼도 많이 났지만 유럽에서 뛰면서 애국심이 더 생기더군요."

감독은 팔색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윤 감독은 모교인 경희대에서 리더십을 주제로 석, 박사 논문을 썼다. 굼머스바흐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자랑한다.

그는 대표팀에서 잔소리꾼으로 변신했다. 시어머니 역할이다. 선수들이 싫어해도 하나하나 지적하며 팀믈 만들어가고 있다. 최고의 선수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다.

"선수들을 한 곳에 몰두하게 하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더십 발휘에 집중하고 있어요. 리더십에 대한 정의는 힘듭니다. 변혁적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십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팀 감독 자리는) 팔색조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네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전에는 계속 아시아에서 우승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마냥 선수들의 희생만 강요하기도 어렵다. 대표팀은 결승까지 간다고 가정하면 28일에 귀국하게 된다. 라이트백 정수영(코로사)은 29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12월 5~6일에는 정의경(두산), 박중규(코로사), 김동철(신협 상무), 심재복(인천도시공사) 등이 장가를 간다. 이들은 결혼 준비 기간을 희생하며 대표팀에 힘을 쏟고 있다.

"5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수영은 돌아오면 다음 날 바로 결혼입니다. 얼마나 바쁘겠어요. 혼수도 준비하고 바쁜 시기인데 생각들이 많을 것이고 집중도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내도 나 때문에 3년을 독일에서 고생해서 선수들의 마음을 압니다. 그저 선수들이 프로의식을 갖고 자기 관리를 잘 해주면서 국가를 위해 싸워주기를 바랄 뿐이지요."

윤 감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 육성의 필요성을 대한핸드볼협회에 강조했다고 한다. 이번 올림픽 예선에 주어진 단 1장의 본선 티켓을 확보하지 못해 대륙 예선으로 가더라도, 또는 올림픽 본선 자체를 가지 못해도 그 다음을 위해 선수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2~3년 동안은 차분히 새 얼굴을 앞세워 더 좋은 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남자는 실업팀이 5팀에 불과해 선수 육성이 정말 힘들다.

"축구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발굴했다는 기사도 봤어요. 부러워요. 축구야 인프라가 넓어 선수를 많이 볼 수 있지만 남자 핸드볼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200명 정도 되는 실업, 대학 선수들을 놓고 20명으로 줄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말 힘들어요."

윤 감독은 할 도리만 다 해놓으면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 이번 예선에서도 위대했던 과거를 내려놓고 선수들과 하나로 뭉쳐 올림픽 진출에 총력을 기울인다. 정말 고맙게도 두산, 충남체육회 등 팀들이 연합팀으로 연습 상대로 나서주는 등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요즘은 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갑니다. 아들을 보고 오면 기분이 나아져요. 그런데 걱정은 술이 많이 늘었다는 겁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와요. 경기 비디오를 보고 전력 분석하면 새벽 3~4시에요. 새벽 훈련이 있는 날이면 2시간밖에 못 자요. 그래도 술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대표팀 감독은 할 일이 많은 자리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중동팀들에 밀리지 않기 위해 윤 감독은 체력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과거 자신이나 백원철, 조치효처럼 시원하게 슛을 하는 자원이 많지 않다. 피봇 플레이에 능한 박중규의 득점도 모두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20m 왕복 달리기 등으로 지구력을 앞세워 이기는 전략이 최선이다.

지난달 25일 윤 감독은 여자대표팀 임영철 감독의 격려를 받았다. 임 감독이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고 귀국한 후 가장 먼저 윤 감독을 찾아 남자대표팀의 올림픽 진출을 기원했다고 한다. 악수까지 받으며 좋은 기운을 전달 받았다. 윤 감독은 올림픽 티켓 확보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15일 이라크전이 본선 진출 도전의 시작이다.

"우리 선수들은 강합니다. 매번 절실함을 느끼라고 강조해요. 아마 제 마음을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이뉴스24 태릉=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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