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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따뜻한 디지털세상] 제자와 친구되니 사이버 범죄예방 저절로


 

지난 18일 오후 5시 경기도 양평 한화콘도에서는 '경기도 청소년 사이버 범죄예방 교과연구회(이하 교과연구회)' 워크숍이 열렸다. 1학기 동안 각 학교에서 진행된 사이버 범죄예방 활동을 점검하고 2학기 활동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교과연구회는 현재 경기도 내 15개 중·고교에서 모인 20명의 교사가 소속돼 있다. 동아리 활동시간이나 교과시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사이버 범죄예방 교육을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워크숍에는 14명이 참가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어도 '수업'이라는 단어만 갖다 대면 흥미를 잃는 청소년들이 '사이버 범죄예방 교육'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저희도 놀랄 만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관련 동아리는 모집 때마다 신청자가 몰려서 아주 '난리'입니다."

교과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성지고등학교 한승배 교사는 "아이들 최고 관심사인 사이버 세상을 다루다보니 참여율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반 아이가 자살사이트에 가입해 실제 자살했던 사건을 계기로 정보윤리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한 교사는 지난 2003년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의 정보통신윤리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정보윤리교과서 집필에 참여해온 한 교사는 교실에서 직접 아이들과 사이버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지난해 포곡중학교 재직시절 교과연구회를 만들었다.

올해 성지고는 한 교사의 지도로 지난 6월 정보문화의 달을 맞아 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불법유해정보 신고대회'에 참가, 우수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지만 아이들이 대학진학을 위한 '봉사점수'나 '대외활동 수상'을 위해 참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 교사의 답은 명쾌했다.

"봉사점수가 동기유발책이 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점수'만 따려는 애들은 앉아서 공부하지 같이 활동하지는 않는 답니다"

◆ 제자와 친구되니 사이버 범죄예방 저절로

"이 활동 하기 전까지는 모든 교사가 포기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먼저 인사도 하고...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들을 포기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학교별로 돌아가며 지난 1학기 동안 사이버 범죄예방 활동사례를 발표하는 세미나 시간, 하남정보산업고 박수정 교사는 한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어려서부터 어디를 가든 인정받지 못했던 아이는 공부는 못했지만 유독 컴퓨터 실력이 뛰어났다. 사이버 세상하고만 소통하던 아이는 열 일곱 살 때 컴퓨터 해킹 범죄를 저질렀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아이는 자폐증상이 심해져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컴퓨터 과목을 맡고 있는 박 교사는 수업시간 틈틈히 게임, 음란물 등 잘못된 인터넷 이용습관을 짚어보고 학생들과 인터넷 문화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몇 차례 수업을 거듭하자 어떤 교과목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던 '문제아'가 수업에 참여해 그림을 그리거나 소감문을 적기 시작했다. '문제아'가 쓴 소감문을 보고 다른 교사들도 "이 아이가 이렇게 글씨를 잘 썼었냐"며 놀라워 했다고 한다.

박 교사는 "누구에게도 눈을 맞추지 않았던 아이가 자신의 관심사인 컴퓨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에게 먼저 인사를 할 때면 마음이 벅찹니다"라고 말했다.

'별컴지기'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사이버 범죄예방 활동을 한 별내중학교 유정미 교사는 "청소년들은 정말 나쁜 짓인지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도 자신들이 사이버 세상에서 무심코 내뱉은 욕설이나, 다운받은 파일들이 불법인 줄 알고는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사이버 세상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주는 것만으로도 교육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사이버 범죄예방'을 위해 시작한 활동이지만 교사들은 무엇보다 제자들과 마음을 터 놓을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도 선생님이 오면 쉬쉬하던 아이들이 먼저 '우리는 요즘 이런 것을 한다'며 마음을 터 놓게 된 것.

교사들은 "'컴퓨터'라는 소재 하나로 교육도 하고 아이들과 수다도 떨 수 있어 좋다"며 "기계에 친숙한 N세대일수록 인간적 교감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 무지개 좇듯, 꾸준히 교육할 터

이들 교사들이 이끄는 각 학교의 사이버 범죄예방 활동들은 모두 체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련 악세서리나 광고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정통부에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자체 캠페인을 벌이는 식이다. 또래들끼리 체험을 통해 사이버 범죄예방 관련 정보를 자연스레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교사들은 "야외활동의 교육효과가 더 높다"며 "학생들이 수업인 줄 모르고 놀면서 배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이 주머니를 털어야 할 때도 많다. 교과연구회 자체 운영비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지원하지만 각 학교마다 사이버 범죄예방 활동단에 대한 지원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업을 위해 약간의 '출혈'쯤은 즐겁게 감수하는 이들은 교과연구회의 모습을 '무지개 좇기'에 빗댔다.

"무지개는 언제나 멀리 있어요. 좇아가도 끝이 없지요. 하지만 희망을 주는 무지개니까 사람들이 계속 좇아가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교과연구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육효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아요.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이지요. 그러나 함께 울고 웃는 아이들이 있기에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겁니다."

워크숍을 토대로 서로의 교육활동을 비교하고 교육경험을 공유한 교과연구회는 오는 11월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모은 사이버 범죄예방 교육자료집을 낼 예정이다.

김연주기자 tot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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