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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987', 역사는 진보한다


6월 항쟁 소재…30년 전 광장을 비추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기사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30년 전 광장이 스크린을 채운다. 우리 각자의 생 안에서 내린 양심적 결정들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영화는 1987년 보통의 사람들이 일궈 낸 변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사는 관객들의 뇌리엔 가까운 과거의 현실 정치가 떠오른다. 그리고 관객은 역사의 진보에 대해 영화가 품는 희망을 응시하며, 극 중 인물들의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영화 '1987'(감독 장준환, 제작 우정필름)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대공수사처장 박처장(김윤석 분)과 그에 맞서는 서울지검 최검사(하정우 분),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 87학번 신입생 연희(김태리 분), 대공형사 조반장(박희순 분), 사회부 윤기자(이희준 분)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선택으로 1987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영화가 모티프로 삼는 사건은 19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다. '1987'의 서사적 흐름과 정서는 역사 속 실제 사건이 연상시키는 것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당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 박종철(여진구 분)을 향한 애도, 그 죽음의 이유를 은폐하려는 세력을 향한 외침, 호헌 발표에 대한 반동, 진실 규명을 요구하던 또 다른 대학생 이한열(강동원 분)의 죽음이 폭발시킨 분노,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까지,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가 집중하는 것이 한두 명의 중심 인물에 기댄 영웅담이 아님을 상기할 때 '1987'의 미덕은 도드라진다. 양심과 직업 정신을 동시에 발현시킨 최검사와 윤기자, 거리로 나섰던 이한열과 그의 동지들, 병용과 한열을 통해 독재의 폭압이 바로 자기 앞의 일임을 깨닫게 된 연희,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부당한 권력에 복무해 온 조반장의 갈등이 영화의 극적 전개를 돕는다.

결말을 향할수록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함께 만드는 울림이 짙어진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규명하려는 세력 사이의 줄다리기가 영화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을 긴장감 있게 끌고간다. 후반은 권력과 한 보 멀리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저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던 인물들이 각자의 계기로 인해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이들의 각성은 비로소 역사를 바꿀 손짓으로 전화한다.

이에 더해 한병용의 조카 연희와 이한열의 관계, 최검사와 윤기자 역이 지닌 활력 등 중심 인물들에 입힌 영화적 설정들은 상업 영화로서 '1987'의 결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압권은 김윤석의 연기다. 그가 연기한 박처장 역은 실존 인물 박처원을 모델로 재창조된 인물이다. 어린 시절 이념 갈등에 가족을 잃고 반공주의에 경도된 박처장은 독재권력의 하수인으로서 행보를 애국적 삶이라 정당화한다. 권력에 대항하는 민주세력을 '빨갱이'라 부르며 처단하고, 진실을 덮기 위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기도 한다. 최검사와 한병용, 윤기자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을 향해 유의미한 걸음을 떼는 인물들이라면, 박처장은 이들 모두의 힘을 막아서려 하는 캐릭터다.

의심의 여지 없는 연기력으로 충무로를 누벼 온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도 매끄러운 연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극 중 다수 인물들이 하나의 가치를 향해 달린다면 박처장은 정확히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핵심적 반동 인물은 영화에서 박처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묵직한 김윤석의 연기는 일대 다 갈등 관계의 저울을 가볍게 수평으로 만들고야 만다.

김윤석과 함께 극의 전반부를 채우는 최검사 역 하정우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의 무게감을 조절했다. '아가씨'로 강렬하게 데뷔한 후 '1987'에 출연한 김태리는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가장 잘 소화할 것 같은 배역을 맡은 유해진도 극의 완전한 일부로 관객을 만난다.

현장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윤기자 역 이희준, 뒤늦은 각성을 겪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반장 역 박희순 역시 각자의 장면들을 꿰차는 데 성공한듯 보인다. 강동원과 설경구, 여진구는 기존 수많은 영화들이 취해 온 '특별출연'의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활용됐다. 역시 긍정적인 방향이다.

30년 전 광장을 채운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지난 2016년 겨울의 광장이 떠오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영화 속 과거의 이야기를 응시하는 동안 스크린 밖 지난 10년 간의 현실 정치가 또 다른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1987'은 역사의 변증법적 진보에 대해 기꺼이 희망을 품게 만드는 영화다.

'1987'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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