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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의 허슬&플로우]프랑스에서 영그는 꿈…'하키 전설' 한혜령의 도전


네덜란드 1부 경험한 한국 하키의 전설…프랑스서 인생 2막

[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여러분은 대한민국 여자 필드하키에 대해 어디까지 아시나요.

사실 참 생소한 종목이긴 합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보는 것 아니면 대중들의 관심에선 상당히 멀어져있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 필드하키는 생각보다 상당히 강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발표된 세계 여자 필드하키 랭킹에서 한국은 9위를 마크했습니다. 아시아에선 중국(8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순위입니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대륙에선 적수가 없었습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까지 4대회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필드하키 강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지난 2014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올림픽에서도 강했습니다. 1988 서울 올림픽,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죠. 2010년대에는 다소 침체기를 겪었지만 2015년엔 월드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쁨도 맛봤습니다.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스타선수들도 많았습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임계숙이나 한금실, 황금숙 등이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여기에 뒤를 이은 전설적인 선수가 2000년에도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한혜령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로 여겨집니다. 2005 칠레 세계주니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듬해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된 이후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그는 세 차례의 올림픽에 모두 출전했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내며 화려하게 웃었습니다.대한하키협회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A매치 161경기를 소화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는 한국 여자 필드하키 선수 가운데 최초로 유럽에서 뛴 선수입니다. 세계 필드하키 최강국인 네덜란드 여자하키 1부(에레디비지에)의 강호 라른에서 뛰며 우승까지 넘봤고 이후 피노케 암스테르담으로 이적해 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친정팀인 KT 하키단에서 뛰었던 그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9월 프랑스 릴에 있는 릴 메트로 하키 클럽으로 임대 이적한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하키선수이자 한국 여자필드하키 선수로는 유일한 유럽파인 한혜령 선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프랑스 생활 두 달째…즐거운 적응기

(이 인터뷰는 지난달 4일 진행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시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혜령 선수는 11월 5일로 이적한 지 꼬박 2달째를 맞았습니다. 아직 프랑스가 낯설 법도 합니다. 그런데도 참 밝습니다. 그는 "릴 날씨가 정말 좋아요. 조용하고 살기도 좋고"라면서 웃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프랑스로 이적하게 된 걸까요? 프랑스와의 맞대결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프랑스랑 월드리그에서 붙었어요. 11-0으로 한국이 이겼는데 그때 그 게임을 지금 이 팀의 코치가 본 거죠. '한혜령 알아?'했는데 '안다. 우리 팀 오면 좋겠다'고 하면서 대우를 해줘서(웃음) KT에 말했는데 팀에서 배려도 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해줘서 올 수 있게 됐어요."

좋은 대우라고는 해도 월봉 100만원에 통역도 없는 열악한 상황. 한국에서 여자 하키 선수 가운데 최고 대우였던 그의 연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활비만 줘도 상관없어요. 그냥 여기서 (하키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기대를 전혀 안했는데 그것보다 더 주니까 승락했죠"라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아참. 집도 렌트해주고 프랑스어 과외도 정기적으로 해준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프랑스리그 도전은 참 의외입니다. 생소하기도 합니다. 그간 일본 하키리그에서 뛴 선수들은 있었지만 유럽에서만, 그것도 두 번이나 뛰는 건 한혜령 선수가 처음입니다. 한국보다도 좋지 못한 조건임에도 프랑스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국내에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선택한 거죠.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목적도 있었고요. 아! 물론 팀(KT)에서 안된다고 하면 그만두고라도 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좋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릴과 계약기간은 8개월. 9월 10일부터 시작한 추계 상반기 리그는 11월 20일 막을 내리는데 이 시즌이 끝나면 겨울엔 실내 하키도 있습니다. 그는 이 리그에도 참가하고 내년 3~5월까지 열리는 춘계 하반기 리그까지 소화한 후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럽 축구의 시스템과 굉장히 유사한 형태죠.

그런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선수 뿐만이 아닙니다. 유소년 코치와 심판의 역할까지 주어졌습니다. 릴에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될 수 있으면 심판도 해달라"고 했다는군요.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입니다. 그는 "영어도 수월치 않고 저도 막 과외를 받으면서 하는 입장이에요. 몸짓까지 섞어가면서 하는 데 정말 웃겼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합니다. 피곤함보다는 기쁨이 느껴지는 말투였습니다.

이러한 한혜령 선수의 존재는 프랑스 하키협회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번 이적을 추진해준 지인에게 프랑스하키협회에서 "한혜령 선수가 프랑스 하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하더군요. 한혜령 선수도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프랑스가 랭킹이 낮아요. 사실 예전에 네덜란드에서 뛸 땐 애들이 너무 잘해서 힘들었는데 여긴 수준이 떨어져서 힘들어요(웃음). 하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멋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데뷔 이후인 지난 3일엔 지역신문인 'La Voix du Nord'에 그의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제목은 '한혜령은 이미 릴 하키클럽을 정복했다(Han Hye lyeoung a deja Conquis le LMHC)'입니다.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하키를 위한 진심어린 제언 "지도자 육성해야"

한혜령 선수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유럽이라고 해서 수준이 전부 높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구조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스포츠를 경쟁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일상적인 '놀이'로 인식하는 문화 말입니다.

"유럽 하키는 축구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하키는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니까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감각이 있죠. 이 친구들은 공부도 같이 하지만 우리는 14살 때부터 죽어라 연습만 하거든요. 그렇게라도 해서 따라갈 수는 있지만 감각 그리고 신체능력 면에선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특히 벨기에같은 나라들은 예전엔 5-0, 10-0으로 이겼는데 지금은 한국이 질 수도 있어요. 한국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고 할까요."

한혜령 선수의 지적처럼 한국 여자하키는 최근 부침이 심했습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월드리그 준우승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같은 쾌거를 만들었지만, 투자가 적은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성장세를 경계했습니다. "중국은 워낙 신체조건이 좋고 특히 일본은 2020 도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있어 올라오는 추세"라고 하네요. 하키를 크리켓과 더불어 국기로 삼는 인도는 여전히 강호고요.

실제로 일본은 일본 최대 손해보험 회사인 '손보 재팬 일본 흥아'가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고 세계 17위의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 산하 소비자금융사인 프로미스가 서브 스폰서를 맡고 있습니다. 금액적으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죠. 여기에 '사쿠라 재팬'이라는 일본 특유의 선수단 애칭까지 붙이면서 하키가 생소한 팬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한혜령 선수는 한국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합니다.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선수들을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일깨워줄 좋은 지도자를 더 많이 육성해야한다는 것이죠.

"프랑스의 훈련 시스템이 참 좋아요. 사실 프랑스 선수들이 못한다고 했지만 훈련량이 적어서 못 하는거지, 정신력이나 프라이드는 한국보다 더욱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훈련을 시켰을 때의 집중력도요.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도입할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한국 선수들은 솔직히 훈련이 너무 많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지도자들이 일깨워주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기술을 힘든 시간을 거쳐 배우고 나면 몸에 배는 것이 있고 이것이 승리 그리고 자신의 몸값으로도 연결되면 좋잖아요. 이런 선수들의 정신력을 바꾸는 것도 지도자들의 몫 아닐까요."

물론 한 순간에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그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시간 그리고 의지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단기간에 무언가가 얻어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단언하더군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한국 하키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한순간에 시드는 관심 안타까워…많은 관심 주셨으면"

한혜령 선수는 릴에 오기 전 박사 과정에 지원을 할지 이적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적을 결심하게 됐죠. '경험'을 쌓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기로에 섰었죠(웃음). 고민도 했고요. 근데 이런 기회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 쪽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게 되면 제가 생각하고 있는 스타일을 도입해보고 싶어요."

지도자가 될지 행정가가 될지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진 않았지만 경험을 쌓겠다는 그의 말은 타당해보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하키인으로서 하키를 알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매번 나오는 이야기지만 항상 큰 대회가 있을 때만 다뤄지잖아요. 사람들이 TV에 나오면 봐주시지만, 대회가 끝나면 한순간에 시들어버리니까요. 하키에 많은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바람은 아직까진 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자 하키 대표팀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6일 열린 2017 아시안컵 3·4위전에선 일본을 꺾고 3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는 17일엔 여자 월드리그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출전합니다.

이처럼 리우 올림픽을 향한 한국 여자 하키의 열망은 지금도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한혜령의 바람대로 단발적인 관심이 아닌 일상적인, 꾸준한 하키의 인기는 물론 '하키 강국'이었던 한국의 과거 모습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 한혜령의 도전도 계속 됩니다. 한국에선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룬 그는 프랑스에서 인생의 2막을 위한 당찬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여자 하키사의 전례기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쓰면서 말이죠. 그의 앞에 밝은 미래가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Playlist : 가리온 - 생명수]

나찰과 MC메타로 구성된 한국 힙합의 선구자 가리온이 지난 2010년 발매한 2집 앨범 '가리온2'에 수록된 곡입니다. 사실 이 곡은 앨범으로 나오기도 전에 가리온이 각종 공연에서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기도 합니다.

가리온은 가사에 영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한국적인 색채를 입혀 곡을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흑인 문화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셈인데 이러한 선구자적인 태도가 힙합 팬들 그리고 뮤지션들의 큰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지난 2011년 네이버가 선정한 올해의 국내 앨범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에서 나온 랩 앨범 가운데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하고 지금도 즐겨 듣습니다.

'생명수'는 참 아름다운 곡입니다. 사랑 앞에 선 한 인간의 고백이 끊임없이 흐릅니다. 한글로 이만큼 아름다운 가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 곡 중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난 그저 무대에서 랩을 하는 사람 / 내 사랑 이 말 한마디만 들어봐 / 나란 사람은 척박하지만 이곳에서 시를 읊는 사람 / 정치는 관심 밖이지만 커다란 신념은 가슴 속에'

척박한 한국 여자 하키계의 선구자, 한혜령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조이뉴스24 김동현기자 migg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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