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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현대증권…30년 만에 간판 내려


바이코리아 펀드부터 주가조작까지 굴곡진 현대증권史

[윤지혜기자] 현대그룹의 집사이자, 국내 증권시장의 활황을 이끌었던 현대증권이 30년 만에 간판을 내린다.

현대증권은 KB금융지주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오는 11월 1일 상장 폐지된다. 현대증권이란 이름의 간판은 30년 만에 떼지만 코스피 시장에서 내려가는 것은 41년 만의 일이다. 현대증권의 전신은 1962년 6월에 설립된 국일증권으로, 1977년 현대그룹에 인수된 뒤 1986년부터 줄곧 '현대증권'이란 상호를 사용해왔다.

KB금융은 현대증권을 존속법인으로, KB투자증권은 소멸법인으로 하는 합병 절차를 추진해 내년 'KB증권'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굿바이, 바이코리아 펀드"

현대증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다. 현대증권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3월 바이코리아 펀드를 선보이며 국내 주식형펀드 전성시대를 열었다.

'저평가된 한국을 사자'는 슬로건의 이 펀드는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의 애국심 마케팅에 힘입어 출시 4개월 만에 수탁액이 10조원을 돌파했다. 당시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이 217조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셈이다. 동시에 현대증권도 업계 7위에서 1위로 단숨에 올라섰다. 당시 순이익 규모만도 3천48억원에 달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시 현대증권이 바이코리아 펀드 수탁액이 1억원을 돌파할 때마다 화분을 하나씩 장만했는데, 나중에는 화분이 사무실을 뺑 두르고도 남을 정도로 많아 처치 곤란이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펀드는 국내 펀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상품"이라며 "바이코리아 펀드에 힘입어 추락했던 코스피지수가 40%가량 올라 1000선을 회복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증시뿐 아니라 당시 외환위기로 침체됐던 한국경제에 큰 힘이 됐다. 2000년대 초반 유동성 위기에 놓인 기업들의 주식을 끌어안으며 자본금 조달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도 적극적으로 담아 그룹의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첫해 77%를 기록했던 바이코리아 펀드 수익률은 대우채 사태와 정보기술(IT)주의 버블 붕괴 영향으로 -70%까지 고꾸라졌다. 환매가 잇따르자 수익률이 추가 하락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 바이코리아 펀드 2종이 총 1천600억원가량의 불량유가증권을 불법 편입해 개인투자자에게 총 290억원대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대증권은 지난 2002년 청구금액 5천만원의 90%인 4천500만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했다.

◆현대증권 소액주주 운동과 함께 성장해

현대증권의 성장 과정은 소액주주 운동 발전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최근 소액주주 지분이 50%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이들 지분이 최대 80%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현대증권과 소액주주 간 대립이 가장 극명히 드러난 사례는 이익치 전 회장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다. 지난 1999년 이 전 대표가 경영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자금을 끌어들여 현대전자 주가를 조작한 이 사건으로 이 전 대표와 소액주주들은 약 13년 동안 소송을 이어갔다.

주가 조작 사건 당시, 이 전 대표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현대증권은 벌금 70억원과 약 8천700만원의 개인투자자 손해배상금을 냈다. 이에 대해 소액주주들은 "이 전 대표로 인해 현대증권이 피해를 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는데, 이 전 대표가 "현대증권은 벌금보다 더 큰 이익을 봤다"며 역으로 소액주주 대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 소송을 담당했던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그의 저서 '개미들의 변호사 배짱기업과 맞장뜨다'에서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을 계기로 증권집단소송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운동을 개시했다"며 "이 운동은 나중에 결실을 맺어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2004년에 드디어 제정됐다"고 회고했다.

또 현대증권에서는 지난 2004년에 국내기업 사상 최초로 노동조합과 소액주주가 추천한 후보가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의 사외이사 추천·선출권 도입이 미비하거니와, 실제 선출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성과라는 설명이다.

현대증권과 소액주주들 간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소액주주들은 현대증권이 KB금융에 자사주 7.06%를 염가 매각했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현대증권 측은 KB금융과의 주식교환이 완료됨에 따라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이 KB금융 주식으로 바뀌는 만큼 원고 자격이 상실됐다고 지적한다. 만약 이번 주주대표소송이 무사히 이어진다면, 포괄적 주식교환 시에도 주주의 제소자격이 유지된다는 국내 최초 판례가 될 수 있다.

현대증권 노조 관계자는 "현대증권 상장 폐지로 주식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회계장부 열람 소송 제기 등 주주의 권리가 다 박탈당하게 됐다"며 "금융지주의 발전을 위해 현대증권에 손해를 입히는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지주의 허수아비 사장이 선임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속수무책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KB금융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자회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입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16년 매각 논란 끝…더 건실한 증권사로 도약할까

현대증권은 현대그룹의 '집사' 역할을 도맡았던 만큼 현대그룹이 곤경에 빠질 때마다 함께 부침을 겪었다. 이익치 전 대표는 2000년 현대투신증권·운용과 함께 현대증권을 미국 AIG에 매각하려고 했으며, 2004년 현대투신증권·운용이 미국 푸르덴셜금융에 인수된 뒤로도 현대증권 매각설은 10여년 간 계속됐다.

결국 2013년 말 현대그룹은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해 금융업에서 철수한다고 전격 발표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일본계 사모펀드(PEF)인 오릭스가 인수에 나섰다가 포기하는 등 최종적으로 KB금융의 품에 안기기까지 가시밭길이 이어졌다.

마침내 KB금융 품에 안긴 현대증권은 올해 안에 양사 통합을 마무리하고 ▲자산관리(WM) ▲기업금융(CIB) 중심으로 인적교류와 협업을 늘려 시너지를 낸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첫 통합 조직으로 IPS(Investment Product Service)본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IPS본부는 KB금융의 WM조직에 현대증권 유관 부서가 합류한 것으로, 단순한 인력 교류를 넘어가 각 사의 전문성이 결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통합법인이 '유니버설 뱅킹'으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니버설 뱅킹이란 금융기관이 일반 업무와 증권업무, 더 나아가 보험업까지 겸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쌍용투자증권도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발전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며 "현대증권이 역사적인 기업이긴 하지만 현대상선 문제가 불거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만큼, 최다 은행 점포를 가진 KB금융그룹 안에서 장점과 시너지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그 회사의 역사는 사라졌지만, 이는 퇴보가 아니라 더 튼튼한 회사로 살아남는 길이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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