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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화제작 인터뷰]'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흑백 영화의 온도


"미학적이면서도 쉬운 영화라는 평, 감동적이었다"

[권혜림기자] 중년의 이발사 모금산(기주봉 분)은 지방의 한 촌락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산다.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하고, 취미로 수영을 배우기도 하며, 여가엔 호프집에 들러 이웃들과 눈을 맞추기도 한다. 아내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영화 감독을 꿈꾸는 아들 스데반(오정환 분)은 서울에 있다. 위암 진단을 받은 금산은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의 일상이 때로 고독해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금산은 화장실에서도, 식탁에서도, 종종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고향을 찾은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 분)에게 건네지는 이 글은 다름아닌 시나리오다. 채플린의 무성 영화를 닮은 이 글로 영화를 만들자는 금산의 제안은 젊은 남녀에게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스데반에겐 더 그렇다. 그와 금산의 관계는 아주 흔한 부자 관계처럼 데면데면하다.

결국 세 사람은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모금산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길 위에서, 금산과 스데반은 그간의 삶에서 공유하지 않았던 어떤 비밀들을 풀어놓기도 한다. 다행히도 이런 장면들이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철 모르던 아들 간의 눈물어린 고백 같은 것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감정의 과잉 없이도 마음을 건드리는 힘이, 이 영화엔 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감독 임대형)는 흑백 영화다. 영화제의 개막작 '춘몽'(감독 장률)과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상영작 '소음들'(감독 민제홍) 등 올해 영화제에 초청된 흑백 영화는 이 작품 외에도 많다.

그런데 이 영화들 중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흑백 이미지엔 어떤 당위가 느껴진다. 채플린의 무성 영화가 극의 중요한 모티프라는 사실이 큰 이유일 것이다. 자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서사의 요소들을 마치 따뜻함이 잘 보온된 동화처럼 풀어냈다는 미덕 역시 그 근거가 된다.

영화를 연출한 임대형 감독은 조이뉴스24와 만나 "외국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했는데, 이번 영화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우리 부모님도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며 "부산에서 영화를 본 이탈리아 관객들이 '미학적으로 구축되어있으면서도 쉬운 영화'라는 평을 했는데, 그 반응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돌이켰다.

임대형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선 이미 뜨거운 주목을 받아온 신진 감독이다. 단편 '만일의 세계'(2015)로는 지난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부산에서 첫 선을 보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아시아영화기구(넷팩)상을 수상했다.

이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임대형 감독과 일문일답

-영화는 중년 배우 기주봉의 첫 주연작으로 화제가 됐는데, 함께 작업한 과정이 궁금하다.

"기주봉 선생님은 부산국제영화제에 15년 만에 오셨다고 했다. 연극과 영화 등 다른 작품에서 주연을 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번 영화를 첫 주연작이라 기억해주니, '그것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면 괜찮다'고 하시더라. 선생님이 중심을 워낙 잘 잡아주셔서 두 젊은 배우들(고원희, 오정환)도 너무 편안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끌어주셨다.

함께 작업하며 느낀 점은 이 분이 정말 '예술가'라는 것이었다. 얼굴이 잘 알려져 있는 분인데도, 길에서 처음 만난 누군가와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가는 일이 자연스럽다.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벽을 치는 모습이 없더라.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많이 배웠다. 인간적으로 그런 분이다보니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하신 것 같다."

-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뒤 관객과의 대화(GV)에선 어떤 반응을 얻었나?

"영화제에서의 경험은 너무 행복했다. 관객들도 모두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더라. 왜 흑백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모금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어떤 관객은 모금산이 이발사니, 성씨 '모'가 '털 모'자가 아닌지를 묻기도 했다. 의사인 관객도 있었는데, 모금산의 병이 위암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하더라. 진행이 느리고, 다른 암에 비해 치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줬다."

-흑백 영화로 구상하게 된 이유를 다시 설명해달라.

"나름의 미학적 원칙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조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주' '춘몽' '북촌방향' '지슬' 등 최근 몇년 간 한국에도 흑백 영화가 많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상업 영화라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꿀까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원칙을 지켰다."

-잔잔한 흐름이지만, 종종 코믹한 장면들이 웃음을 주더라. 감독의 코드인가?

"내 정서가 '다운 템포'다. 진지한 것을 좋아해, 그런 코미디가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외국 관객들이 굉장히 많이 웃어주더라. 상영 중엔 나름대로 웃음이 많이 나온 것 같다. 가령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볼 때 극장에서 굉장히 크게 웃는 분들이 있다. '왜 저렇게까지 웃지?' 싶을 만큼의 반응이 종종 있는데, 이 영화를 보는 외국 관객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며 레퍼런스로 한 작품들은 외국 영화였다. 우리 부모님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탈리아 관객들이 '미학적으로 구축돼 있는데도 쉬웠다'는 반응을 해 줘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접근성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를 모티프로 삼아 모금산 역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일단 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찍자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중년의 남자를 떠올렸고, 내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정한 편이라 많이 여쭤봤지만, 이 역할이 아버지를 완전히 모델로 삼아 만든 캐릭터는 아니다. 설정들을 많이 가져왔다. 내가 몰랐던 것들, 의외의 지점들이 많아 반영할 수 있었다."

-극 중 스데반은 고향의 어른에게 '영화가 언제 개봉하냐'는 류의 질문을 듣는다. 감독을 준비하며 종종 겪었을 일 같다. 실제 고향 금산에서 영화를 찍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모금산의 집 등 주요 장면들은 물론이고, 드라이브 장면들까지 모두 충남 금산의 테두리 안에서만 찍었다. 군청의 군수님과 인연이 있어 부탁을 드렸다. 공간 대여에 큰 도움이 됐다.

아마 극 중 스데반이 영화 개봉 시기에 대해 질문받는 것 같은 경험은 나도 비슷하게 겪었을 것이다. 무조건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진 않았지만,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신인 감독들이 보통 영화를 찍을 때 고향 땅을 밟는 것 같다. 미국 감독들도 그렇더라. 자기 유년기의 자아가 생겼던 고향이라는 곳을 의미있게 담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올해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들 중 많은 작품들이 청소년 문제 혹은 성소수자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었는데, 그 경향과 또 다른 작품이라 신선하고 반가웠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평소 퀴어 영화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라 관심도 있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옛날 영화인 것 같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도 나오지 않나. 나름대로 양성평등지수를 만들어 조심스럽게, 생각을 많이 해가며 찍은 영화다. 그런데도 근대적인 인물이 나오게 됐다. 모금산은 모더니스트라 생각한다.

소재나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지만, 최대한 상투적인 것들을 많이 가져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자는 생각이 있었다. 나름대로 '막장 코드'도 있다.(웃음) 이런 영화에 그런 코드를 가져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문턱이 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데, '터칭(Touching)'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욕심이 있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음 작품 계획도 궁금하다.

"아직 계획은 없다. 코미디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고 싶다. 희비극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그런 방향의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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