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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Feel']선수 육성에 영혼 불태웠던 이광종 감독을 보내며…


향년 52세로 별세, "선수에게 믿음과 책임 동시에 주자"는 말 되새겨

[이성필기자] "지금은 선수들을 먼저 챙겨야 하니…"

2013년 1월 중순,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2부리그) 팀들의 제주도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서귀포로 내려가 여러 구단을 돌던 중이었다. 한 구단이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대한축구협회 호랑이 엠블럼을 단 사람들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해 6월 터키에서 예정된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출전을 앞뒀던 U-20 대표팀이었다. 그 달 초 U-20 대표팀은 서귀포시의 한 펜션에서 합숙 훈련을 하며 옥석 고르기 중이었다.

훈련 마무리 시점이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대한축구협회에 협조를 구하고 이광종 감독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선수단이 훈련을 마치고 호텔 사우나를 이용하기 위해 왔고 이 감독도 잠시 뒤 나타났다.

이 감독과는 초면이 아니었기에 편안하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선수들과 먼저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사우나로 들어갔다. 1시간여를 기다려 만난 이 감독은 선수들과 저녁도 먹고 회의를 해야 한다며 펜션 쪽으로 서둘러 떠났다. "내일 오전 훈련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긴 채.

당황스러웠지만 팀 사정이 우선이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 감독을 보냈다. 다음날 기자는 U-20 대표팀 대신 프로팀의 훈련장으로 향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팀 취재를 위한 출장이었기 때문에 일정상 U-20 대표팀 훈련장을 찾을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이후 이 감독과 U-20 대표팀은 본선에서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고, 이 감독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다.

당시 그를 보내고 만났던 한 프로팀 감독은 "이 감독은 축구계에서 다소 까칠한 지도자다. 특별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자기 길만 간다. 소위 제도권 지도자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러니 지도하는 선수 외에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언론에도 어지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년 10개월이 지난 2014년 11월,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한 달 후에야 단둘이 대면할 수 있었던 이 감독은 "(서귀포에서는)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어서 사절했다. 선수들에게 신경 쓰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린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시선에서 멀어지면 금방 균형이 깨진다"라며 잊고 있던 일을 돌이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말을 잘하는 유형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성과를 꾸미는 것도 하지 못했다. 인터뷰 요청 자체가 이 감독에게는 어색하고 부끄러웠다고 한다. 기자와도 다수의 매체 인터뷰를 거치고 거쳐 거의 끝물(?)에 만났다. 이광종 감독의 스타일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직사포식 화법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 축구를 벗어나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눴다.

기자는 이 감독에게 "프로팀에서 (감독님을) 탐낸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이 참 즐겁다. 내 역할은 잘 키워서 프로팀 주전을 하든 A대표팀을 가든 좋은 선수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행복하다는 느낌이다. 이 친구들 보는 맛에 내가 프로팀에 가지 않는다. 감독도 아니고 수석코치로 오라는데 그렇게 가면 이 아이들(제자)이 말을 듣겠어(?)"라며 껄껄 웃었다.

오히려 이 감독은 "나는 내 역할을 안다. A대표팀 사령탑은 쉽지 않은 꿈이겠지만 올림픽 대표팀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밖에서 유, 청소년 전문 지도자가 많아야 한다고 하는 데 동의한다. 유럽에 가면 흰머리 가득한 나이 많은 지도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던데 우리도 그래야 한다. 기회가 있다면 죽는 날까지 이(청소년) 연령대의 전문지도자가 되고 싶다"라고 품고 있는 야심을 전했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대해서는 전도사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축구협회에서 골든에이지를 도입해 권역별로 선수 발굴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선수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뇌부가 믿음과 책임을 동시에 주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해 성공하다는 믿음만 준다면 그 누구라도 박지성을, 기성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기다려줬으면 한다. 그런 풍토가 한국 축구계에 정착된다면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 도전해도 강해질 것"이라며 선수 육셩에 있어 신뢰와 인내를 강조했다.

좋은 선수 발굴에 미쳐 있었던 이 감독과는 그날이 마지막 맞대면이었다. 2007년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노장 지도자를 보면서 기자는 "우리에게도 저런 경륜의 유, 청소년 전문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00년 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 시작해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기성용(스완지시티),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1천여 명에 가까운 유망주를 다듬은 이 감독이 그런 가능성과 욕심을 꺼내 보인 것에 은근히 기뻤다.

바라던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이 감독은 안타깝게도 2015년 1월 태국 킹스컵에 참가했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긴급 귀국해 치료에 들어갔다. 문창진, 강상우(이상 포항 스틸러스) 등 이 감독의 애제자로 불렸던 이들도 그 대회가 마지막 인연이었다.

당시 포항 스틸러스의 전지훈련지 터키 안탈리아에서 만났던 문창진은 "감독님이 내색하지 않으시고 계시다가 한국으로 갑자기 귀국하셔서 무슨 일인가 했다. 우승컵도 들어올렸는데 함께 계시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이 감독이 병마와 만난 데 대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애제자 문창진은 늘 이 감독을 생각하며 리우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썼다. 투병 중인 이 감독에게 메달을 바치겠다며 이를 갈고 성금 모금에도 동참했다. 또 다른 애제자인 권창훈(수원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이 감독을 위해 의기투합했고 리우 올림픽 출전 전에도 이 감독에게 반드시 메달을 선물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한국 대표팀의 리우 올림픽 결과는 8강 탈락이었지만 이 감독은 "그래도 잘했다"라며 요양 중에도 제자를 격려했다고 한다.

제자 사랑이 남달랐던 이 감독은 26일 새벽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세상과 작별했다. 축구계에 비통한 날이었다. 유소년 발굴에 일인자였던 이 감독이 빨리 쾌유해 한국 유소년 시스템에 더 기여해주기를 바랐고 지난달까지도 많이 괜찮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결국 하늘은 이 감독을 데려갔다. 팀 훈련 중 별세 소식을 들은 문창진은 상경하고 싶었지만, 최진철 감독 사임과 최순호 감독 부임 등 포항의 복잡한 상황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라 속만 태웠다고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고인이 된 이광종 감독의 업적을 고려해 '축구인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장례 비용을 축구협회가 부담한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여러 며으이 애제자가 찾았다. 윤일록(FC서울), 심상민(서울 이랜드FC), 이창근(수원FC), 연제민, 노동건(이상 수원 삼성), 김동준, 황의조(이상 성남FC) 등 이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제자들이 애통함을 함께 했다. 노동건은 "어깨가 좋지 않아 치료를 받고서 소식을 들었다. 정말 충격이었다"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28일 경기가 있는 심상민도 구단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빈소를 지키며 "감독님이 회복하시리라고 믿었는데 마음이 아프다"라고 착잡한 심정을 다.

지도자들도 대거 빈소를 찾았다. 조덕제 수원FC 감독은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회택 전 축구협회 부회장과 최근 은퇴한 김병지, 김태영 전 울산 현대 코치, 설동식 제주 유나이티드 유소년팀 총감독 등도 조문했다. 김진수(호펜하임), 김승규(빗셀 고베), 김경중(도쿠시마), 이용재(교토상가) 등 해외에 있는 애제자들은 조화로 명복을 빌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애도의 글을 올려 추모했다.

27일에는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도 이 감독의 올림픽대표팀 후임 사령탑이었던 신태용 코치와 함께 조문한다. 다수 축구인도 대거 찾아 이 감독의 정신을 함께 되새긴다.

홀로 유, 청소년 인재 육성에 미쳤던 고인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향년 52세의 아직 할 일이 많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것이 그저 허망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 축구를 위해 남기고 간 것이 많은 이 감독이 하늘에서도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인재가 나올 수 있게 끝없는 축복을 내려주기를 기원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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