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양치기들' 박종환, 안정과 불안의 사이에서(인터뷰)


"안정감도 색깔도 있는 나만의 연기 하고파"

[권혜림기자] 말끔하게 정돈돼 화려한 포장에 싸인 꽃다발보다, 길가의 민들레가 아름답다 느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피어있는 모습 자체로 곧은 생명력을 뿜어내고, 섬세한 꽃잎의 결이 나름의 근사함을 완성하는 꽃이 민들레다. 꺾지 않고 보아야 예쁜 그 꽃은 저만의 아름다움으로 산과 들을 지킨다.

배우 박종환의 연기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다 문득 피어있는 들꽃이 떠올랐다.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다"는 그의 연기에선 벌판의 한가운데 혼자 서있는 이의 막막함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때로 진한 감흥으로 이어진다. 세련된 기술이 채울 법한 자리를, '그냥 거기 살고 있는 사람 같은' 현실감이 채운다. 영화 '양치기들'(감독 김진황,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FILMS))은 그런 박종환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또 한 편의 흥미로운 작품이다.

'양치기들'은 주목 받는 배우였지만 현재는 역할 대행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완주(박종환 분)의 이야기다. 어느날 살인사건의 가짜 목격자 역할을 의뢰 받은 완주는 금전적 대가에 이끌려 경찰을 찾아 거짓 진술을 하고, 이후 진실을 목도한 뒤 사건에 연루된 다른 인물들을 찾아간다.

박종환이 연기한 인물 완주는 사건의 한 가운데서 진실을 좇는 화자이자, 관객과 가장 가까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주인공이다. 완주에게 주어진 정보의 수준은 관객에게 주어진 것과 거의 같다. '양치기들'을 본 관객이라면, 그런 이유에서 박종환이라는 배우가 펼친 연기를 '연기같지 않게' 받아들였을 것도 같다. 주변에 있을 법한 한 남자의 사연을 훔쳐보는 기분도 든다.

박종환은 드라마 '프로듀사' '더러버' 등을 비롯해 영화 '검사외전' '프로젝트 패기' '오늘영화' '서울연애' 등에 출연한 배우다. 평범하디 평범하고, 때론 '찌질한' 얼굴의 극 중 완주는 그간 박종환이 자주 연기했던 인물들과 닮은 지점이 있는 캐릭터다. 그는 "찌질한 역들에 내 본연의 모습과 닮은 점이 많더라"며 "아직은 촬영 분위기에 쫓겨 연기할 때도 많고, 준비한 것보다는 말초적인 반응이 우연한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던 그는 때로 연기 수업을 청강하기도 하고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에서 작은 배역을 도맡기도 하면서 연기 재능을 발견해갔다. 정식 교육을 통해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은 되려 그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듯 보인다.

"그간 작업에선 연출자들이 저를 많이 배려해줬어요. '내가 이 배우를 택했다면 이 배우가 가진대로 가야겠다'고 생각해 준 것 같아요. 조금 더 전달되거나 혹은 덜 전달되는 부분까지도, '이 배우가 가진 것으로 가야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싶어요. '양치기들'의 김진황 감독도 그걸 빨리 캐치한 것 아닐까 싶고요. 기존에 캐스팅된 배우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어떤 단편 영화에 대신 들어가게 됐는데, '시나리오는 변하지 않았는데, (배우가 바뀌면서) 굉장히 다른 색깔의 영화가 됐다'고 하는 이야길 들었어요. 저는 감독이 가진 비전을 망치려 하는 배우는 아닌데, (제 색깔을) 너무 염두하거나 신경쓰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물론 감독만 괜찮다면 나를 인정하고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감독으로 하여금 배우의 색깔을 온전히 영화에 반영하도록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배우가 가진 호흡이 영화의 톤에 유연하게 녹아들 수 있어야 하고, 그에 앞서 배우가 내뱉는 호흡이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자평해달라고 부탁했다.

"제 연기는 독특하다기보다는, 안정감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배우들이 자가진단을 할 때는 자신의 발음, 발성, 화법을 두고 다른 배우들과 비교를 하잖아요. 그러면서 정보가 쌓이고 연기 노하우도 쌓이는데 그런 면에 있어 저는 별로 정보가 없는 셈이죠. 뭔가 축적되고 학습된 것을 해내야 하고 경쟁력을 검증받아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어 아무래도 안정감이 없다고 생각해요."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또 냉정한 평가였다. 그가 말한 '안정감 없음'이 바로 박종환만의 매력으로 이어진 것 아니겠냐는 물음에는 "어느 순간, 그게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그 단점을 메꾸고 나아가야 하는데, 이야기하면서도 고민이 든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답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불안과 안정이라는 상이한 개념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고민을 하면서 선배들의 면면을 살펴봤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송강호 선배의 연기를 보니 어느 기점 이후로 책임감과 안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또박 또박 대사가 들리는데도 본인만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당장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봤을 때, 버틸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안정감도 있고 특유의 색깔도 있는 그 사람만의 연기를요."

'양치기들'은 지난 2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이하 박종환과 일문일답

-작업에 임할 때 기대를 품지 않는다고 했는데, 주연을 맡은 장편인 이번 영화는 그러기 어려웠을 것도 같다.

"기대치를 낮게 갖고 출발하는 데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단점은 발전되는 느낌을 스스로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보단, '저번에 이런 것을 했고 이번에 이런 것을 했구나' 하는 정도만 느낀다. 장점으로는 내가 부담을 많이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뭘 하고 싶다고 제시하기보다 감독의 비전을 따르는 편이라 책임도 반으로 나누는 편이다."

-부담을 떨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워낙 긍정적인 성격인가?

"주연이라는 책임감을 갖거나, 뭔가를 약속하거나, 정해놓고 목표에 부응하려는 면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주연을 많이 한 것이 아닌 만큼, '양치기들'은 적응을 해보려 한 작품이다. 김진황 감독 역시 '주연이니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선 고민이 많다."

-인기 혹은 인지도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도 이야기했던데.

"배우라는 같은 직업의 사람들이 봤을 때 '반항기가 있다'고 생각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뭔가를 부정하는 이야기라기보다, 그래야 내가 중심을 잡고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나도 사람인데 뭔가 어느 순간 뭔가에 휘둘릴까 걱정이 된다. 설렘보단 겁이 조금 더 많은 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만약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 캐릭터의 이미지가 너무 크게 남게 된다면, 다른 것으로 그걸 덮는게 너무 어려운 것 같더라. 그런 면에 대한 겁이 난다. 최선을 다하는 건 중요하지만 한 가지 이미지로 자신을 각인시키는게 최선을 다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는게 꼭 그런 걸까? 자칫 그 역할로 한정되게 보였을 때는, 나 스스로를 그런 쪽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걸 잘 하나?' 싶어 계속 그걸 잘 하려 들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고민이 있다."

-연출을 전공했다가 배우로 활동 중이니, 전업을 한 셈인데.

"연출자로서 투자를 받아서 영화를 하겠다는 꿈은 안 꾼다. 습작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있다. 과거에 조금씩 재미나게 혼자 적어본 글들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습작을 하고 싶다. 연기에 대한 접근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우들을 많이 접했고 작업도 많이 했다. 동기, 선배들과 작업할 때 배우들에게 부탁하기 애매하거나 사정이 생겨 배우를 못 구한 배역이 있으면 나에게 옷을 갈아 입히더라.(웃음) '제 옷이 이상한가요?'하면 '잘 어울리는 옷이 있어'라며 다른 옷을 줬다. 그러면서 '배우보다 너무 열심히 연기하지 마'라고 하고.(웃음) 그런데, 아무리 스태프로 있다 갑자기 연기를 하게 된 상황이라 해도 내가 너무 스태프처럼 연기하면 상대 배우에게 예의가 아닐 수 있지 않나. 당시에도 그렇게 변명했다.(웃음)"

-연출과 연기를 겸했던 적도 있나?

"내가 연출을 할 때도 배우를 했다. 나는 인내심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배우에게 전달하고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거다.(웃음) 감독 겸 배우를 하면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장용으로는 좋지만.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묻는다. '너 이거 두 개(연출, 연기) 같이 했지?'"

-극 중 인물이 재능이 있지만 연기를 포기하게 되는 연극 배우인데,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완주는 연극 배우인데 나는 연극을 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배우라는 틀 안에서 봤을 때, 배우로 일이 잘 안 풀리니 입시 연기 코치로 일을 구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기더라. 가끔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일을 계속 하고 있는 네가 부럽다'고. 그 친구들도 금전적 문제로 일을 해야 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 아는 사람이 연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생각할 것도 같다. 완주가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들이 그런 면과 비슷했다."

-작품을 보면 '생활연기'라 불리는 유형의 퍼포먼스에 유독 강한 것 같다. '나오는대로' 연기하는 것이 박종환의 스타일인가.

"촬영할 때는 재밌게 하는 편은 아니다. '안정감 없는' 연기의 출발점은 불안인 것이다. 나에게는 연기 자체가 스트레스다.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니 나중에는 준비를 많이 안하게 되더라. 이미 내가 한다고 선택한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오니 그 상태에서 준비를 하려고 노력하면 과부하가 온다. 그러면 현장에서 못하게 되는 거다. 옆에서 그걸 본 감독님들은 편하게 하자고 이야기해준다.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자체로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시나리오를 받으면 감정 신을 비롯해 중요한 장면을 체크해두는데, 그 고비를 넘기면 좀 낫다."

-상업영화였던 '검사외전'에서 나름대로 비중 있는 배역(일명 '천식남')으로 등장했는데, 이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진 않았나?

"없었다. 장광 선생님을 발견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 보통 저런 식으로 알아보시는구나' 했다.(웃음)"

-차기작은 '원라인'(가제)이다.

"연기를 편하게 해본적이 없는데, 이번엔 편하게 했다. 주인공의 조력자인데 이제까진 그런 역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해보니, 조력자라는 역에는 어떤 성격들이 있는 것 같다. 이해심이 많아야 하고 주인공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이 편해지더라.(웃음) 이해심 많아야 할 사람을 연기하니 여유가 생긴달까. 촬영하면 보통 살이 빠지는데 처음 살이 쪘다. 이렇게 하는 것도 좋겠다고, 그리고 이렇게 해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촬영 현장도 좋았다. 서로 다른 모티프를 가지고 영화에 덤벼들었다. 누군가는 이미지 변화를 위해, 누구는 했던 것을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지금껏 맡은 것보다 '다마가 큰' 역에 도전하는 셈이었다. 서로 즐거워하고 배려한다는 면이 비슷했다."

-최근의 화두는 무엇인가?

"낚시다. 사람 관계라는 게, 굳이 서로 눈치를 보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사이가 있더라. 원래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작년부터 촬영 차 지방에 많이 다니며 낚시에 흥미를 갖게 됐다. 바닷가나 강에서 낚시를 하면 좋겠다 싶더라. (낚시를 좋아하는) '원라인'의 박병은 형을 만나 탄력이 붙었다.(웃음)"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2024 트레킹





alert

댓글 쓰기 제목 '양치기들' 박종환, 안정과 불안의 사이에서(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