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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나홍진 "영화는 영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인터뷰)


"황정민이 소비된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주길"

[권혜림기자] 개봉 직후 '곡성'(감독 나홍진, 제작 사이드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코리아))을 향해 명확히 갈린 관객들의 반응은 사실 관객몰이의 예고편이었다. 일각에선 언론 배급 시사 후 쏟아졌던 호평을 떠올리며 관객과 평단 반응 사이의 괴리를 짚었지만, '곡성'을 둘러싼 호오의 표출은 이내 관심의 상기로 이어졌다.

'대체 어떻길래', 혹은 '욕을 하더라도 보고 해야겠다'는 미관람자들의 반응은 영화의 흥행을 확신케 했다. 영화를 둘러싼 극찬과 혹평의 공존, 관객들의 평 속에서 하나씩 풀려나오는 영화 속 단서들이 관객몰이로 이어진 모습은 지난 2013년 개봉했던 '설국열차'(감독 봉준호)의 흥행 패턴과도 닮아있었다.

'곡성'은 마을에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 쿠니무라 준 등이 출연했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의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상영된 작품이다. 지난 12일 공식 개봉해 상영 중이다. 누적 관객수 50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꼭 영화와 관련한 온라인 게시판이 아니더라도, '곡성'의 개봉 후 SNS에선 영화를 둘러싼 궁금증과 이에 대한 해석을 담은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서사에 차용된 샤머니즘과 기독 신앙이 '곡성'의 저변에 어떤 장치로 작용했는지는 물론, 무명(천우희 분)의 정체, 종구(곽도원 분)의 운명, 일광(황정민 분)과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의 관계에 대한 추측이 쏟아졌다. 영화 내적인 요소들만으로 이토록 치열한 논쟁을 불러온 한국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을 반기고 즐길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닌, 6년의 시간을 '곡성'에 바친 나홍진 감독이다.

고백하건대 나 감독과의 인터뷰는 엄밀히 상호작용적 대화가 이뤄졌다고 자평하긴 어려운 시간이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곡성' 첫 관람 후 당시까지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의 답을 확인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란 관객의 것이 된다고 믿어왔지만, '곡성'을 관객인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엔 그 어느 영화를 소화할 때보다 감독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역순으로, 쏟아진 질문들에 대한 나홍진 감독의 마지막 답을 먼저 기록한다. 그는 관객을 '낚은' 수많은 장치들을 둘러싼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모든 설정은 영화의 긴장과 스릴, 혼돈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너무 크게 신경쓰고 고민하지 말라. 영화는 영화이니까."

이하 나홍진 감독과 일문일답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음.

-비, 꽃, 동물, 자연 등 상징으로 읽히는 장치들이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관객에게 인지되지는 않는 것들이지만, 계속 무언가를 쌓아나감으로써 나중에 큰 폭발력을 줄 수 있을 것들이라 생각했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특정한 동물이라든지, 그런 이미지들.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연달아 보여드리는, 그런 전형적인 것이 주는 힘도 대단하겠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는듯 하면서도 어떤 영향력을 계속 보여주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본다. 상징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어떤 초월적 존재를 표현함에 있어 인물의 배경 속에 담긴 살아있는 자연이 계속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그런 힘들로 발휘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영화가 이렇게 웃길 수 있다고는 상상 못 했다. 좀비처럼 변한 박춘배와 마을 남자들의 싸움 장면은 최고조였는데, 웃음을 의도한 연출이었나?

"의도다. 물론 모든 관객이 그렇게(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할 거라곤 보지 않았다. 전작은 '이 순간 이것을 100% 느끼게' 했어야 하는데, 이런 영화는 눈치 빠른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들의 어떤 퍼센테이지를 고려하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웃는 관객들의 퍼센테이지가 영화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극장과 상영시스템 등에 따라 리액션이 다를테니 환경 역시 중요할 것 같더라. 소리가 잘 안들리는 것, 그림이 어두운 것은 특히 민감한 부분인데 극장 안 공기가 어떤지는 환경에서도 좌지우지되지 않을까 싶다."

-쿠니무라 준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짧게 말하면 '너 무슨 이야기 하려 하니? 그래? 할게' 식의 답이었다. 일본으로 찾아봬서 저녁을 먹고 소주를 섞어 마시며 이야기를 잠깐 나눴는데 한다고 하시더라. 한일 간 문제도 있고 이슈가 있을 때라서 조심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는데, '남자의 딸래미가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런 이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드렸다.(웃음)"

-절벽에 매달린 외지인의 눈물과 배경의 쓸쓸한 음악, 그 정서가 혼란을 낳더라. 그 순간 관객에게 외지인이 어떻게 비춰지길 바란 것인가.

"외지인의 눈물 장면은 관객이 그동안 어떻게 그를 바라봤는지의 척도가 된다. 악인이라고 바라봤다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고, 외지인을 엄한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이면 '역시, 그렇게 흘러가네' 라고 생각할 뻔한 지점의 장면이 될 것이다. 예측했든 충격이었든 이 캐릭터가 소문 속의 그 인간이 아닐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순간이다. 종구의 모든 회의와 딸을 위한 긍정이 너무 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토박이의 폭력이 돼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외지인은 왜 하필 일본인이었나. 다른 인종이나 국가, 혹은 다른 대륙 출신 인물로 설정할 수도 있었는데. 외모 상으로 한국인과 비슷한 외지인을 원했다면 중국인도 있지 않나.

"주인공은 뭔가 '공격 당한다'고 생각한다. 침입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자꾸 들어오려 하고, 다가온다고 느낀다. 어느 순간 방패를 들고 강하게 방어하려 하는, 그러니까 '곡성'은 방어를 '하다 하다 하려는' 영화인데, 그 침입자의 공격이 은밀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잠입의 느낌이랄까? 세포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듯, 그런 느낌이길 원했다. 은밀한 느낌을 원했기 때문에 (외적인) 유사함이 재밌겠다 생각했다. 애시당초 흰 새들 안에 까만 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드러나지 않다가 나중에 점차 보여지는 그런 느낌으로. 말한대로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인데, 중국인들은 이미 너무 많이 계시더라. 시골 마을에 가면 중국 분들도 많고, 동남아 쪽에서 오신 분들도 이미 많다. 일본인이 드물더라.

쿠니무라 준 선배를 모시며, 그런 느낌이 좋았다. 연세도 있으시고 그냥 보고 있으면 촌부의 느낌이 있는데, 이 양반이 장난을 한 번 치기 시작하면 얼굴을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외지인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별 의미는 없다. 어떤 액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정민의 경우 연기도 좋았지만, 그를 일광 역에 캐스팅한 감독의 눈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사실 최근 황정민의 행보가 아쉽게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매우 뛰어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특정한 방향의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곡성'이 그걸 해소해준 것 같다.

"소비된다고,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다. 황정민이라는 분이 영화를 생각하는 태도는 정말 대단하다. 나는 그 오랜 세월 영화를 하면서 그런 태도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고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렇다. 알 파치노가 알 파치노의 모습을 보일 때 좋은 것처럼, (황정민도) 뭐가 됐든 그걸 보여주면 좋은 거다.

나는 황정민이 영화를 많이 찍어주면 좋겠다. 배우가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이유로 뭐라고 하는 건,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을 욕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나는 그 분의 선함이 너무 좋다. 연기,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다. 일광이라는 배역 자체가 사실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수락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인물이다. 수락해주시니 감사했다. 긴장도 많이 했고 다치기도, 고생도 많이 했다. 마냥 신나게만 찍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보면서는 '아, 역시'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정말 감사하고, 또 존경하는 분이다."

-전작들로 큰 임팩트를 남긴 감독으로서 높은 기대를 얻고 새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기대 때문은 아니고, 그냥 부담스럽다. 내가 이 영화를 알지 않나. 기자들의 반응은, 기자니까.(웃음)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너무 긴장됐다. 영화를 만드는 필름메이커에게 관객의 반응은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극장에서 관객이 보여주는 어떤 리액션 하나 하나가 모두 훌륭한 스승이 된다. 그 분들의 말씀은, 하나 하나 듣기 싫거나 괴롭다 해도 들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그분들께 다음엔 더 나은 작품으로 찾아뵐 수 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떨리는 것이고. 그 와중에도 누가 '쿠사리' 먹고 싶겠나. 칭찬 듣고 싶지.(웃음) 관객이 어떤 말을 해줄지가 늘 가장 떨리는 지점이다."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참고하는 시각이 있나?

"내 어머니의 반응이 척도다. 문학을 전공하셨고, 취향이 독특하시다. 추리 소설과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인데 '황해'를 보시고는 '야, 내가 보기에도 좀 세더라. (수위를) 낮춰야겠다'라고 하셨다.(웃음)"

-곽도원을 주연으로 처음 캐스팅했다는 점이 화제였는데.

"'황해' 때 함께 해 봤으니까. '저런 사람인데 왜 못하겠냐' 싶었다. (같은 카페의 윗층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중이던 곽도원을 가리켜) 오늘도 2시간 자고 와서 인터뷰 중인데 단지 예의를 갖춘다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에, 나 따위를 인터뷰해준다고?'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다. 피곤하든 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다. 항상 '홍진아, 한 번만 더 가자'라고 하고, 내가 '형, 다른 거 찍자'라고 하면 '한 번만 더 가자. 관객이 보는데. 한 번만 더 갈게'라고, 많이 그랬다.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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