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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강제 셧다운' 합헌, 법리적 판단 맞나?


그러자 유럽 대학생들은 깜짝 놀라면서 “왜 그런 학대를 그냥 당하고 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을 잡아두는 건 인권 침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최소한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폭력이란 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그 얘길 들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청소년이나 학생도 독립된 인격체’란 인식을 자연스럽게 하는 그들의 사고 방식도 많이 부러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물론 우리와 유럽은 교육제도도 다르고, 입시시스템도 큰 차이가 있다. 서로 문화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유럽 대학생들의 말 역시 그 쪽 관점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참 엉뚱하다. 헌법재판소가 ‘강제적 셧다운제’에 대해 합헌 판결을 한 날. 난 왜 몇 년 전 누군가에게 들은 유럽 대학생 얘기가 떠올랐을까? 아마도 청소년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난 강제적 셧다운제는 절대 합헌 판결이 나올 수 없을 것으로 봤다. '만인은 법앞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땐 나이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내가 ‘강제적 셧다운제’에 합헌 판결이 나왔단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건 그 때문이었다.

합헌 판결 이유를 알기 위해 선고문을 읽어봤다. 선고 취지는 대충 이랬다.

우선 강제적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 및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려는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다. “16세 미만에게 일정 시간대 게임을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 보기 어렵다”는 부분도 있었다. 헌재는 또 "인터넷 게임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장시간 이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셧다운제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한 마디로 “(강제적 셧다운제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직업 선택의 자유나 행동의 자유, 부모 자녀 교육권 침해라 볼 수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잘 아는 대로 헌재는 헌법을 존립 기반으로 하는 기관이다. 순수한 사법기관은 아니지만, 최소한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법률에 대해서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다.

그런 기관이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행복추구권’을 강제로 막는 법률에 대해 어떻게 ‘합헌’ 판결을 할 수 있었을까? 선고문만으론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보호하는 덴 서툴고, 규제만 잘 하는 어른들은 아닌지?

셧다운제를 주도한 한 의원은 “부모의 심정으로”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적 있다. 법 취지엔 공감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 발언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층분히 있을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법은 다르다. ‘부모의 심정’이나 ‘정치적 고려’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헌법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법정신이 최우선 잣대가 돼야 한다. 그게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헌재의 이번 판결은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그 부분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난 서두에서 한국 고교생과 유럽 대학생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화두로 삼은 건 ‘행복추구권’이나 ‘자율권’ 같은 것들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는 인식. 그 마음이 평등한 인격권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헌재의 이번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행여 이번 판결에도 ‘부모의 심정’이나, ‘게임=사회악’이란 엉뚱한 법 감정이 개입된 건 아닐까, 란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많은 학생들을 잃었다. 수 많은 어른들이 있었지만, 학생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한 주 동안 무력감과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에 대해 “보호하는 덴 서툴고 규제하는 덴 능한 사람들”이란 인식을 가질 수도 있겠단 생각.

물론 세월호 참사와 강제적 셧다운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점 잘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두 사건이 오버랩된다. ‘보호하진 못하면서 규제만 하는 어른’들이란 되뇌임과 함께.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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