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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방출 선수' 남궁훈의 '무모한(?)' ML 도전


한국 프로야구 2군에서 방출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 이야기다.

두산 베어스 2군에서 지난해 9월 방출된 투수 남궁훈(27)이 그 주인공이다. 두산 팬들에게조차 생소한 이 선수, 과연 무슨 배짱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것일까. 애리조나 윈터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23일 출국한 남궁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니코스키 보며 꿈 키워

남궁훈은 상무에서 제대한 뒤 2008년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3년 동안 2군에서 기량을 키우며 1군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꿨지만 느린 볼 스피드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다. 우완 스리쿼터형 투수인 남궁훈은 최구 구속이 135km에 불과하다.

2군에 있으면서도 그는 미국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낮에만 경기가 있는 2군 리그. 저녁에는 영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두산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남궁훈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 안 나가보면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산에 있던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미국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히메네스, 왈론드 등은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자기네들도 바쁜지라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적극적으로 남궁훈에게 조언하고 나선 선수가 있었다. 2009년 두산에서 한국 무대에 데뷔해 지난해에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크리스 니코스키(38)다.

니코스키는 미국 무대에서 뛰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줬다. 필요하다면 뛸 수 있는 팀을 알아봐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궁훈의 에이전트를 자처한 셈이다.

남궁훈은 니코스키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를 거치며 야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 자극도 받았다. 자신도 몸만 아프지 않다면 니코스키처럼 마흔살이 되어서도 해외에서 야구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남궁훈의 롤 모델이 된 니코스키는 남궁훈에게 애리조나 윈터리그 참가를 권유했다.

◆윈터리그 통해 독립리그 진출 노려

남궁훈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치르는 첫 관문은 애리조나 윈터리그.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자비를 내고 참가하는 대회다. 선수들이 임시로 팀을 나눠 2월 한 달 동안 리그를 치른다.

윈터리그 기간 동안 각 팀에서 파견 나온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면 소속팀을 가질 수 있다. 보통은 독립리그 팀들과 계약을 맺는다. 일본의 '너클공주'로 유명한 여자 투수 요시다 에리(19)도 윈터리그를 통해 독립리그에 진출했다.

독립리그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리그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젊은 선수나 왕년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이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다. '한국산 핵잠수함' 김병현(32)도 한때 독립리그에서 재기를 노렸고, 두산 출신 정재훈(30)도 3년째 뛰고 있다.

남궁훈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윈터리그에서 기량을 인정받고 독립리그에 입성하는 것이다. 독립리그 팀과 계약을 해야 마이너리그에라도 진출할 수있는 기회가 생긴다.

볼이 빠르지 않은 남궁훈은 변화구 위주의 맞혀잡는 스타일이다. 변화구 하나만은 두산 2군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윈터리그에서 만나게 될 중남미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스타일이다. 그만큼 변화구만 잘 던지면 이들을 속일 확률도 크다. 두산의 김진욱 코치도 "유인구만 잘 던져도 어느 정도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물론 남궁훈 본인도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도전이 실패하면 한 단계 아래, 또 안되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겠다는 각오다. 어찌보면 메이저리그에 꼭 진출하겠다는 의지보다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더욱 큰 남궁훈이다.

◆김진욱 코치가 말하는 남궁훈

남궁훈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야구판에 있는,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반대했다. 한국에서 몸 만들고 다른 팀을 알아보는게 낫지 않겠냐고들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준 한 사람이 있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다.

김진욱 코치는 남궁훈에 대해 "굉장히 성실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기량이나 신체 조건은 좋지만 순발력이 부족하다보니 구속이 안나왔고, 구속을 무리해서 늘리려다보니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이다.

왜 미국 진출을 말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진욱 코치는 "대신 갈 수 있다면 내가 가고 싶다"며 "도전하고 싶어도 못하는 나이가 있다. 나도 미국에서 뛰어보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남궁) 훈이는 워낙 열심히 하는 선수다. 잘 하겠지만 미국에서 야구로 성공할 확률은 사실 희박하다고 본다. 찬성하고 격려했던 이유는 야구 외적인 공부를 많이 하고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도전과 경험이 나중에 지도자나 구단 프런트로 활약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야구 선배의 조언이다.

◆3대째 야구 집안···후배들에게 길잡이 되고 싶어

남궁훈은 3대째 야구 선수를 하고 있는 야구 집안이다. 남궁훈의 작은 할아버지 남궁택경(1975년 작고)은 언더핸드 투수로서 해병대 의장대를 거쳐 철도청 야구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철도청 코치, 마산고 감독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아버지 남궁성우(51)는 삼촌과 같은 언드핸드 투수로 1978년 홍익회 야구단에 입단했다. 이홍범(SK) 코치, 유지훤(전 한화) 코치 등이 팀 동료였다.

남궁훈까지 3대째 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남궁훈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해 '야구 3대' 가문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야구를 잘 해서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 남궁훈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후배들의 길잡이가 되고 싶어서다.

"나중에 저같이 (미국에) 가고 싶은 선수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런 선수들에게 제가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하면 혼자서 기분도 좋아지고요. 내가 길을 뚫어놓을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저는 니코스키에게 많이 배웠지만 후배들은 저같은 사람한테 한국말로 배우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웃음)"

남궁훈은 스파이크와 글러브, 유니폼만 달랑 챙겨들고 태평양을 건넜다. 에이전트도 없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저 야구가 좋아서, 야구가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확률 낮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설렘은 없다. 두려움만 100%다. 성공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다.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시작된 남궁훈의 무모하고도 멋진 도전이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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