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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NOW 평창]윤성빈의 金, 日 나가노에서 나왔다면?


분산 개최론 홍역, 어렵게 단독 유지…정치권 사후활용 같이 고민해야

[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새로운 스켈레톤의 황제' 윤성빈(24, 강원도청)의 대관식이 열린 16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중이 모였습니다. 윤성빈의 금메달을 보기 위해, 또는 슬라이딩 센터 주행로 곳곳에서 주행하는 선수들의 썰매를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한 인파였습니다. 관중 수 5천명이 넘었다는 것이 경기장 운영진 측의 설명입니다.

윤성빈이 출발점을 지나 도착점에 등장하는 순간 근처에 모여 있던 관중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동계스포츠 사상 첫 썰매 종목의 금메달이 터진 순간을 직접 목격한 것이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죠.

여기저기서 "성빈아 잘했다", "멋있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금메달만 기다렸던 윤성빈의 모친은 경기 후 만나 아들을 꽉 안아줬습니다. 고생했던 시절을 모두 털어내는 금메달이었습니다.

지금이이야 지나간 상황이지만 윤성빈은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일본 나가노(1998년) 트랙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지난 2014년 12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모나코에서 열린 총회에서 느닷없이 '분산 개최'론을 들고나옵니다.

'어젠다 2020'을 통과시키면서 올림픽 분산 개최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당장 첫 동계올림픽인 평창부터 시도해보자는 뉘앙스의 말이 나오기도 했죠. 표면적인 분산 개최 이유는 한 국가에서 올림픽을 유치해 대회가 끝나면 적자에 시달리는 일들을 막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동을 겪고 사후 관리 등 걱정거리가 속출한 상황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는 현재의 과정을 본다면 바흐 위원장의 논리가 아주 많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2022 동계올림픽 유지 신청을 했던 노르웨이 오슬로가 포기하면서 중국의 베이징,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좁혀졌고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베이징이 개최권을 가져옵니다. 돈이 있어야 올림픽 유치도 가능하다는 것을 베이징이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국내 시민사회단체도 분산개최를 촉구했지만 강원도의 반발 등 여론이 악화하고 일본도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며 무마됐지만, 고민은 상존합니다. 만약 나가노와 분산 개최가 됐다면 스켈레톤 등 썰매 종목은 평창에 없었을 겁니다. 모양새만 따지면 아쉬웠겠지만 국민적인 열기를 피부로 체험하며 선수들이 얻은 자산은 숫자로 세기 어려운 것입니다.

당시 IOC와 평창올림픽조직위 등 관련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고위 관계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바흐 위원장의 진위가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슬라이딩센터의 공정률이 25% 수준었고 건립 비용도 계속 늘었다. 특수한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한 대안이 확실히 나오지 않아 더 속내가 복잡했다"고 전합니다.

슬라이딩센터의 대중성이 다른 종목을 치르는 경기장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 15곳에만 있는 특수한 시설입니다. 평창 트랙의 경우 아시아에 있다보니 유럽이나 북미 선수들이 장비 운반 등의 문제로 쉽게 찾기 힘든 시설 중에 하나입니다.

큰 대회가 아니면 평소 가동률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나 강원도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수익 창출 시설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도 이런 고민은 상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슬라이딩센터의 존재 이유가 한 가지 확실하게 나왔습니다. 바로 윤성빈의 금메달입니다. 윤성빈은 "올림픽은 정말 집 같은 이 트랙에서 하는 것이다. 해왔던 대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부담감은 없더라"며 제대로 즐겼다고 합니다.

윤성빈과 함께 나서 6위를 차지했던 김지수(24, 성결대)의 말은 더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윤)성빈이가 시작하던 때에는 고생하던 환경이었다. 나는 그나마 나은 환경에서 누렸다"고 합니다.

덧붙여 "앞으로 더 많은 선수가 나왔으면 한다"고 기대하더군요. 이는 윤성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스켈레톤이 접하기 까다로운 종목이다. 우선 잘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윤성빈 키즈'의 탄생을 기대했습니다.

키즈가 많아지면 그만큼 시설 활용의 기회도 많아지겠죠. '저변 확대'가 된다면 생활체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활용 가능하겠고요. 스켈레톤, 루지, 봅슬레이 등 종목이 적은 것도 아니니 중단됐던 연구가 폐회 이후에는 필요해 보입니다.

마침, 이날 슬라이딩센터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보였습니다. 체육 정책에 힘을 줄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박 의원의 경우 아무나 접근하기 힘든 구역에서 체육 정책 수장인 도 장관과 함께 윤성빈 선수를 격려하더군요. 다른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겠지요.

취재진도 짧게는 20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밖에서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윤성빈 선수를 기다려 그의 고생담을 들었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팬들도 추위를 견디며 윤성빈의 이름을 계속 부르던데 말이죠. 그만큼 권력의 힘은 강한 모양입니다. 어떤 종류의 OIAC(올림픽 등록카드·Olympic Identity and Accreditation Card)를 받았는지 확인을 해보려고 했지만, 대회조직위나 대한체육회 모두 침묵하더군요.

오히려 윤성빈의 금메달을 현장에서 목격했으니 스포츠의 힘을 확실하게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축전을 보낼 정도로 설날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주는 기쁨은 컸으니 말이죠. 사후 활용에 대해 고민을 하는 체육계의 고민을 올림픽이 끝나면 함께 풀어가면 어떨까 싶네요. 사진만 찍고 추억으로만 남기지 마시고요.

수영 박태환의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피겨 여왕' 김연아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이후 탄생한 '키즈'들에 대해 정치권이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신뢰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입니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정부 지원이 줄어들까 걱정"이라는 봅슬레이·스켈레톤 관계자들의 걱정이 걱정으로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조이뉴스24 평창=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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