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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시인의 사랑', 배우로서 어려운 숙제였다"(인터뷰)


"작품 선택 이유? 시나리오가 주는 정서가 너무 좋았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촬영할 때 첫 테이크에 끝났으면 좋겠어요. 첫 감정이 담겼으면 좋겠어요. 연기할 때도 가급적 리허설을 안 하는 방향으로 감독님을 꼬시죠.(웃음) 리허설을 하더라도 일부러 감정을 섞지 않으려고 해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연기로 다시 내뱉는다. 양익준의 연기는 그래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영화 '똥파리'(2009) 속 상훈의 거친 모습 때문이 아니다. 영화 '시인의 사랑'에서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정자마저도 없는 마흔 살, 어떻게 보면 지질한 택기를 연기해도 강렬하다.

지난 11일 서울 을지로의 한 카페에서 '시인의 사랑'(감독 김양희, 제작 (주)영화사진· 미인픽쳐스) 개봉을 앞둔 양익준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시인의 사랑'은 인생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랑을 맞닥뜨린 시인 택기(양익준 분), 그의 아내 강순 (전혜진 분) 그리고 한 소년 세윤(정가람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만만하게 봤어요."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솔직하게 밝혔다. "대본을 처음에 보고 되게 오만하게 '다른 작품에 비해 쉽겠구나' 느꼈다. 공감도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너무 어려웠다"며 "시나리오는 쉬워보였지만 연기로 표현하려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어려운 숙제였다"고 연기한 소회를 밝혔다.

양익준이 '시인의 사랑'에 끌린 이유 중 하나는 '평범함'이다. 작품 배경과 캐릭터가 특별하지 않아서 더 끌렸다. 영화는 제주도의 평범한 한 동네에서 촬영됐다. 양익준은 "시나리오가 주는 정서가 너무 좋았다.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동네, 환경들이 특이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며 "이들은 특별하지 않은데 특별한 관계를 맺어간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시인의 사랑'에서 시인과 소년 간의 관계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축이다. 앞서 알려졌듯, 시인과 소년 사이에 교감이 일어난다. 하지만 퀴어영화라고 확정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김양희 감독 또한 지난 5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해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연기한 양익준의 생각이 궁금했다.

"시인이 좋아한 게 소년이에요. 시인이 소년을 좋아한 게 아니라요. 그냥 대상을 좋아하게 되는 지점, 순간들을 경험한 거죠. 어떤 존재를 사랑하다보면 이성이든, 동물이든, 동성이든 상관 없는 거요. 바람이 사랑스러워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택기도 다양한 상황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 한 명일 수 있죠. 저는 택기가 동성 소년에게 가질 수 있는 정서에 많이 공감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흘려보낼 수도 있는 감정이에요. 잘 모르겠지만, 그 감정 때문에 '대상에 손을 대보느냐, 안 대보느냐'의 문제죠."

택기가 이런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시인이라는 그의 직업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양익준은 "영화에서 시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분명 있다. 사랑과 사람에 대한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 영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가 '눈이 안 보이는 순간부터 세상이 보인다'고 하더라.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약간 구름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에겐 그냥 구름을 걷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앞서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에서 함께 연기 호흡을 펼친 배우 전혜진에 대해 "의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양익준은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30대 초중반 때 깨달았다. 주눅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전혜진 배우는 한 살 많은 누나 느낌이다. '야'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누나.(웃음) 전혜진 배우는 안정감이 있다. 당당하고 단단하다. 비유하자면, 잘 여문 사람 같다"고 말했다.

양익준은 실제 택기와 비슷한 지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혼재돼 있다.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저를 보고 양익준을 판단할 수 없다. 어떤 대상을 만나느냐,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너무 다르다. 다른 공간에선 화를 내는 제 모습도, 괴로하는 제 모습도 있을 수 있다. 저도 저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을 볼 정도로 모든 것들을 쏟아내는 택기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실제 양익준에게도 있었다.

"'똥파리'를 찍을 때 여기에 다 쏟아붓지 않고 다 표현하지 않는다면, 미적지근하게 표현한다면 저는 끝나지 않은 고민을 또 해야 했어요. 그래서 그런 답답한 마음이 생기지 생기지 않도록 다 넣었어요. 가능하면 그 안에서 끝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상상력을 제한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관람등급에 절대 신경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죠. 안 그래도 첫 연출작을 찍으면서 많이 느꼈어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예산과 같은 다른 여러가지가 신경 쓰이다 보니 시나리오를 쓸 때 이게 돈으로 연결되기도 하더라고요. 자꾸 딴 생각이 들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양익준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극 중에 나오는 강순이, 소년 세윤이, 택기 모두 아름답다. 연애할 때 너무 막장까지 가고 그래서 지질하지만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질함도 겪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생의 다음 챕터를 넘어가겠나"라고 말했다.

양익준은 "사랑도 많이 해봐야 한다. 줄기차게 해봐야 한다"고 웃으며 "연애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스물 아홉 때쯤이다. 연애를 늦게 했다. 제가 (감독으로서) 만든 남성 캐릭터들은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다. 연애를 늦게하고 그 전까지 사랑을 못해봐서 그렇다. 스물 아홉살 때부터 조금씩 변한 것 같다"고 덧붙여 고백했다.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양익준은 "영화는 끝나지만 그 뒤에 살아갈 택기, 강순, 소년 세윤 모두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다들 엄청 건강해지는 과정일 수 있다. 가지가 잘 뻗어나기 위해선 나무 몸통이 튼튼해져야 한다. '시인의 사랑'은 택기의 나무 몸통이 튼튼해져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영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명했다.

한편, '시인의 사랑'은 14일(오늘) 개봉한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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