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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군함도'가 '국뽕'을 피하는 방법


각자의 이유로 뭉쳐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의 이야기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1945년 일제강점기, 경성 호텔의 악단장 강옥(황정민 분)은 어린 딸 소희(김수안 분)와 연회 무대를 꾸미며 살아간다. 악기를 다루는 재주에 더해 빛나는 처세술까지 갖춘 강옥은 타고난 노래와 춤 솜씨를 지닌 딸 소희와 최고의 파트너로 무대를 누빈다. 하지만 강옥은 딸과 함께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말에 속아 배를 타고 '지옥섬' 군함도에 떨어지고 만다. 어떻게든 딸을 데리고 무사히 이 곳을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또 다른 주인공 칠성(소지섭 분)은 종로 일대를 평정했던 경성 최고의 주먹이다. 패거리와 함께 군함도로 끌려온 칠성은 일본인만큼이나 악랄하게 조선인을 관리하는 종구(김민재 분)의 행태에 불만을 품은 동시에, 자신이 그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저 살아서 이 곳을 나가겠다는 의지로 노무계의 지시를 따르던 칠성은 일제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온 말년(이정현 분)을 알게 된다.

말년의 삶은 매 순간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 다시 일본에서 말로 다 못할 절망을 견뎌왔다. 위안부로 강제 징용돼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잃었고, 끔찍하게 살육되는 동료의 모습도 봤다. 말년을 살게 만든 건 남다른 기개였다. 일련의 고난 속에서 말년은 일본인 뿐 아니라 조선인 남성들 역시 식민지민이자 여성인 자신의 몸을 착취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체득했다.

그리고, 모두가 벗어나려 하는 이 섬에 몰래 잠입한 무영(송중기 분)이 있다.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인 그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를 구출하라는 작전을 지시 받고 군함도에 들어온다. 일본 전역에 미국의 폭격이 시작되고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군함도에서 조선인에게 저지른 모든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 한다. 이를 눈치 챈 무영은 강옥, 칠성, 말년을 비롯한 조선인 모두와 군함도를 빠져나가기로 한다.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열거한 주요 인물들의 성격에서 드러난다. 이들 중 무영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뜨거운 애국심'이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탈출의 동기로 삼지 않는다. 자유의지의 박탈에 대한 절망, 비인간적 노동 환경에 대한 분노, 가족에 대한 사랑, 생에 대한 열망 등이 이들로 하여금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하게 만드는 이유다.

일제 강점기 군함도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는 민족주의적 메시지로 서사를 결론짓는 이데올로기 영화가 될 것이란 무성한 추측을 얻었다. 영화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영화의 제작보고회 당시 "'국뽕 영화'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도 이를 의식한 발언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군함도'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독립 투사로 각성하거나 애써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 모두가 거대한 이념을 품고 사활을 거는 극적인 드라마를 포기하고도, 류승완 감독은 영리하게 자신의 할 말을 한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 간의 연대, 비극적 역사의 가운데서도 아이의 얼굴로 피어나는 희망 같은 것들을 가만히 비춘다. '일본 대 한국' '제국주의의 폭압 대 독립'의 구도가 아닌, '무고하고 약한 식민지 조선인들 대 권력을 가진 모든 자들'의 대립이 영화가 중심으로 삼는 갈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제에 부역한 조선인들의 손으로 타국에 보내진 말년의 대사, 영웅적으로 비춰졌던 특정 인물의 반동은 이런 해석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예고 영상에 짧게 삽입된 것만으로 화제가 됐던 일장기를 찢는 장면 역시 영화 본편을 본 뒤엔 조금 다르게 풀이된다. 영화 속 일장기를 찢는 이는 영화 전반부까지 가장 기회주의적이면서도 탈 이념적인 인물로 비춰지는 캐릭터다. 그가 일장기를 찢는 이유 역시 반일 의지보단 실용에 가깝다.

'군함도'는 올해 여름 최대 규모의 대작이다. 영화의 초입부터 거대한 스펙터클이 스크린을 채운다. 거센 파도의 한 가운데, 괴이한 이미지로 우뚝 선 군함도의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갱도 안을 재현한 장면들도 눈길을 붙잡는다. 후반부 초를 들고 결연한 표정을 짓는 인물들의 모습은 지난 겨울 대한민국 광장의 촛불을 연상시킨다. 관객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길 시퀀스다.

충무로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황정민에 더해 톱스타 송중기와 소지섭, 농익은 연기력을 자랑해온 이정현 등 화려한 캐스팅도 볼거리다. KBS 2TV '태양의 후예'에 이어 올곧은 군인의 모습을 그린 송중기, 완벽한 몸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에 이어 속도감 넘치는 액션까지 수 차례 소화한 소지섭은 '군함도'로 스크린 활약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이정현은 묵직하게 극의 중심을 잡는다. 말년의 얼굴에서 어느 순간 20년 전 ’꽃잎'의 소녀를 발견하는 관객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주요 인물을 연기한 이들 중 누구보다 빼어난 존재감을 펼친 배우가 소희 역 김수안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영화의 그 어떤 장면에도 상상하지 못한 유연함을 불어넣는 진기를 발휘한다. 황정민 역시 김수안과 함께 한 매 장면에서 최고의 콤비 파트너를 만난듯 불꽃 튀게 연기한다.

영화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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