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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NOW 평창]"죄송하다" 대신 "최선 다했다"로의 변화


금메달 아니면 외면했던 문화에서 벗어나, 참가에도 의미 부여 중

[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울지마! 울지마!"

관중석에서는 위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누구나 기대했던 '빙속 여제' 이상화(29, 스포츠토토)의 메달 색깔이 은메달로 결정되는 순간 잠깐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습니다.

19일 강원도 강릉 오벌(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펼쳐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풍경입니다. 이상화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상화가 우는 순간 일부 관중도 눈물을 훔치더군요.

올림픽 3연패에 대한 기대감이 평창 올림픽 준비 내내 그를 감쌌습니다. 3연패 대신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추겠지만 '우리나라 평창'에서 하는 올림픽이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빙판 위에서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오랜 경쟁자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기록이 명확하게 나오는데 이상화가 무슨 방법으로 기록을 바꿀까요.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쳤으니 눈물이 쏟아질 수 밖에요. 그래서 "울지 말라"는 관중과 국민들의 위로가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면서 묘한 분위기 변화를 느낍니다. 기자가 처음으로 취재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메달, 그중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던 선수들은 한결같이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국민들께 죄송합니다"는 말을 드라마 대사처럼 반복했습니다.

선수들의 소감을 듣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성과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 분위기, 엘리트 스포츠로 육성된 선수들의 일등주의 때문인지 은메달, 동메달은 물론 올림픽 참가 자체가 존경과 축하를 받는 다른 나라들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이더군요.

하긴 더 오래전 과거로 가면 현재 지도자를 하는 국가대표 출신 감독, 코치들은 뭐가 그렇게 죄송한지 은메달, 동메달을 따도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죄송하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는 류의 소감을 남기면서요.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국내 스포츠 문화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관심받는 문화 말이죠. 특히 이번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더 느끼고 있습니다. 노력 것 국내 선발전 또는 국제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 온 선수들이 많은 관중 앞에서 있는 힘껏 실력을 보여주며 감격하는 것 말이죠. 자연스럽게 취재 과정에서 일등은 물론 노메달로 올림픽을 마감하는 선수들의 사연도 전달하려 애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상화의 레이스 후 쏟아지는 눈물에 국민들이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취재진 앞으로 온 이상화는 눈물 대신 속이 후련하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는 게 영광이었다. 500m 경기가 끝나면서 부담을 내려놨다. 나에 대한 선물이라는 느낌에 눈물이 나더라. 올림픽을 보면서 나와 고다이라가 함께 달려왔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것에 눈물이 많이 났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에 대한 선물'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번 대회에 이상화가 나서는 진심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미 두 번이나 올림픽을 제패한 '여제'의 여유 있는 마음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겠지만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승부에는 집착했지만 냉엄한 결과 앞에서는 현실을 인정했으니까요.

이틀 전(1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서이라(26, 화성시청)도 이상화와 비슷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 역시 "올림픽은 축제라고 하지 않나. 성적에 상관없이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만족스럽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축제를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고 합니다. 그 역시 넘어지고도 최선을 다했고 동메달이라는 선물을 얻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선수들의 승리욕이 너무 떨어져서 패배에 빠르게 승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승부의 세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지적 말이죠. 그렇지만, 가까이에서 본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더 잘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고 취재진 앞에서 눈물도 보였습니다.

오늘의 실패가 미래에도 똑같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옆 나라 일본의 고다이라가 보여줬습니다. 2010 밴쿠버, 2014 소치 노메달이 8년 만에 금빛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죠. 올림픽이 이번 대회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기에 따라 성장도 가능하고요.

선수들은 변하고 있고 이들을 지켜보는 문화도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험한 말로 있는 가능성마저 눌러버리지 않는 문화 조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듣지 않아서, 전달하지 않아서 서로 기분이 좋은 평창 올림픽입니다.

조이뉴스24 강릉=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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