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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신태용, '비주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대표팀 코치 역할로 한국 축구 분위기 확 바꿔

[최용재기자] 신태용. 그는 K리그 스타였다.

선수시절 성남의 신태용은 최고의 '별'이었다. 13시즌 동안 오직 성남 한 팀에서 뛰면서 K리그 우승컵을 6번이나 들어 올렸다. 그리고 K리그 최초로 2차례의 MVP를 수상했다. 또 최초로 60(골)-6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K리그 통산 99골68도움을 기록했고, 68도움은 현재까지도 최다 도움 기록으로 남아 있다. K리그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록을 품고 있는 최고의 선수였다.

감독 시절에도 화려함의 연속이었다. 감독 생활 역시 성남에서 했다. 2009년 성남 감독 부임 첫 해 K리그 준우승과 FA컵 준우승을 일궈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2011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을 거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신태용이었다.

K리그 최고의 스타, K리그에서 인정받은 감독, 하지만 신태용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는 아니었다. 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받은 지도자도 아니었다.

K리그에서 수많은 영광과 기록을 세웠지만 신태용은 언제나 커다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 커다란 벽, 바로 '국가대표'였다. K리그에서는 화려했지만 국가대표 신태용은 초라했다. 선수 시절 A매치 23경기 출전해 3골을 넣은 것이 전부다. 특히 축구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빠지지 않는 '월드컵'. 이 월드컵에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또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로 일한 적도 없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든 업적을 거의 성남에서만 이룩한 것이기에, 성남을 벗어난 신태용을 본 적이 없기에, 지도자 신태용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 성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신태용이라는 카드가 제대로 먹힐지에도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40대 젊은 감독 열풍이 불고, 이들이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하마평에 오를 때도 신태용 감독의 이름은 없었다. 월드컵 대표 출신인 스타 감독들에게만 이목이 집중됐다. 은연중에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는 신태용 감독은 평가절하 당해야만 했다. 이름값에 밀려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소위 한국 축구 '비주류'의 설움이었다. K리그의 틀이라는 한계를 가진, 월드컵 경험이 없는 비주류의 한이었다.

이런 비주류 지도자가 가장 많은 조명이 비추는, 주류만이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모두의 주목 속에 전면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주류가 될 수 있었다. 그 순간, 신태용은 강렬했다. 비주류로 살아온 그동안의 설움과 한을 내뱉는 것처럼 강렬한 모습이었다.

축구대표팀 새 코치로 선임된 신태용 코치. 지도자로서 대표팀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차기 대표팀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신태용 코치는 이번 9월 A매치 2연전을 감독 대행의 신분으로 치러야만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참패로 인한 침체된 국내 축구 분위기, 정식 감독이 없는 상황, 그리고 대표팀을 한 번도 지도해보지 못한 신태용 코치의 경험 부족까지. 여러 정황상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없는 A매치 2연전이었다. 정식 감독이 오기 전 아무 의미 없이 치러지는 경기 정도로 생각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편견이었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짧은 생각이었다. 비주류 신태용 코치는 이전까지 한국 축구에 군림해왔던 주류만큼, 아니 주류 그 이상으로 강렬한 모습을 보였다. 성남을 제외한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의아해질 정도로, 신태용 코치가 이끈 한국대표팀은 인상적이었다.

공격축구를 선언한 베네수엘라전에서 3-1 역전승, 파격적 전술로 나선 우루과이전 0-1 패배. 신태용 코치가 이끌었던 2경기다. 이 두 경기에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베네수엘라전 대승이라는 결과도 좋았지만 패배했더라도 우루과이전 내용도 좋았다. 신태용 코치는 2연전에서 결과와 내용 모두를 만족시켰다. 여기에 다양한 전술 운용과 베테랑 선수들의 재발견 등 긍정적 요소가 가미됐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성과는 한국 축구를, 국가대표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에 다시 희망을 안겼다는 것이다. 침체된 한국 축구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다시 열정을 심어준 것이다. 신태용 코치가 말했듯이 축구팬들에게 다시 한국 축구의 재미를 선사했다. 등 돌린 국민들을 다시 축구장으로 불러 모았다. 실망과 분노로만 가득 찼던 한국 축구에 다시 기대감이라는 선물을 안긴 것, 국가대표가 다시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신태용 코치가 해낸 일이다.

주류도 해내지 못했던 일, 비주류가 해냈다. 비주류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대표팀은 겉으로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공정하고 원칙적인 분위기가 정착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수 선발의 기준과 원칙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외부와 내부, 한국 축구 전체가 바뀔 만큼 강렬했던 2연전, 비주류가 바꾼 세상의 모습이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감독도 아닌 코치가, 그것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이렇게 강렬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단기간에 이렇게 대표팀의 큰 변화를 이끌어낸 지도자는 없었다. 신태용 코치 선임, 그리고 새 감독 선임이 늦어지자 A매치 2연전을 신 코치에게 대행 역할로 맡긴 것이 대한축구협회의 '신의 한 수'였다.

강렬했던 신태용 코치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신태용 코치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신태용 코치는 신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한다. 신태용 코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이 일을 위해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왔다. 그림자 역할이다. 강렬했던 기억은 잊고 선수 추천, 가교 역할, 소통 역할 등에 충실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위대한 감독으로 거듭나는 만큼 신태용 코치의 능력도 그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다.

잠깐이었지만 비주류 신태용 코치의 선전. 이것은 한국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커다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비주류라고 무시하지 않았는가. 주류에만 의존하지 않았는가. 능력보다는 이름값을 먼저 보지 않았는가. 주류의 기득권을 나눠주지 않기 위해 비주류를 배척하지 않았는가. 또 주류끼리 제 식구들만 감싸려하지 않았는가.

주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주류만이 옳은 것이 아니다. 비주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비주류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든지 옳을 수도 있다. 배척부터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면 상생할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경쟁의 환경 속으로 끌어들여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

또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긍정적인 선순환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독재와 독주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한 변화는 발전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영원한 주류는 없고 영원한 비주류도 없다. 비주류가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환호를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주류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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