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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7년 특별인터뷰]우승 감독 최강희 ①K리그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남자
2011년 11월 01일 오전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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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기자] '만년 꼴찌', '바닥 전문가', '승점자판기'. 2000년대 중반까지 전북 현대를 수놓던 단어들이었다. 1994년 전북을 연고로 완산 푸마가 창단해 제우 액스터, 전북 버팔로, 전북 다이노스를 거쳐 지금의 전북 현대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밟아온 전북을 생각하면 비아냥거림의 수식어는 오랜 기간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하위권에서 노는 전북에 입단하려는 스타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2002 한일월드컵을 통해 수비수 최진철(현 강원FC코치)을 발견했지만 그 외에는 모두가 타구단에서 한물 갔다고 평가받거나 실력미달로 낙인 찍힌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는 응원하던 홈팬들의 욕설에 말싸움을 벌이던 선수까지 있었다.

모든 게 엉망인 상황에서 2005년 여름 최강희(52) 감독이 전북의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 20세 이하(U-20) 청소년월드컵을 관전하며 지도자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최강희 감독은 "한국에 와보니 이미 나를 내정했더라. 나보고 도장만 찍으라더라"라고 전북 감독 부임 당시 기억을 되짚었다. 그만큼 전북은 구원자가 필요했다.

'얼떨결에' 전북에 발을 들인 최강희는 그 해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이듬해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9년 K리그 우승을 줄줄이 일궈내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지난 9월 18일 경남FC전에서는 감독 통산 100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한 팀에서 100승은 김호(수원 삼성), 김정남(울산 현대), 차경복(성남 일화), 차범근(수원 삼성) 등 네 감독만 이뤄냈을 정도로 귀한 기록이다.

최강희 감독은 올 K리그에서 전북을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달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전을 2-1 승리로 이끌며 결승전 진출도 성공시켰다. 그야말로 성공한 지도자다.

전북에서의 7년 동안 많은 기록을 만들었지만 아직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K리그의 혁신을 불러온 남자


최 감독은 10월 27일 전라북도 완주 봉동 팀 숙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조이뉴스24의 창간 7주년 기념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어제 봤는데 뭘 또 물어보려고"라며 살짝 농담을 건넸다.

최 감독은 1998~2001년 수원 삼성에서 코치를 역임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움베르토 코엘류 국가대표 축구대표팀 감독과 호흡을 맞춰 대표팀 코치를 경험했다. 모든 게 풍족했고 유리했던 경험을 뒤로하고 그는 정제된 시간을 지나 전북의 손을 잡았다.

전북에 처음 부임했을 때 숙소부터 선수들의 정신 상태까지 모든 부문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체계적인 식단은 고사하고 몇몇 선수들이 라면을 끓여 먹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떼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밤늦게 숙소를 몰래 벗어나 술 한 잔 걸치고 조용히 들어오는 선수도 있었다.

최 감독은 "2005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면 너무나 아픈 기억이 많다. 다른 팀에서 전북 하면 변두리 구단이거나 중하위권으로 생각했다. 전북 원정을 내려오면서 모두 실실 웃는다더라. 이유가 뭔 줄 아느냐. 승점 3점 따갈 생각에 기뻐서라고 하더라"라며 부정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기억했다.

당연히 그의 마음에도 "내가 왜 전북으로 가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8개월여 대장정의 리그에서 꾸준히 실력을 발휘해줄 선수도 없었고 스타 선수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어 마음이 찢어졌다. 인프라는 고사하고 팀의 비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최 감독은 참고 인내하며 하나하나 바꿔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2006년 '역전의 명수'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어느 순간 이런 팀을 맡은 것은 운명인가보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두 달 지난 뒤 내가 왜 이 팀에 왔나 후회가 밀려오더라. 한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 선발진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떨결에 FA컵 우승하고 다음해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라고 추억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아시아 정상 정복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구단에 대한 투자가 시작됐고 K리그 다른 팀들도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다. 특히 기업 구단들은 홍보효과를 생각하며 챔피언스리그를 정규리그와 동등하게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보너스나 명예를 얻는 대회였다.

국내에서 챔피언스리그의 위상이 커지면서 스타급 선수나 감독들이 수도권 이남의 구단들에도 자리를 찾는 등 중앙 집중화 현상이 서서히 해소됐다. 자연스럽게 K리그 내에서 전북의 발언권도 강해졌고 K리그 권력의 집중이 분산되는 효과까지 유발했다. 2009년 정규리그 우승 뒤에는 아무도 전북을 함부로 보지 못했다. 수도권 밖의 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K리그의 정형화된 판을 흔들었다.



늘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놓고 있는 남자


전북 사령탑 7년의 시간 동안 늘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었다. 2007년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2008년 시즌 개막 후 다섯 경기에서 1무4패를 기록한 뒤에는 인터넷에서 최 감독의 능력을 성토하는 팬들의 글이 홍수를 이뤘다.

기자의 기억에는 2007년 모 팀과 정규리그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에서 최 감독을 향해 "최강희! 오늘도 지면 바다에 빠지겠다며"라는 원색적인 비난의 소리까지 터져나왔다. 묵묵히 듣고 있던 최 감독도 양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비난을 토해내는 팬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만큼 당시만 해도 전북에는 과거의 거친 때가 묻어있었다.

최 감독은 "팬들이 늘 한결같이 응원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놓고 있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라며 "내 소신껏 팀을 운영해야지 팬들이나 주위의 이상한 말에 흔들리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라며 지도자로서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만약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전북 감독직을 던졌다면 어땠을까. 그는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나갔다면 내 운명이나 전북 모두 달라지지 않았을까. 더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곱씹었다.

소통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최 감독은 인터넷으로 들어가 소통하기 시작했다. 비공개된 그의 펜 카페에 종종 글을 남기며 교감했다. 그는 "비난은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하는 것 아니겠느냐. 100명 중 90명은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굳건한 믿음과 신념이 지금까지 전북에서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에도 열중해봤다. 앞마당에 멀티를 깔고 상대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 전략이다. 주로 수비력이 좋은 테란을 택한다.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목표의식을 확실하게 잡은 남자


최 감독은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6개월 동안 단 2승만 해본 기억도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라고 전했다.

2006년 챔피언스리그의 첫 우승은 수원 시절 아시안클럽컵 정상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명장이라고 불리려면 다양하게 갖춰야 하는데 늘 부족한 게 많다. 배우려고 가방 들고 유럽 등에 공부하러 가서 인생 공부를 정말 많이 하고 온다. 그런 경험들이 (우승을) 불러온 것이다"라고 되짚었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불리는 전북의 화려한 공격 축구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홈팬들에게 지지 않는 축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많은 패배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홈에서는 걸어나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더 많은 골을 요구했고 경기 템포도 빠르게 가져가라고 했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선수들도 익숙해졌고 팬들도 1-0으로 이긴 것은 이긴 것 같지 않다고 하더라"라며 "한 골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는 것보다 계속 밀어붙여야 홈팬들에게 사랑받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홈에서 전승은 아니더라도 절대 무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점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개막전에서 전남에 0-1로 패한 것은 액땜으로 쳤다. 이후 10승4무로 홈경기 무패를 기록했다.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전 SK)도 경질되는데 자기 철학이 있지 않으면 팀이 흔들린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올 시즌 시작을 앞두고 최 감독은 브라질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에게 K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동반 정상 정복의 목표를 주지시켰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이 대회 저 대회에 공을 들이다 제대로 얻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올해는 꼭 두 대회만 해내자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선으로 보면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그렇다고 두 대회만 올인하지 않았다. 리그컵은 결승전에 진출해 FC서울에 우승컵을 내줬다. FA컵도 주전들을 다 내보냈지만 16강에서 탈락했다. 프로라면 어느 대회든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기본적 가치를 잊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올 시즌 2관왕에 대한 자신감은 넘친다. 자칫 자만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올 시즌 선수들이 보여준 정신력, 집중력, 경기력은 최고다. 2009년 정규리그 우승시 다들 '우리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경험이 쌓여서 더 자신감이 넘친다"라고 확신을 노래했다.

<②편에 계속…>


/완주=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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