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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김기덕, 이념 대립의 모순을 비추다(인터뷰③)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 자랐던 한 감독의 이데올로기 성찰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김기덕 감독이 새 영화 '그물'로 남북 분단 상황 아래 예기치 않게 희생된 한 어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가 고장나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흘러가게 된 어부가 남한과 북한의 정보국 사이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초를 겪게 되는 이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이데올로기 대립 상황에 포획된 개인의 불행을 덤덤히 비춘다.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그물'(감독 김기덕, 제작 김기덕필름)의 개봉을 앞둔 김기덕 감독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는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 분)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을 담은 드라마다.

남한으로 흘러가게 된 어부 철우는 남한 정보국에선 간첩으로 의심을 사게 되고 모진 조사 과정을 겪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후에도 철우의 고난은 이어진다. 이데올로기 싸움의 한 가운데에 있는 두 조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영화적 상황 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물'은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한 많은 한국 영화들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남한의 조직과 당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북한의 정보국을 모두 모순적 공간으로 그려낸다. 이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제 영화를 자세히 보면, 이렇게 전제하긴 부끄럽지만 옛날 영화들도 어떤 쪽에 치우치진 않았다"며 "꼭 수평을 잡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나쁜 남자' 역시 제목은 '나쁜 남자'였지만 마지막엔 '나쁜 남자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면의 세계로 이야기를 확장해서 보여주면 전혀 다른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는 것을 전 영화들을 통해 이야기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물'을 통해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한 개인에게 국가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개인이 어떻게 희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문제 자체가 남북 큰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말한 김기덕 감독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식당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보면 철우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더라"며 "한국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어도, 먹을 때, 잠을 잘 때 똑같은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6.25에 참전해 부상을 당하고 평생을 병상에 누워 보냈다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들려줬다.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 아래 성장한 김기덕 감독은 이후 적대감에 가득 차 해병대에서 복무했지만 감독이 된 뒤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됐다고 알렸다.

김 감독은 "우리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가 돼서 총알 네 발을 맞고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늘 병상에 있다 돌아가셨다"며 "어릴 때부터 그 분노를, 공포를 봤고 그것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는 아버지를 늘 두려워했다. 그 분은 한 번도 인간으로서 꿈을 가져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고 돌이켰다.

극 중 '간첩 잡기' 혹은 '간첩 만들기'에 혈안이 된 남한 조사관(김영민 분)의 모습은 김기덕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한 인물이다. 이 조사관 역시 감독처럼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캐릭터다. 탈북한, 혹은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은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 '빨갱이 새끼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자신이 당한 고통을 우리에게 각인했었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그런가보다' 했다"고 얘기했다. 영화 '수취인불명' 속 상황들, 마당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일까지 실제 자신이 겪었던 사건이었다고 밝힌 김기덕 감독은 "이런 공간에 살며 적대감이 컸는데, 제가 복무할 때는 해병대 역시 적대감들로 무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고 돌아봤다.

영화를 찍으며, 김기덕 감독은 개인적 분노보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통해 남북상황을 직시하게 됐다. 그는 "극 중 조사관이 30대 초반이라면 그 나이에 나도 적개심이 있었고, 아버지 모습으로 인한 보복심리가 있었다"며 "그래서 전형적인 면이 있지만, 김영민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조사원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차후 작품들이 모두 남북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아니라는 것이 감독의 이야기다. 감독이 집필해 둔 시나리오들 중에는 앞서 보여줬던 작품들에서처럼 개인의 고뇌와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이것에 고착되진 않을 것 같다"고 답을 이어간 김기덕 감독은 "10여 편 있는 시나리오들은 전혀 다른 제 고민들, 인간의 원형적 성격 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예고했다. 그는 "'누가 왜 나쁜가'보다 '인간은 왜 이런 구조인가'라는 원형적 질문을 더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큰 범위,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얼마나 비겁해지고 잔인해지고 또 선해질 수 있는지, 그런 과정이 어떻게 인류를 지속해 올 수 있었는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감독은 "어찌보면 '악어' '나쁜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때는 내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다고 조금은 믿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창작하는 사람의 여유가 있었고, 인간 개인과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했다면 최근 몇 년 간은 그렇지 않더라"고 고백했다.

남북 대립 상황 아래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 등에 의해 감독은 현실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는 "남북 문제의 긴장이 안심하고 뭘 할 수 있는 정서를 안 만들어주더라. 오히려 불안, 공포들이 느껴져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더 고민이 됐다"고 밝혔다.

'그물'은 오는 10월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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