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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결산]①강수연·이용관의 시너지, 더할 나위 없었다(인터뷰)


강-이 공동 체제 이후 첫 영화제, 안정적 개최의 비하인드

[권혜림기자] 전례 없던 외압이었다. 세월호의 비극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싸고 꼭 1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와 첨예하게 맞섰다. 이후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향한 시의 사퇴 압력, 영화제 쇄신 요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산 삭감 등 현 영화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격은 이어졌다. 한국 영화인들은 물론,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영화제들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처한 위기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지난 7월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 강수연을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위촉한 것은 영화제가 내놓은 쇄신의 방책 중 하나였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영화제를 공동으로 이끌었던 사례가 있으나, 이후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를 도입한 것은 올해 영화제가 처음이다.

영화제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서울에서 만났던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모르는 것이 많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인 양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부지런히 학습하고 있었다. 그 때 "한 마디로 얼굴 마담 아닌가"라는 한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얼굴 마담을 해야 한다면 해야지"라는 당찬 답을 내놓던 강 위원장의 모습이 생생하다. 날씨가 심술을 부렸던 개막일, 레드카펫 위 온 비를 다 맞으며 게스트들을 맞이하던 그를 보면서 '얼굴 마담'이라는 낮은 기대치가 미안해졌다. 이후 열흘 간, 영화제는 예년과 달리 논란 없는 축제를 이어갔다.

지난 7일, 영화제의 폐막에 앞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올해 영화제를 함께 이끈 강수연-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영화 '베테랑' 속 명대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강 위원장은 특유의 화통함과 격 없는 성격으로 영화제 구성원들에게 뜨거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박힌 돌'인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스스로 인정하듯 "칭찬에 박한" 냉정한 리더라면,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조직을 아우른다. 여전히 인형 같은 미모, 온 세대가 알아보는 유명 배우라는 이력이 위화감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이 틀린 모양이다. 이날 대화에서도 강 집행위원장은 이 위원장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지적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선 짧지만 힘든 여정을 함께 걸어 온 전우애가 짙어보였다.

공동 집행위원장이라는 직함 아래, 역대 가장 힘든 상황에 처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무리 없이 함께 이끈 두 위원장의 대화를 정리했다.

이하 강수연-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일문일답

-개막작 모더레이터로 나선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매끄러운 진행에 취재진이 모두 놀랐다. 레드카펫에서 내내 비를 맞으며 게스트를 맞이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집행위원장으로 나선 첫 영화제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강수연 집행위원장, 이하 강) 끝나봐야 알겠다. 아직도 4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난 것 같다. (비를 맞더라도) 좋은 분들을 만나는 일은 좋다. 아직은 잘 끝나야 한다는 불안감이 남아있다. 비행기가 캔슬됐는데 많은 게스트들이 기차, 택시, 자가용을 타고 영화제에 와 줬다. 누가 그렇게 해 주나. 천재지변이면 못 오는 것 아닌가. 해외 게스트들이 대구에서 내리고, 타이페이에서 내려서 오기도 했다. 한 명 한 명 생각하면 감동스럽다."

"(이용관 집행위원장, 이하 이) 작년에 비하면 행사가 너무 편하게 진행됐다. 작년엔 이 자리에 앉아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올해는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됐다고 본다."

"(강) 나에겐 이번이 영화제의 내부에 들어온 후 첫 행사라 안정적인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끝이 나 봐야 알겠다. (모더레이터 실력 칭찬에 대한 질문에) 뭐 하나라도 이용관 위원장보다 잘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수십 년 알았지만 이런 모습 처음"

-강 위원장이 부산국제영화제와 남다른 인연을 쌓아온 만큼 두 사람도 가까운 사이였다. 함께 영화제를 이끌며 몰랐던 점을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강) 이 위원장과 워낙 오래 알았는데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굉장히 완벽주의자고,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있다. 하나를 생각하면 둘을 돌아보지 않는 그런 분이다. 그런 모습을 올해 처음 봤다. 평소엔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하고 이해심이 깊었는데, 그런 것만 몇십년 보다가 실질적으로 일하는 것을 보니까…….(직장 동료로는 피곤한 사람이었나?) 정확하다.(웃음) 늘 좋은 이야기만 듣고 살았는데 야단을 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만 들으니까 놀라웠다. 잠을 두 시간 밖에 못 자며 일하니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야단은 친다.(웃음) 이 위원장은 스태프들에게도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이) 인정한다. '차갑다' '왜 이렇게 점잖을 빼느냐'는 말을 자주 들으니 제 비즈니스 스타일을 아는데 잘 안 고쳐진다. 저는 거꾸로 강수연 위원장이 차가울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겠다. 우리 스태프들도 나를 차갑게 생각한다. 강 위원장은 그런 면을 다 유머로 이끌어준다. 사실 스태프, 프로그래머도 나와 대화를 안 하고 강 위원장님과 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그 점이 고맙다. 차가울 줄 알았던 대스타가 언니처럼 누나처럼 가까이 와 주는 것에 스태프들도 놀란다. 내가 그런 것을 천성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 처음엔 차갑게, 카리스마 있는 위원장이 되는 것이 콘셉트지만, 와 보니 영화제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을 하더라. 차갑게 할 수가 없었다.(웃음)"

"(이) 개인적으로 강수연이 많이 가졌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이 이렇게 빠른 조직 친화력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강) 아마 누가 와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누가 와도 그런 것은 아니다.(웃음)"

"(강) 이 위원장의 경우 부산에서 처음으로 영화제를 시작했고 그 상황에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지 않나. 그보다는 (영화제 팀에)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훨씬 많이 들었다."

"(이) 스태프들이 스스로 거리감을 가졌을텐데 일정이 끝나고 소주도 한 잔 하는 등 확 분위기가 좋아졌다. 제가 끼어들기 쑥스러울 정도다.(웃음) 내가 의례적이고 형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팀과 자막팀에게 말을 할 때도 나는 '수고했어요. 부탁해요' 하는 편인데,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하는 식 아닌가. 차원이 다르다.(웃음)"

◆강수연 집행위원장 "2시간 수면…미모는 포기했다"

"(강) 솔직히 6시간은 잘 수 있었는데, 2시간 자게 되더라. 미모는 유지할 수 없다.(웃음) 안 자고, 못 먹고, 다 포기하니 일하는 것이 가능하더라. 공부도 해야 한다. 모르고 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 세계에서 귀하게 어렵게 가져온 영화인데, 공부하지 않는 것은 영화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도 이전에 영화를 했으니 상대가 내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 정확히 안다. 영화를 보는 일은 너무 즐겁고 재밌다.

사실 20년 간 영화제의 옆에 있었는데, 예산이나 돈에 대한 걱정을 한 번도 안 했다. 늘 손님으로 왔으니 '잘 되고 있구나' 했다. 처음 들어와서 현실적으로 그런 문제에 부딪혔다. 영화인과 관객 말고도 영화제에 필요한게 많더라.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한 번도 안한 게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것을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장기 계획을 세울 것이다.

가장 아쉬운 건, 개막부터 폐막까지 모든 행사와 관객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서비스, 예비 영화인을 교육시키는 것, 마켓의 활성화 모두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영화제가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예술성을 가지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영화제 본질을 잊지 않으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밸런스를 맞투는 것이 정말 힘든 것 같다. 올해까지는 잘 돼가고 있는 것 같다. 한 해 한 해를 치룬다는 생각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임하겠다."

◆한국영화회고전부터 키즈 섹션까지

"(강) 회고전에 매년 참석해왔는데, 올해 회고전의 영화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도 처음 본 영화들이었다. 한국 영화 클래식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봐야 한다. 이만한 영화적 교과서가 없다. '만선'(감독 김수용)을 비롯해 놀라운 영화들이 많았다. 영화를 오래 했는데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국영화회고전에 더해 아시아 100, '내가 사랑한 프랑스 영화'도 좋았다. 또 하나 의외인 건 키즈섹션이었다. 배우 문소리, 김호정, 유지태가 변사처럼 영화의 내용을 읽어줬는데, 상영작들이 매진됐다. 유치원생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몰입도가 놀랍다. 정말 재밌었다. 관객과의 대화(GV)를 했는데, 아이들이 손을 들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핮니다. 그런데 제목이 뭐예요?'하고 묻는다. 아이들이 난리를 치다가도 영화가 시작하면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 어떤 극장보다 조용하다. 그게 한국영화의 미래다."

◆세계 영화제 중 최다 GV, 최고의 관객과 함께하다

"(이) 올해 360회의 GV를 했다. 관객들도, 영화인들도, 너무 좋아한다. 단연코 자랑할 수 있다. 영화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화인들이 관객들의 진지한 토론에 놀란다."

"(강) 세계 최다 GV다. 관객의 질문 수준이 가장 높다. 이건 우리가 아니라 해외의 평가다. 이만큼 일반 관객에게 열린 영화제다. 관객들이 영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아주 수준 높은 질문을 해주니까 너무 자랑스럽다. 외국 게스트들이 '기적'이라고 한다. 저렇게 어린 관객이 학구적이고 아카데믹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한국 영화가 잘 되는 것 아니겠냐고 물을 때 너무 자랑스럽다.

지나고 보면 매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점점 일반 관객의 요구나 열정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 느꼈다. 그래서 올해 일반 관객을 위한 행사나 영화들이 상당히 많다. 프로그램도 중요했다. 관계자들을 위한 예술 영화, 일반 관객이 같이 즐길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며 조율에 신경썼다.'

"(이) 오픈 시네마 부문은 올해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그게 우리가 제일 자랑하고 싶은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안팎으로 모든 행사가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기념비적 해 될 것 같다. 자랑하고 싶다. 배우들이 일반 관객과 손을 잡고 소통하는 것은 다른 어떤 영화제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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