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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박해일과 부자 연기, 애로사항 전혀 無"(인터뷰②)


영화 '나의 독재자'서 김일성 대역에 심취한 父 성근 역

[권혜림기자] 배우 설경구의 필모그라피는 흥미롭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대표작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작가주의적 영화부터 상업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코미디와 블록버스터까지 다채로운 출연작으로 관객을 만났다.

강력한 티켓 파워도 지켜왔다. 두 편의 천만 영화 '실미도'와 '해운대', '공공의 적' 시리즈의 흥행을 비롯해 '타워' '감시자들' '스파이' '소원' 등 최근작의 스코어도 배우 설경구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를 입증한다.

관객이 설경구를 선택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액션에 몸을 던지는 마초의 얼굴부터 눈물 마를 날 없는 아버지의 표정까지, 어떤 배역도 그만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설경구에겐 있다. 여전히 15년 전 영화 '박하사탕'을 대표작으로 꼽는, 그러면서도 새 영화에선 언제 그랬냐는듯 기대 못했던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 그가 바로 설경구다.

그가 선보일 새 영화는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 성근(설경구 분)과 그런 아버지 덕에 인생이 꼬여버린 아들 태식(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제작 반짝반짝영화사)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생전 김일성의 외양까지 닮아가게 되는 성근 역을 위해, 설경구는 눈에 띄게 체중을 불렸다. 극 중 등장하는 고문실 장면에서처럼 자장면을 수 그릇 씩 먹으며 살을 찌웠다. '역도산' 이후 없었던 큰 폭의 체중 증가다.

그는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자장면을 먹는 장면은 많은 테이크를 촬영했다. 꽤 많이 먹었다. 열심히 먹으며 살을 찌울 때라 잘 먹었다"며 소탈하게 웃으며 당시를 돌이켰다.

"살집을 만들어놓고, 확 찐 것으로 나올 수 있게 준비했어요. 그 사이 텀은 없었고요. 순서대로 찍은 영화가 아니어서 고문 신 촬영 땐 홀쭉한 모습이죠. 극 중 고문을 받기 시작하면서는 꾸준히, 의무적으로 먹었어요. 분장 때문에 일반식은 못 먹었고 김밥을 먹었고요. 하품도 못 하게 하더라고요. 분장이 찢어질까봐요.(웃음)"

설경구는 어린 아들을 둔 젊은 연극 배우의 모습부터 노년에 접어든 성근의 이미지까지 넓은 시간폭을 두루 소화했다. 여기에 더해, 시도 때도 없이 방언처럼 터지는 북한말 연기도 입에 쩍쩍 붙게 연기해냈다. 영화의 후반부 설경구는 김일성도 성근도 아닌, 생애 처음 맡은 거대한 역할에 심취한 늙은 사내로 스크린을 누빈다. 말씨에도 손짓에도, 배역을 치열하게 연구한 배우의 노력이 묻어나온다.

"김일성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으니 감독이 준 동영상을 참고했어요. 사실 별 영상도 아닌, 그저 과거 사람들을 지도하는 모습인데 집에서 보다 순간적으로 커튼을 쳤어요.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아 섬찟했죠. 이전엔 무심코 보던 모습이었는데도요. 그 뒤론 집에선 보지 않고 영화사에서 소심하게 보곤 했죠.(웃음) 행동을 흉내내기보다는 유심하게 봤어요."

실제로 9살 차이인 배우 박해일과는 부자 지간을 연기했다. 설경구의 자연스러운 분장과 박해일의 동안이 만나 완성된 조합이었다. 어색함은 없었다. 설경구는 "주변에선 '말이 되냐'고 우려했지만 박해일이라는 배우는 상대방에게 까다롭지 않은, 배려심이 많은 배우"라며 "일상에서도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은 개구진 모습이 보이는데 그래서 늙지 않는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 거의 똑같은 모습을 갖고 있지 않냐"고 말했다.

"촬영 초반, 박해일이 내 덩치나 몸의 태가 자기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 말한 설경구는 "박해일이 촬영 중 나를 종종 아버지라고 불렀다"고도 알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설경구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가까운 카페에서 인터뷰 중이던 박해일이 '아버지, 삼청동 날씨가 참 좋네요'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순간이었다. 설경구는 "부자 연기를 하며 전혀 애로사항이 없었다. 그 나이대의 배우로는 박해일이라 가능했다. 박해일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라고 하더라"고 알렸다.

설경구가 꼽는 자신의 대표작은 여전히 '박하사탕'이다. 무려 15년 전 작품이지만,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직도 못 빠져나온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한다. "카메라 밥도 먹어보지 못했던, 아무것도 모를 때 했던 영화라 오만 감정이 드는 작품"이라며 "지금은 그런 감정을 못 느낄 것 같다"고도 고백했다. '박하사탕'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영호는 한국 현대사의 격랑이 한 개인의 인생에 어떤 비극으로 투영되는지를 그려낸 인물이었다.

"그 땐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 할 정도로 많이 울었어요. 술만 먹으면 울고, 노래방 가서도 울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울고. 원래 제가 출연한 영화를 잘 못 보는데, '박하사탕'도 그래서 못 봤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외신을 위한 특별 시사를 한다고 했을 때, 영화는 안 보려다 간담회 전 잠깐 본 적이 있죠. 5분 있다가 펑펑 울고 나왔어요. 별 장면이 아닌데도요."

한편 '나의 독재자'에는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을 비롯해 윤제문·이병준·류혜영 등이 출연한다. 오는 30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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