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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 이범수 "시나리오 3장 읽고 확신"(일문일답)


"백발 꼬부랑 노인 돼도 연기하고 싶다"

[권혜림기자] 배우 이범수가 절대악으로 돌아왔다.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자신의 필모그라피 중 가장 강렬한 악역을 소화했다. 코믹과 액션, 멜로와 휴머니즘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해 온 그는 이번 영화로 또 한 번의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신의 한 수' 개봉을 앞둔 이범수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는 범죄로 변해버린 내기바둑판에 사활을 건 이들의 전쟁을 그린다. 이범수는 내기 바둑판의 절대악 살수 역을 맡아 피도 눈물도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복수에 뛰어든 전직 프로바둑기사 태석 역 정우성과 치밀한 액션 호흡을 나눴다.

바둑과 액션을 버무린 상업 영화 '신의 한 수'는 흔치 않은 소재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 전망. 정적인 스포츠 바둑과 화려한 액션이 어떤 조합으로 완성될지 궁금증이 들 법하다. 이범수 역시 그랬다. 그는 출연 제의를 받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엔 갸우뚱 하며 책을 넘겼다. 시나리오 한 장을 넘기고 나니 '이건 되겠다' 싶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그게 어우러질까 했는데 세 번째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는 확신이 생기더라"고 덧붙였다.

깔끔하게 올려 붙인 머리카락과 티끌 하나 묻지 않은듯한 수트, 안경 너머 보이는 길고 큰 눈매는 극단의 잔인함을 지닌 살수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종종 무심한듯한 눈빛은 되려 가공되지 않은 분노보다 더욱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태석의 전사와 복수 과정을 공들여 그려낸 것과 달리, 영화는 살수의 과거를 친절하게 서술하지 않는다. 살수의 악독함이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날 이범수는 "살수 캐릭터의 매력을 절대악에서 찾는 이들이 있더라"며 "보통은 악역인데도 알고 보면 사연이 있고 애환이 있다. 혹은 상처 받은 영혼"이라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어 "살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라며 "물론 그런 캐릭터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극단적인 존재감의 악인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고 알렸다.

살수의 인생사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만큼, 천재 바둑 소녀였지만 내기 바둑판에 뛰어들게 된 여인 배꼽(이시영 분)과 살수의 관계도 긴 설명보단 암시로 다뤄졌다. 특히 온 몸에 문신을 한 살수가 사우나에서 알몸으로 나와 배꼽을 위협하는 장면은 둘의 과거를 함축한다. 알몸의 남자와 그 앞에 앉은 여자. 그러나 성적인 기운이 흐르진 않는다. 살수와 배꼽은 대등한 관계보단 상하 관계, 주인과 소유물의 관계에 가까워보인다.

전신 문신 설정을 가리켜 이범수는 "살수라는 캐릭터를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는 지점이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보기만 해도 싫은, 외형적으로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살수는 평소엔 먼지 하나 안묻을듯 깔끔한 양복을 입고 다니지만 상당히 예민한 인물이다. 사우나 신에서 전신 문신을 한다면 깔끔하고 차가운 정도를 넘어 어마무시한 느낌을 줄 수 있을듯했다"고 설명했다.

안경을 쓴 살수의 외양 역시 이범수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는 "목숨을 해하고 혹은 내가 목숨 잃을 수 있는 다이내믹한 액션을 하는데 안경을 쓰고 싸운다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위험한 만큼 상대에겐 생소할 것이고, 본인에겐 그만큼의 자신감 표출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의 한 수'에는 정우성·이범수 외에도 안성기·김인권·이시영·안길강·최진혁 등이 출연한다. 조범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오는 7월3일 개봉한다.

이하 일문일답

-극 중 살수와 배꼽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꿈보다 해몽일수는 있겠지만 '신의 한 수'에는 절제된 상징들이 여러 군데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나와 배꼽의 관계다. 함부로 능욕하지도 않고 유린하지도 않는데 특별히 때리거나 욕설을 하지도 않는다. 일차원적인 괴롭힘이 없다. 살수가 사우나에서 갑자기 터벅터벅 걸어와서 배꼽의 목을 잡고 까불지 말라는 액션을 하는데, 그 자체가 이 남자는 저 여자를 이미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미 장악하고 있는 설정이다. 그렇게 대놓고 알몸인 채로 나타나서 하고 싶은대로 다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그만큼 배꼽이란 인물은 살수에 이미 종속돼 있다. 티는 안내지만 무언의 정신적 지배, 그런 보이지 않는 관계다. 그런 그녀가 타인과 휴대폰 상에서 관계를 갖는다. 시나리오에선 그 상황에서 살수가 분노하지도 않는다. 말 없이 응시하는 정도였다. 속을 알 수 없는 거다. 그런 면에서도 살수라는 캐릭터를 매력있게 생각했다."

-극 초반의 액션, 막바지 정우성과 액션 장면 등이 화려했다.

"언론 배급 시사가 끝나고 나온 질문 중에, 정우성과 키 차이가 액션 연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냐는 질문이 있었다. 내가 받은 질문인 줄 알고 답변을 재밌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더라.(웃음) 나 같아도 그런 질문을 했을 법 하다.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 부딪힐 때 충돌의 호기심보다는 살수라는 외형과 태석이라는 외형이 부딪힐 때 기대되는 긴장감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크고 힘 있는 자와 무척 빠른 자와의 대결이다. 힘 있는 자끼리, 혹은 빠른 자끼리 대결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흥미를 느꼈고 느낌이 왔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액션 연기가 몸에 맞나?

"소소하게 과거의 작품들 속에서도 액션을 해왔다. 스스로 재밌어는 한다. 이번 작품의 경우 더 흥미롭게 보여드릴 수 있는 장치가 된 셈이다. 정우성과 막바지 액션 장면을 찍다 새끼 손가락이 골절됐다. 멱살을 잡고 서로 제끼고 뿌리치다가 새끼손가락이 옷깃에서 못 빠져나왔다. 티를 안 내서 다들 나중에 알았다. '아프니까 나중에 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트 촬영을 끝내야 할 시간이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몇 신 남지 않은 마지막날 아침에 다쳤다."

-조범구 감독이 착수를 하는 이범수의 손을 칭찬하더라.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 사소한 칭찬이어도, 그런 느낌이었다.(웃음) 바둑알을 내려놓는 동작은 점잖고 우아하다. 맵시가 있다. 무형의 동작처럼 하나의 선 같지 않은가. 그런 좋은 미사여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신의 한 수'에선 착수 하나가 그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이것 역시 이질적이다. 동작은 우아하고 간드러지지만 그 의미는 '너의 목숨을 끊겠다'는 것이니 어마어마하다. 그런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자 신경썼다. 감독님이 그걸 간파하신 것 같다. 실제로는 바둑을 전혀 못 둔다. 바둑을 배운다는 것이 막연하더라. 그냥 계속 두는, 두면서 배우는 것인데 둘 사람도 없고 그것만 두고 있을 수가 없었다.(웃음) 그 전부터 호기심은 있었지만 '신의 한 수'로 더욱 바둑을 배우고 싶고, 알고 싶어졌다. '신의 한 수'라는 제목이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있어보이고 긴장감도 있었다. 바둑과 액션이 만날 수 있을까? 우스개로 '월간 바둑' '월간 낚시' 같은 책이 있다면 (바둑과 액션 사이 이질감처럼) 낚시와 액션이 어떻게 묶일까 의구심이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리와 액션도 비슷할 것 같다. 그렇게 갸우뚱 하며 책을 넘겼다. 시나리오 한 장을 넘기고 나니 '이건 되겠다' 싶었다. 그게 어우러질까 했는데 세 번째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확신이 생겼다."

-영화의 속편 제작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한창 재밌게 찍었고, 느낌이 서로 좋아서 2탄 이야기가 나왔었다. 당연히 재밌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극 중 죽는 인물들이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2탄은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다. 출연 의향은 있다. 재밌게 촬영했으니까. 그렇게 된다 해도 살수가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때도 절대악으로 타고난 사람으로 그려졌으면 한다.(웃음)"

-코미디 연기로도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다시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할 계획은 없나?

"배설적이거나 까부는 연기도 나름대로 재밌겠지만 뭐라고 할까, 유치하지 않은 코미디를 하고 싶다. 건방진 표현 같지만 수준 있는 코미디를 원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9) 같은. 그 분(로베르토 베니니)은 코믹 연기를 하는데 그 뜻은 너무나 진지하고 크지 않나. 그 영화로 묘한 체험을 했었다."

-지난 2013년 소셜무비 '세 개의 거울-꼭두각시'로 연출에도 도전했다. 언급한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도 감독 겸 배우인데, 연출 계획은 있나?

"주변에서 많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더 공부하고 많은 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하고 싶다. 이런저런 단편 영화 경험도 있는데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꼭두각시'도 그랬다. 연출에 관심 있던 차에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너무나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재밌었다."

-할리우드 영화 '루시'에 출연한 배우 최민식처럼 해외 진출도 생각해봤을 법하다.

"우리나라 축구팀이 월드컵 4강에 드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웃음) 너무 흥분되는 일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다. 해외 진출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국 배우들과 같이 합을 맞추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인 것 같다. 저들은 저들의 모국어로, 나는 내 모국어로 연기한다면 금상첨화다. 언어에서 오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과제겠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경험하고 싶다. (최)민식 형의 활약상은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해외 진출이) 단순히 언어 문제에 갇히진 않는 일인듯하다. 그렇다면 교포2·3세들이 다 하지 않겠나."

-배우 이범수의 삶에 어떤 정수가 필요한지 궁금하다.

"늘 또 다른 도약, 또 다른 대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을 근래에 했다. 그 전의 도약들 중 운 좋은 일이 있었다면 제가 TV에 진출한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대로 좋은 선택,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거다. 운도 따라야 한다. 좋은 작품을 만나야 하고 그 작품이 사랑받아야 한다. 그것이 흥행과 결부되니 모험이다."

-차기작 계획은?

"많은 연기를 하고 싶다. 연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너무 좋아한다. 재밌다. 직업이지만 취미고 오락이고 휴식이다. 다른 특별한 취미도 필요 없다. 연기가 재밌으니까. 머리카락이 하얀 백발의 꼬부랑 노인이 된다 해도 연기하고 싶다. 그 개런티로 후배 배우들에게 맛있는 걸 다 사준다 해도 현장에서 연기하고 싶다. 그게 재밌는 것 같다. 또 다른 인물이 돼서 뭔가 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천상 배우구나.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한다. 남은 올해도 좋은 작품을 만나서 연기하는 것이 진실된 바람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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