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준 "명예 따라오지 않아도 하고픈 일 하겠다"(인터뷰)


"파격적으로 스크린에 넘어왔다고? 의도한 것 아냐"

[권혜림기자] 사실 예고 영상만으로도 짐작했었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에서 인기 아이돌이나 예능 블루칩 이준의 얼굴은 결코 찾아볼 수 없으리란 것을. 영화 예고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지어 보인 비릿한 미소에선 어느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서도 찾아보지 못한 광기가 엿보였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최근 언론·배급 시사를 통해 공개된 '배우는 배우다'는 오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무명 배우 오영(이준 분)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팬들을 호령하는 톱스타로 올라서는 과정과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씬'에서 정지훈의 아역을 맡아 배우로 먼저 발을 내딛은 이준은 이후 엠블랙으로 데뷔, 아이돌 가수 겸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영화 속에서 뿐 아니라 실제로도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아이돌인 셈. 그런 그가 첫 스크린 주연작에서 수위 높은 정사신을 펼쳤다. 팬들은 물론 일반 관객들의 시선도 앗아갈 법하다.

"영화의 완성본을 보는데, 첫번째로 등장하는 베드신은 부끄러웠어요. '왜 안 끝나지' 싶고. 베드신의 동선과 동작은 정해져 있었지만 손을 잡는다거나 하는 세세한 부분은 애드리브였어요. 함께 연기한 여배우들에겐 '마음대로 하겠다. 생각보다 세게 나갈 수 있다. 이해를 해 달라'고 사과를 하고 시작했죠. 사실 첫 베드신인데 영화에 대한 이슈가 너무 베드신 쪽으로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저는 제 모습이라 그런지 그렇게 야한 것 같지 않은데.(웃음)"

'배우는 배우다'는 '좋은 배우' '페어 러브' '러시안 소설'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 신작이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을 맡았다. 센 소재의 이야기도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김기덕 감독의 글이 실험적이면서도 섬세한 신연식 감독의 감각과 만났다. 극 중 연극 무대와 일상을 오가는 오영의 퍼포먼스는 독창적인만큼 그간 상업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치이기도 했다. 이준의 감정선이 폭발하듯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것도 단연 이 장면들을 통해서였다.

"연극 연기를 디테일하게 배운 것은 아니었어요. 감독님은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내버려두셨죠. 약했던 부분에 대해선 '다르게 해 보라'고 말씀해주셨고요. 요즘 연극은 많이 바뀌어서 일정한 연극톤의 말투가 사라졌다고 하고, 그래서 더 어렵긴 했어요. 연극 연기라고 일정한 말투를 쓰는 게 더 어색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극 중 오영은 톱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 매니저의 제안에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배우가 연기만 잘 하면 됐지"라고 대차게 내뱉을 줄 아는 캐릭터다. 불타는 야망과는 별개로 곧은 길을 걷길 원했던 오영은 달콤한 인기의 맛을 보며 점차 변모해간다. 욕심 많지만 겸손했던 과거를 까맣게 잊은 듯한 그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헛웃음을 자아낸다. '배우는 배우다'가 '이 바닥' 생태계의 단면을 신랄하게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도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은 하죠.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은 거요. 사실 저도 이 쪽엔 문외한이예요. 제 이야기도 아닌데 알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톱스타가 돼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오영은 "하고 싶은 작품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속내를 고백한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과 인기를 얻기 위한 고군분투는 얼핏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힘 있는 배우에게 멋들어진 역할이 돌아가는 연예계의 생리를 떠올릴 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준은 극 중 오영의 욕망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인기를 얻고 그 뒤에 원하는 것을 하는 게 맞겠죠. 그런데 지금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좋아요. 나중엔 그렇게 될 (인기를 먼저 얻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해요. 솔직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게 나쁜 변화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나쁘고 좋고가 없어요. 하지만 명예가 안 따오더라도 지금은 이게 더 좋아요."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연기로 활동 폭을 넓히곤 하지만 '배우는 배우다'를 첫 주연작으로 택한 이준의 결정은 분명 파격적이었다. 이목을 집중시킨 노출신도, 연예계 밑바닥을 가감없이 재현하는 서사도 그랬다. 달콤한 멜로도, '있어보이는' 액션물도 아닌, 스타의 몰락을 그린 이 영화가 어떻게 이준의 마음을 끌었을지 궁금했다.

"일부러 파격적으로 (스크린에) 넘어오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뭘 해보려고 발악하는 거였겠죠. 작품이 재밌어서 하겠다고 했던 거예요. 좋으니까. 파격적인 건 그 내용이었을 뿐이고요. 고민은 전혀 없었어요. '배우가 작품을 따라가야지'하고 생각했죠. '계산적으로 행동해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는 인기보다 성장을 통해 진심어린 행복감을 느끼는 이준의 집중력 덕이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편도 아니고, 동료 연예인들을 보며 나보다 잘 됐는지 못 됐는지를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인기의 차이를 떠나, 원하는 것을 해냈을 때 행복해진다"고 고백했다. "저 살기도 바쁜데 누굴 신경쓰겠어요"라며 웃을 땐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배우는 배우다'를 택한 이준의 결정은 두말할 것 없이 영리했다. 고작 한 시간의 인터뷰였지만, 대화를 마치면서는 그 영민한 행보에 대한 기대감이 확신으로 짙어졌다.

너무도 흔해진 표현이지만, 러닝타임 98분 내내 순수한 열정과 광기어린 욕망을 오가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불현듯 '충무로에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구나' 싶기도 했다. 아마 영화를 볼 수많은 관객들 역시 극장 문을 나서며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배우는 배우다'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준 "명예 따라오지 않아도 하고픈 일 하겠다"(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