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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치욕의 역사 '남한산성', 흥행 위험부담 크다"(인터뷰)


"작품 선택 기준은 '울림 주느냐'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역시 이병헌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배우 이병헌은 또 한 번 '믿고 보는 연기'를 펼친다. 이병헌은 '남한산성'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또 '천만 관객'에 대해 소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제작 싸이런픽쳐스)의 개봉을 앞둔 이병헌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출간 이래 7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김훈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남한산성'에서 이병헌은 이조판서 최명길 역을 맡았다. 최명길은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통찰력과 나라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가진 인물. 이병헌은 조정 내 반대 세력들의 비난 속에서도 청과의 화친(나라 간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을 통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먼저 이병헌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주 단순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이 작품이 울림을 줬는지"라며 "'남한산성'은 어쩌면 슬픈 영화들 중에 가장 울림이 크고 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병헌은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있었던, 우리 과거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고 덧붙였다. '남한산성'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과거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역사 중 하나다.

"흥행 면에서 '남한산성'의 이야기는 굉장히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더 좋았어요. 늘 승리의 역사만을 고집하는 것보다 실패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게 분명 있으니까요. 이 영화가 답을 주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400년 전 그때의 상황을 곱씹으면서 현실에 반추할 수 있죠.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좀 더 현명한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걸 영화로 만들자고 한 사람들이 참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연기한 인물 최명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병헌은 "원작을 읽고 나서도 극 중 인물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침이 없었다. 처음 겪은 감정이었다"며 "자칫 잘못하면 영화로 만드는 게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선 "선과 악이 있고 악당을 응징해 나가는 재미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 중 어떤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고, 그래서 게속 보게 되는 게 영화의 힘"이라며 "하지만 이 작품은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그 인물에 쏠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어떻게 보면 그 점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자신감 있게 전했다.

'남한산성'의 대사량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많다고 알려졌다. 이병헌은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생경하고 어려운 어휘가 많았다. 그때부터 이 많은 양의 대사를 소화하고 연기해야 한다는 걸 무의식 중에 긴장하면서 받아들였다"며 "그래서 대사를 외우는 데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대본의 양뿐 아니라 극 중 인물들 간 긴장감이 유발되는 장면들도 많다. 특히 최명길과 김상헌(김윤석 분)의 팽팽한 대립이다. 이병헌은 당시 촬영 현장 상황을 전했다.

"김윤석 씨와 함께 촬영하는 신들 중에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특히나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저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긴장한 상태에서 준비를 해왔죠. 그 신을 찍을 때 모두가 굉장히 날이 제대로 선 느낌이었요. 그런데 특히 저와 김윤석 씨보다 박해일 씨가 더 긴장하고 있었어요. 해일 씨는 우리가 대사할 때 앞에 계속 있어야 했는데 저와 윤석 씨의 대사를 자신이 받아칠 때 실수할 까봐 긴장을 많이하더라고요. 촬영이 다 끝나고 저희보다 해일 씨가 더 피곤해 했어요.(웃음)"

이병헌은 촬영 현장에서 연기할 때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다. 하지만 이번 '남한산성'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병헌은 "애드리브는 전혀 없었다. 할 수도 없었다"며 "이게 더 편하다. 워낙 시나리오가 훌륭하기 때문에 여기에만 의존해서 연기하는 게 배우들에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병헌이 황동혁 감독에게 요청해 수정한 대사는 있었다.

"최명길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감정을 누르면서 최대한 예의에 벗어나지 않게 말하고, 은유적으로 말해요. 그래서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답답하더라고요. 감독님에게 '한 번쯤은 바보 같이 쉬운 대사라고 하더라도 왕에게 쉽게 풀어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보자'라고 했죠. 한 번이라도 감정이 터져나와야 하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감독님이 한 달 이상 생각해보니 촬영 며칠 전에 고쳐진 대사를 주셨어요. 최명길이 계속 굽고 있던 등을 일으키며 '임금이 무엇이옵니까' 하는 대사였죠."

'남한산성'은 일찍이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이병헌과 김윤석을 비롯, 박해일, 고수, 조우진, 박희순 등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들이 모두 모인 작품. 이병헌은 "처음 배우들과 제작진을 만나는 미팅을 할 때면 기대반, 걱정반"이라며 "'남한산성' 때도 그랬다. 나와 다른 배우들 간의 호홉이 잘 맞을지 걱정하기도 했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뒤섞인 묘한 흥분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병헌이 가장 많이 연기 호흡을 펼치는 김윤석과의 케미스트리는 어땠을까. 이병헌은 "같이 작업하면서 정말 뜨거운 배우구나 여러 번 느꼈다"며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윤석 씨는 사극 작품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낯선 단어 때문에 대사를 하는 게 힘들다고 자주 말했다. 윤석 씨가 혀가 꼬여서 NG를 낸 적이 있는데 자기 자신에게 화를 많이 내기도 했다"고 이병헌은 웃으며 말했다.

황동혁 감독에 대해선 첫인상과 무척 다르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처음에는 황동혁 감독님과 맞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겉으로 풍겨지는 분위기는 되게 공부벌레 같았고 고리타분할 것 같았다"며 "하지만 현장에서 깜짝 놀랐다. 정말 재밌는 감독님"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또 "현장에 우리 배우들보다 감독님 이름으로 오는 커피차가 더 많았다. 전작을 함께 한 스태프들이 우리 배우 손님들보다도 더 많이 자주 찾아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작품을 할 때마다 현장 스태프들 중에 감독님 팬이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며 "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왕과 천민을 오가는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며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바 있다. '남한산성'이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이병헌은 "물론 배우로서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건 행복한 일"이라며 "하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말을 듣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만 관객을 넘는 건 되게 축하하고 좋은 일이지만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라고 웃으며 "천만 관객이 안 되더라도 영화의 이미지와 정서가 오래 남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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