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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어떻게 살 것인가…장훈이 던진 질문(인터뷰)


달라진 시대에 관객 만나게 된 영화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제작 더 램프)의 제작 시계는 지난 1년여 간 대한민국이 겪은 격동의 사이클을 째깍째깍 따라간다. 영화가 기획된 것은 문화예술계 탄압이 한창이던 지난 정권 아래서였다. 촬영 중이던 2016년 여름과 가을은 이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내막이 막 수면 위로 올라오던 때였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대통령 탄핵에 이어 정권교체를 이룬 지 수 개월, '택시운전사'는 전 정권 아래 제작되고 새 정권 아래 개봉을 맞게 됐다. 제작과 개봉이 서로 다른 대통령 아래 이뤄지는 것이 별 것이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것이 1980년 5월의 역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군부독재의 폭압을 상징하는 이 사건이 그 권력의 되물림을 이뤄낸 전 정권의 아래서 어렵사리 기획되고, 마침내 조금 더 상식적인 세상에서 온전히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택시운전사'는 영화와 정치라는 두 기점은 물론, 광장 이전과 이후 달라진 두 시대를 오가게 됐다. 타의에 의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론 흥미롭다. 그리고 이 여정의 중심엔 장훈 감독이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고 말한 감독은 영화가 무사히 관객을 만나기까지 무수한 이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 제가 맡은 일은 연출이니 그 역할을 하려 했어요. 이야기가 가진 취지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의미와 방향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참여해줬죠. 어렵게 결정한 배우 송강호부터 유해진, 토마스 크레취만, 류준열, 투자사와 스태프까지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제작사가 좋은 기획으로 영화를 준비했고 작가가 초고부터 글을 너무 잘 정리해줬죠. 저는 초고 이후 합류해 수정했고요. 특히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줘서 저는 할 일만 할 수 있었어요. 훌륭한 배우들과 작업해 영광이었죠."

영화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다. 장훈 감독은 이 간단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주요 인물들과 얽힌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사건과 인물들이 만나며 만들어지는 정서를 그려나갔다.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가 명확한만큼 잘 전달되기 마련이니, 여러 의도가 있으면 그 의도들을 줄이는 편이에요. 한 줄만 남을 때까지요. 그게 가장 메인으로 보여야 하는 큰 부분이겠죠. 그것들이 관객에게 강요돼선 안되고 스스로 느끼면 되는거 아닐까 싶어요. 영화란 관객의 머리와 가슴에서 완성되는 거니까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요. 전달하려 했던 느낌이 전달됐을지도 궁금하고요. 어느 젊은 관객이 쓴 글 중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게 그 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느낌을 받으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더 젊은 친구들에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편 '택시운전사'는 지난 2일 개봉해 210만 명 이상의 누적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이하 장훈 감독과 일문일답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역시 만섭이 순천에서 다시 광주로 차를 돌리는 장면이다. 인물의 가장 중요한 각서이 이뤄지는 신이기도 하다. 탁월하게 연기한 송강호도, 음악과 앵글까지 돋보인 장면이었다. 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인물의 전환점으로 중요한 부분이었고 연기를 하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운전을 하고, 길을 통제하고, 주변 분위기를 느끼며 감정을 받아서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운전도 해야 하고 스틱 자동차를 운전해야 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차 안은 엄청 뜨겁고, 그 좁은 차 안에서 노래를 하면서 연기를 하고 감정을 그려야 했으니 감정에만 집중하기엔 그 주변에 신경쓸 것이 많았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은 (배우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을 특별히 연기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는 만섭이 '단발머리'를 신나게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각성의 순간 그가 부르는 노래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다. 이 곡을 선곡한 이유도 궁금하다.

"만섭이 가요를 부르면서, (광주를) 외면하려 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 울컥함으로 변해 차를 돌리는 장면이다. 당시 1980년대 유행했던 대표적 곡들 중 뭐가 있을까 다 늘어봤었다 가사, 멜로디를 보고 무엇이 만섭의 감정과 닿을까 생각했다. 너무 직접적인 가사는 그렇지 않나. 간접적으로 전달할 것이 뭘까 하다 '제3한강교'를 선택했다.

'강물이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로 시작하는 가사인데, 서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강물이 흘러가듯, 일상이 흘러가듯, 서울로 돌아가면 만섭은 전에 살았던 것처럼 살텐데, 주변 풍경은 지나갈텐데'라고 생각했다. 룸미러로 보면 뒤게 거절했던 손님이 다른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 그런 것이 다시 만섭의 일상일 수 있다. 지나온 과거일 수도 있고, 흘러가는 삶의 느낌이 들었다. 멜로디가 너무 슬프지 않아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송강호 선배가 연기하면서는 '첫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라는 부분에서 감정이 터진 것 같다. 처해있는 상황과는 너무 다르니까."

-송강호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는지도 궁금했다.(웃음)

"일상적이고 주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곡을 부르며 인물의 감정이 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은 혼자 있는 공간 아닌가. 표정 연기를 길게 잡을 수 있으니 노래를 부르며 점점 변하는 모습이 처음부터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섭을 비롯한 주요 배역들 외에, 작은 배역들을 연기한 배우들도 모두 묵직한 연기들을 보여줬다. 특히 박중사 역 엄태구와 광주 기자 역 박혁권의 활약이 눈에 띄더라.

"엄태구가 정말 잘했다. 그 역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배우였는데, 짧은 신이지만 주요한 역을 해 줬다. 박혁권은 '의형제'부터 같이 해서 이번에도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작은 역일 수 있는데 부탁을 많이 드렸다. 너무 공감해주셨다."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 사복반장 등 계엄군 캐릭터는 아주 평면적인 편인데, 이들의 전사를 굳이 그리지 않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영화에서 이야기해야 할 관계가 너무 많았다. 두 외부인의 시선에서 보여줄 1박2일 광주 이야기부터 둘의 로드무비, 만섭이 시대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 그의 새로운 결정도 있었다. 만섭은 생각도 못한 상황.을 보고 그 전과 다른 결정을 하지 않나. 광주의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가려는 쪽에서 오래도록 직시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 만섭과 광주와의 관계라는 라인도 그려야 했다. 언론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야 했다. 그런 이유에서 계엄군 쪽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것이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런 선택을 하기보다 '그런 계엄군이 있는가 하면 박중사 같은 군인도 있었다'고 표현하려 했다."

-영화의 말미, 현재 시점에서 만섭은 서울에서 광화문에 가는 승객을 태운다.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의 촛불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인데, 초고에 없던 부분을 현실을 반영해 추가한 것인지 궁금하다.

"'광화문 갑시다'라는 대사는 초고부터 있었다. 10월 말 마지막 촬영을 했는데 그 때 (송강호) 선배가 그런 이야길 하기는 했었다. 기술시사 후, 광화문의 의미가 이 영화 전과 후, 달라져 있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대사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이야기하기도 했었는데 시대의 변화에 의해 의미가 달라졌더라도 그대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말미 힌츠페터 기자는 인터뷰 영상을 통해 '당신의 택시를 타고 달라진 대한민국을 둘러보고 싶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와 지금의 대한민국이 달라져 있고 또 작년과 올해의 대한민국이 여러 사건들로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 그런 변화까지 의도하긴 어려운 일이지만, 통역이 그 말을 해줬을 때 너무 감동적이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만섭이 피터의 수상과 내한 소식을 알고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에서 실제 택시기사 분들을 비롯해 여러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자식을 키우며 살았을텐데, 어떤 미안함이 있었을 것 같다. 마음의 빚이 있었을 것이다. 고마운 분들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 말할 수 없는, 선뜻 나설 수 없는 부분들. 그 분들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오늘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 그런 분들이 많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가 현재의 관객이 만섭을 따라가며 1980년 5월을 현재처럼 느끼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송강호 선배가 이야기했듯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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